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3장'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7.12.29 :: 예레미야 13장 20-27절 말씀 묵상
  2. 2017.12.29 :: 예레미야 13장 12-19절 말씀 묵상
  3. 2017.12.29 :: 예레미야 13장 1-11절 말씀 묵상
예레미야 2017. 12. 29. 12:44

예레미야 13장 20-27절 말씀 묵상


20  너는 눈을 들어 북방에서 오는 자들을 보라 네게 맡겼던 양 떼, 네 아름다운 양 떼는 어디 있느냐

21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에 우두머리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네가 고통에 사로잡힘이 산고를 겪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

22  네가 마음으로 이르기를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내게 닥쳤는고 하겠으나 네 죄악이 크므로 네 치마가 들리고 네 발뒤꿈치가 상함이니라

23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검불 같이 흩으리로다

2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네 몫이요 내가 헤아려 정하여 네게 준 분깃이니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는 까닭이라

26  그러므로 내가 네 치마를 네 얼굴에까지 들춰서 네 수치를 드러내리라

27  내가 너의 간음과 사악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네가 행한 음란과 음행과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냐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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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잘못된 계략의 결과)


원래 아담에게는 창조명령을 통하여 에덴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는데 , 아담이 사단의 말을 듣고서 직책에 실패하였던 것과 같이, 유대의 직분자들, 즉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맡겨놓았던 양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과 우상을 쫓았던 관계로, 결국에는 북방민족의 침략으로 인하여 그토록 자랑하던 양떼들을 잃게되었다.


애굽과 우상을 의지하는 것이 급박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항상 급한 것보다는 중요한 것을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알고 있어도 워낙 오랫동안 하나님을 떠났던 관계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로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의지하기보다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는 유대인들이나 현대인이나 마찬가지이다.



(21-22, 세상을 의지한 결과)


세상을 의지하면 세상의 지배를 받는다.


마음을 하나님께 두고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한다.


신자에게는 교회나 가족이나 의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다고 하더라도 교회도 의지의 대상이 되면 우상이 될 수가 있다,


교회에서 우상 숭매가 만연하지만 이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교회가 의지의 대상이 될 때 우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교회를 의지 할 때, 교회가 오히려 자신을 지배하는 권력이 될 수도 있고 세상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이 당하는 수치는 이 세상을 의지한데서 오는 결과물이다.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23, 바뀔 수 없는 인간의 상태)


인간이 악에 익숙해있어서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인간은 누구나 아담의 후손이기에 원래부터 선을 행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타락한 인간은 사단의 종이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자유의지가 없다.


인간이 행하는 선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나온 것이며, 인간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진다면 이 세상은 악마의 세상이되며, 인간의 존재는 악마의 좀비일 뿐이다.



(24, 하나님의 흩으심)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는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견고한 약속을 근거로 어느 이방민족도 감히 건드릴 수가 없었던 거룩한 땅이었지만, 이제는 정 반대의 상황에 직면해있다.


이유는 한가지, 즉 우상숭배로 인하여 교만해진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고 그곳이 있는 인간까지 거룩한 것은 아니다.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나 교회나 마찬가지다.


교회 공동체의 교인이라고 견고한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가나안 땅에서의 위치를 견고하다고 생각하여 이를 의지하여 교만하여졌던 것과 같이, 교회의 규모를 자랑하며, 자신의 직책을 자랑하며, 교회 공동체에서 든든히 뿌리내렸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외적인 교회를 의지할 때, 바람에 흩날려가는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교인들도 뿔뿔히 흩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안식하여야 할 것이다.



(25, 거짓 것을 신뢰한 결과)


거짓 것은 총체적으로 우상과 일치된다.


교회의 외적인 규모, 안정된 직장, 든든한 재정적 여유, 장성한 자녀들 등등….


우리의 마음을 든든하게하는 모든 것이 다 거짓 것이 될 수 있다.


이런 것들에 의지하는 것은 거짓 것을 신뢰하는 우상 숭배이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의지하거나 의지할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신자는 어떠한 외적 환경에서도 목을 곧게 할 수가 없으며,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높아지려고 해서는 안된다.


인간이 스스로 높아지려는 순간, 실질적인 추락이 시작된다.



(26, 심은대로 보응받는 유대인)


유대인들은 절박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애굽을 의지하고 우상을 의지함으로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배제시킴으로 하나님을 수치스러운 존재로 만들었다.


이제 유대인의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외면하셔서 그들로하여금 수치를 당하게하신다.


교회가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있는 상황으로 인하여, 언젠가는 교회도 수치를 당할 때가 올 것을 염려해야한다.


신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그가 환란 가운데 있을 때 그를 구해주실 것이다.



(27, 오랫동안의 간음의 결과)


유대인들은 돌이키기에는 너무나 더러워진 상태에 있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사악한 행위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정죄하실 것이 두려워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던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미 간음에 길들여져있어서 돌이킬 수 없는 위치에 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문명의 발달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왔다.


문명을 거부하는 아미쉬들도 스마트폰에서는 자유할 수 없다는 기사를 보면서, 이제  하나님을 거부하는 현대 문명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와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결론)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을 의지해야한다.


교회공동체도 의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성도가 교제하는 것과 서로 힘이 되며 의지 할 대상이 되는 것은 다르다.


교회 공동체가 의지의 대상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교회 공동체에 종속되게되며, 더 나아가 교회 공동체가 우상으로 전락되며 교회 공동체로 인하여 수치와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현대인들은 점점 더 문명의 기기에 의존하면서 하나님을 배제하는 환경을 조성해가고 있다.


이럴 때 일 수록 더욱 경계하여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겠다.

posted by Wonho Kim
:
예레미야 2017. 12. 29. 12:42

예레미야 13장 12-19절 말씀 묵상

12  그러므로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모든 가죽부대가 포도주로 차리라 하셨다 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모든 가죽부대가 포도주로 찰 줄을 우리가 어찌 알지 못하리요 하리니

13  너는 다시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땅의 모든 주민과 다윗의 왕위에 앉은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예루살렘 모든 주민으로 잔뜩 취하게 하고

14  또 그들로 피차 충돌하여 상하게 하되 부자 사이에도 그러하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사랑하지 아니하며 아끼지 아니하고 멸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5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

16  그가 어둠을 일으키시기 전, 너희 발이 어두운 산에 거치기 전, 너희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어둠이 되게 하시기 전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17  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으로 말미암아 은밀한 곳에서 울 것이며 여호와의 양 떼가 사로잡힘으로 말미암아 눈물을 흘려 통곡하리라

18  너는 왕과 왕후에게 전하기를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관 곧 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졌다 하라

19  네겝의 성읍들이 봉쇄되어 열 자가 없고 유다가 다 잡혀가되 온전히 잡혀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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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악에 잔뜩 취한 자들)


should be filled with wine


I am going to fill with drunkenness


#채워져야할 포도주 대신에 어둠이 채워짐.

예루살렘의 모든 이들에게 어둠이….

하나님께서 내어버린 자들은 온갖 재난과 재앙에 휘말려들어갈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내어버리면, 유대의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도 자신들의 죄악에 취하여 서로를 상하게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여기에서 언급하는 선지자는 거짓 선지자를 말한다.


아담 안에서의 하나님의 형상은 왕, 선지자, 제사장의 직책으로 표현되었으며, 이는 에덴 공동체에서 아담을 통한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유대의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로하여금 자신들의 죄악에 취하도록 내어버려두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자신의 형상을 거두어 가심으로서, 더 이상 이스라엘과 함께하시지 않으시겠다는 상징적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내어버리시면 그동안 그들 가운데 억제되었던 죄악이,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이 날 뛰게 되어있다.


그 결과 공동체는 붕괴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14, 공동체의 붕괴)


14 ‡ I will smash them one against the other, parents and children alike, declares the LORD. I will allow no pity†or mercy or compassion†to keep me from destroying†them.’”Threat of Captivity


#하나님께서 주시는 파괴는 결과적으로 포로로 잡혀가는 것에 대한 위협이다.


구조는 남아있는 가운데 그 안에서의 충돌이 아니라 완전히 구조 자체를 없애는 걷어냄이다.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되는 공동체는 부자지간이다.


부자 사이에도 충돌이 있어 서로 상하게 하는 것은 가장 기본이 되는 일반은총 마져도 거두어 가신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님 안에서 기본적인 질서가 유지되었지만, 이스라엘 공동체도 아담의 후손들이었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게되면 아담의 후손이 가지고 있는 서로에 대한 파괴적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어있다.


우리는 주어진 좋은 환경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 안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면 유대 공동체와 같이 서로에 대한 파괴적인 본성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15, 끝까지 말씀하시는 하나님)

15 ‡ Hear and pay attention, do not be arrogant, for the LORD has spoken.†


15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


끝까지 교만하고 건방진 백성들에게 끝까지 말씀하시는 하나님


# 아담의 후손으로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성의 지독함을 보여준다.



(16, 마지막까지도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한다.)


마지막까지 자존심의 싸움?


끝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을 거부하는 유대인들.


우상 숭배는 하나님께 드려야할 영광을 사단에게 드리는 반역 행위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며, 우상에게 하나님의 귀한 것을 가져다 바친다.


이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흔하다.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도 당연히 생각하며, 감사하지도 않고,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사용한다.


욕심을 쫓는 것은 사단의 종노릇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것을 취하여 자신이 높아지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가 취하는 영광은 사망의 그늘이며, 어둠이기에 인간의 교만은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사라진,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17, 마음을 얻지 못하신 하나님)


17 ‡ If you do not listen,†I will weep in secret because of your pride; my eyes will weep bitterly, overflowing with tears,†because the LORD’s flock†will be taken captive.†


유대인들에게 대한 간절함은 그들의 형식이 아니라 마음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나오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간절함이 묻어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에 사랑하는 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끝까지 원하신다.


유대인의 우상숭배는 마음에서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기에 사랑하는 자로부터 받는 배신감과 상처로 인하여 하나님의 마음은 비통에 잠기신다.

교만은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의 영광으로 취하는 도둑질이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주신 축복을 자기를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교만은 사랑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에 눈물을 흘리게하는 악한 행위이다.


교만은 주신 자의 축복을 저주로 바꾸어 놓는 배은망덕의 행위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로 말미암아 언약 백성에 대한 상실의 마음을 가지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가 잘못되는 것에 대하여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 마음을 가지신 분이시다.


아담의 후손인 죄인들은 사랑과 눈물에 대하여 진실된 감각이 없지만, 신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이들이기에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하지 말아야한다.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사랑하시지 않으셨다면 이렇게까지 계속해서 마지막까지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모든 이들을 사랑하신다.



(18-19, 제거된 면류관)


18 ‡ Say to the king†and to the queen mother,†“Come down from your thrones, for your glorious crowns†will fall from your heads.”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에 보이는 왕을 원하였기에 세워진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리였으며,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왕권이 선포되는 자리였다.


왕으로하여금 보좌에서 내려와서 왕관을 벗으라고하는 것은 한 개인에 대한 자격 박탈 일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여기지 않으시겠다는 표현이기도하다.




인간은 자신이 누리는 좋은 환경을 교만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된다.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인간은 영광을 누릴 자격이 없다.


하나님의 것을 취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 때 하나님은 주신 영광을 도로 찾아 가신다.


중세 시대 교황이 그러했던 것과 같이 인간은 아담의 후손이기에 조금만 틈만 보여도 높아지려고한다.


교회의 영역은 절대로 자신이 영광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단지 풍요할 때 감사하고 교만하지 말아야한다.


교회에서 장사하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는 이들은 결국에는 하나님께 버림받을 수 밖에 없다.


(19. 내려진 막)


19 ‡ The cities in the Negev will be shut up, and there will be no one to open them. All Judah†will be carried into exile, carried completely away.


무대 공연의 종료를 선언하신다.


하나님의 선언이시며, 인간이 다시 시작 할 수가 없다.


아담의 후손이 어떠한 지에 대한 절망을 보여준다.



(결론)


산자는 신자이기 이전에 아담의 후손이다.


신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아담의 후손이라고 하더라도 부정적 상황 가운데 죄가 고발되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여야한다.


신자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부정적 상황을 불평하기 이전에, 부정적 상황에는 사랑하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심정이 내포되어있음을 생각하여야한다.


신자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긍정적 환경을, 자신을 자랑하는 교만의 도구로 사용하지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한다.


신자가 행하는 교만은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을 눈물로 돌려드리는 행위이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자기의 것으로 취해서는 안된다.


비록 거듭나지 않은 신자가 함께하는 외형적 교회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기 위해서 신자는 목을 곧게 세워서는 안된다.


직분자의 직책은 섬기는 직책이지 절대로 계급장이 될 수가 없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아담 안에서 죽은 자이기에, 자신에게는 절대로 자랑 할 것이 없는, 교만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마땅히 처할 낮아짐의 자리를 대신하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의 모든 교만과 높아짐을 담당하고서 낮은 자리에 들어가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어느 인간도 교만하거나 높은 자리에 설 수 없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인간이 교만하거나 높아지려는 자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부하는 것이다.


세상은 세상이기에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교만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교회 공동체는 교만을 허락 할 수 없는 곳이며, 어느 누구에게도 높은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낮아져야 할 죄인이 교만하게 높아질 때는 반드시 수치를 당할 수 밖에 없다.


이 악한 세대는 힘과 권력과 명예와 높아짐의 시대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구제 불능의 죄성


#-인간은 누구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아담의 후손으로서, 아무리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두드린다고 하더라도 열려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직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인간은 하나님께 마음 문을 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오직 은혜를 말할 수밖에 없다.


#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이며,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신다.


욕심에 이끌려 세상 것을 의지하는 현대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


나라가 북한 핵문제로 인하여 여러가지로 어려운 상황이 주어진 상황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읽어야한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우리에게 들으라고 말씀하시지만, 우리의 마음은 우둔하여서 하나님의 마음을 듣기에 너무 하나님을 멀리하고있는 것이 현실이다.


주여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아멘

posted by Wonho Kim
:
예레미야 2017. 12. 29. 12:40

예레미야 13장 1-11절 말씀 묵상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베 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물에 적시지 말라 하시기로

2  내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띠를 사서 내 허리에 띠니라

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4  너는 사서 네 허리에 띤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서 그것을 바위 틈에 감추라 하시기로

5  내가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가서 그것을 유브라데 물 가에 감추니라

6  여러 날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내가 네게 명령하여 거기 감추게 한 띠를 가져오라 하시기로

7  내가 유브라데로 가서 그 감추었던 곳을 파고 띠를 가져오니 띠가 썩어서 쓸 수 없게 되었더라

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10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따라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가 쓸 수 없음 같이 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 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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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선지자는 실제로 두 번이나 유브라데 강가에 갔다왔다고 보기 보다는 환상 가운데서 일어난 일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러한 외형적인 상징은 이해력이 부족한 유대인을 설득시키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적인 의도도 있을 것이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영광으로서, 허리에 띠는 띠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장식이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할 유대인들이, 유브라데 강가에서 여러날 동안 바위 틈에 감추어진 띠와 같이, 어둠 가운데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포로생활을 한 다음에는 썩어버린 띠와 같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모습으로 바뀔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주고계신다.


빨지 않은 띠와 같이 교만한 유대인들은, 포로 생활이 아니고는 교만한 특권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10, 듣지 않는 이들은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고 우상 숭배로 귀결된다.)



버림을 받았다는 말은 한 때는 귀하게 쓰임을 받았다는 것이다.


버림받는 것은 더 이상 듣기를 거절한데서 연유된다.


듣는 것은 순종의 조건이다.


듣기를 거절하는 유대인들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말씀이 제대로 선포되어야 하며, 성도들 간에도 말씀이 공유되어야한다.


말씀이 공유가 되지 않는 교회는 결과적으로 다 자신들의 굽은 마음대로 욕심에 이끌려 행동할 수밖에 없다.


말씀을 듣지 않는 자는 결국 유대인들과 같이 망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한국 교회의 몰락은, 말씀을 자기들이 듣기 좋은대로 왜곡시켜서 들었기 때문이며, 실상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았을 뿐만이 아니라, 듣지도 않은 결과물이다.



(결론)


성도의 힘은 여호와께로부터 온다.


자신이 잘 나가면 자신이 잘 나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


자신의 목에 힘을 주게되면 허리의 힘이 빠지게되며 결국에는 유대잊들과 같이 수치를 당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은혜와 선교사들의 피값으로 급성장한 한국 교회가, 마치 자신의 공로로 성장한 것인마냥, 그 교만으로 말미암아 힘이 빠져가고있다.


하나님께서는 포로로 끌려가기 직전의 유대인들에게도 끊임없이 경고의 말씀을 하셨듯이,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끊임없이 되새겨야할 것이다.


하나님의 예정을 말하는 장로교회는 모든 운명이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달려있는 것과 같이 무책임한 행동을 하고있지만, 유대인들의 잘못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외치심을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인간의 책임을 단순하게 인간이 이해하는 예정론적인 관점에서만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창세전 삼위 하나님의 구속 언약의 틀 안에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사가 진행되지만,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에 대한 간절함과 한없는 노력하심과 끝없는 두드리심은 결코 인간이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스스로를 속이고 착각하고있는 유대인들과 같이, 선민 의식에 빠져서 스스로를 속이며 자신이 하나님께 아무 문제거 없다고 스스로를 속이지는 말아야겠다.


유대인의 특권적 선민의식과 같이,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의한 특권의식에 빠진 이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부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취향대로 왜곡시켜서 들으며, 허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인간은 모두 아담의 후손이기에, 내면의 높아지고자하는 마음이 꺽일 때, 썩어버린 띠와 같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질 때, 교만한 특권의식이 사라질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수 있음을 생각해본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받은 신자는, 자신의 잘남에 의한 것이 아무 것도 없기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밖에 없으며, 또 다시 유대인과 같은 특권의식이나 교만에 사로잡혀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 교회의 실상을 보게되면, 특권의식과 교만과 더불어,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입으로만 하나님을 말하며, 마음에서는 하나님과 멀어져있는 모습을 흔하게  보게된다.


아무리 그리스도의 은혜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교만한 이들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심판하시기에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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