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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017. 12. 29. 14:05

시편 94편 말씀 묵상


1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2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3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4  그들이 마구 지껄이며 오만하게 떠들며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다 자만하나이다

5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백성을 짓밟으며 주의 소유를 곤고하게 하며

6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들을 살해하며

7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하나이다

8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

9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10  뭇 백성을 징벌하시는 이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이가 징벌하지 아니하시랴

11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12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13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을 피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

1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

15  심판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따르리로다

16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들을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악행하는 자들을 칠까

17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잠겼으리로다

18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19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20  율례를 빙자하고 재난을 꾸미는 악한 재판장이 어찌 주와 어울리리이까

21  그들이 모여 의인의 영혼을 치려 하며 무죄한 자를 정죄하여 피를 흘리려 하나

22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반석이시라

23  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로 되돌리시며 그들의 악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끊으시리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그들을 끊으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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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복수하시는 하나님)


복수는 개인의 감정적 차원에서의 복수가 아니라 정의가 손상된 것에 대한 공의의 차원의 복수를 말한다.


하나님은 선에 대하여 절대적 기준이신 분이시기에 손상된 정의의 회복을 위해서 복수의 심판을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선의 절대적 기준이시다.


인간은 죄인이기에 정죄하거나 심판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없다.


다윗이 악에 대한 심판에 관하여 오직 하나님께만 의뢰하는 것은 신자로서의 올바른 행동방식이다.


이 세상이 힘있는 자들만의 세상이라면 이 세상은 절망적이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이 세상에 힘있는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으신 절대자이시다.


하나님의 공의와 능력은 인격적인 관계하에서 일어난다.


다윗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근거가되기도 한다.


신자의 기도는 하나님의 간섭하심에 합당한 근거를 제공해준다.


하나님은 사람에 대하여 인격적이신 하나님이시기에, 기도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정당한 근거가 되신다.


출애굽도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원이 있었고, 가인에 대한 처벌도  죽은 아벨의 땅에서의 핏소리로 호소함이 있었으며, 다윗은 삶의 여정 전반에 걸쳐서 많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였기에, 자손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구속 사역을 할 수가 있으셨다.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것에는 다윗의 애절한 기도가 밑거름이 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기도를 원하시고, 기도에 응답하는 가운데 역사하시고 간섭하신다.


아무리 하나님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힘이 되어주시지 않으신다.


신자의 삶이 떳떳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에게 잘못한 일이 있을 때 과연 기도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새벽기도회가 특징을 이루는 한국교회가 몰락하는 것은, 자신들의 떳떳하지 못하고 많은 잘못에 대한 회개가 없었기에 진정한 기도가 될 수가 없었고,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 것이다.


진정한 기도는 다윗과 같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가운데 드려질 때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역사하심이 이루어진다.


삶의 변화가 수반된 진정한 기도는, 한국 교회에 새로운 희망이 될 것이다.



(3-7, 하나님의 공의에 도전하는 악행)


이들이 자행하는 악행은 일반적인 악행이 아니라 주의 백성에 대한 악행이며, 하나님의 공의를 시험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다.


아담의 후손으로서의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께서도 인간과 분리되시고 인간을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아담의 모든 깊은 것을 아셨듯이, 지금도 인간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것이라도 정확하고 분명하게 알고 계신다.


인간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게 된다면, 인간은 자신의 죄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속된 말로 “모르는게 약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죄인에게는 하나님께서 모르시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약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인간을 죽이는 독약일 뿐이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실 수도 있으신 분이시라면, 하나님은 심판 하실 수 있는 권한이 없으시며, 공의의 하나님이 되실 수도 없다.


다윗의 기도는 단순한 악행에 대한 하소연이 아니라,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격하시키고, 주의 공의를 침범하는 것에 대한 공의의 복수를 간청하는 기도다.


다윗의 기도는 최종적으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더불어 이 땅에서 응답되었다.



(8-11, 다윗의 논증)


다윗은 창조자의 전능하심을 논리적으로 변증하고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 본능 가운데 존재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은 하나님의 능력의 부분일 뿐이다.


인간은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진리는 이 세상에 나타난 피조물과 자연법을 통해서도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법을 통해서도 이 땅에 정의를 실행하시며, 악인을 심판하시며, 의를 이루어가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연법을 통하여 은혜를 주심으로, 궁극적으로 사람들로하여금 진리에 이르도록 하신다,


진리 안에 거하지 못하는 인생은 허무한 인생일 뿐임을 하나님께서는 아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지만, 인생이 허무한데 굴복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인생은 오직 진리 안에서만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다.


신자는 하나님과 진리를 알아가는 기쁨을 초월적인 것이나 신비의 영역에서 찾기보다는, 삶의 일반적인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증거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서 말씀과 더불어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기쁨을 누려야한다.



(12-13, 악을 선용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궁극적인 관심은 악인에게 있지않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악행을 허락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백성을 교훈하시기 위한 것이다.


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현재의 고통은 클지 모르지만, 이는 더 큰 환란을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의 밑거름이 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악은, 회개하는 자에게는 연단과 교훈을 위한 것이지만,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 때 일차적으로 자신을 돌아보아야한다.


북한 핵문제의 경우도, 결국에는 더 중요한 문제가 우리에게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자는 삶의 여정 가운데 경험하는 많은 어려움들이, 결과적으로는 신자를 정금같이 단련시키는 과정이었음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14-15, 하나님의 열심)


인간은 모두 다 아담의 후손이기에, 그 죄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환란과 어려움을 통한 연단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문제는 문제로 드러나야지만 해결책이 있으며, 덮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문제 투성이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문제가 문제로 드러나야 한다.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간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겉으로 드러내는 과정이었다.


다윗의 삶도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갈망으로 삶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었다.


다윗 성이 있는 예루살렘의 멸망은 육신의 목적하는 바가 결국에는 패망하게되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새예루살렘의 평안이 임해야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 부정적 상황 가운데 살게 되어있다.


이것은 인간이 누구나 다 아담의 후손으로서의 죄인이라는 것에 대한 증거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부정적 상황을 통해서 역사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다 이러한 부정적 상황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16-17, 구원하시는 하나님)


인간이 아담의 후손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없이는 멸망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한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이러한 멸망에서 자유 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다른 이들을 멸망에서 구원해 낼 수가 없다.


인간은 누구나 다 죽음을 직면해야하기에, 어느 누구도 부정적 상황에 대해서 자유 할 수 있는 능력이나, 불평할 권리가 없다.


오직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를 해야할 뿐이다.



(18-19, 위험에서 붙드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신자가 실족할 때 잡아주시고 근심할 때 위로가 되신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상황 가운데서 간섭 하셔서 실족하지 않게 인도하시는 것들을 경험한다.


마치 어린 아이가 차도로 갈 때 잡아주는 부모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실족치 않게 보호하신다.


부모가 함께 하지 않고서 아이에게 평안을 기대할 수 없듯이, 성도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 가운데 평안과 위로를 경험한다.


아이가 보호받고 위로를 받는 것은 아이의 행함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오직  아이의 신분에 근거한 것이다.


성도는 행함에 관계없이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자녀로 택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


이는 성도가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할 이유 가운데 한 가지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간섭하심이 없다면, 인간은 모두 다 멸망의 길로 치달을 뿐이다.



(20-21, 행악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성숙을 위해서 행악자를 사용하시지만, 그렇다고 행악자들을 기뻐하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잠시 한시적으로 허용하시지만, 결국 심판대 앞에서 그들을 멸하신다.



(22-23, 안식이 되시는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궁극적인 안식이 되신다.


다윗의 삶의 여정 가운데서 경험하는 모든 핍박과 환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위로와 안식의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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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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