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7. 12. 29. 12:44

예레미야 13장 20-27절 말씀 묵상


20  너는 눈을 들어 북방에서 오는 자들을 보라 네게 맡겼던 양 떼, 네 아름다운 양 떼는 어디 있느냐

21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에 우두머리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네가 고통에 사로잡힘이 산고를 겪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

22  네가 마음으로 이르기를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내게 닥쳤는고 하겠으나 네 죄악이 크므로 네 치마가 들리고 네 발뒤꿈치가 상함이니라

23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검불 같이 흩으리로다

2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네 몫이요 내가 헤아려 정하여 네게 준 분깃이니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는 까닭이라

26  그러므로 내가 네 치마를 네 얼굴에까지 들춰서 네 수치를 드러내리라

27  내가 너의 간음과 사악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네가 행한 음란과 음행과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냐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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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잘못된 계략의 결과)


원래 아담에게는 창조명령을 통하여 에덴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는데 , 아담이 사단의 말을 듣고서 직책에 실패하였던 것과 같이, 유대의 직분자들, 즉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맡겨놓았던 양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과 우상을 쫓았던 관계로, 결국에는 북방민족의 침략으로 인하여 그토록 자랑하던 양떼들을 잃게되었다.


애굽과 우상을 의지하는 것이 급박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항상 급한 것보다는 중요한 것을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알고 있어도 워낙 오랫동안 하나님을 떠났던 관계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로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의지하기보다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는 유대인들이나 현대인이나 마찬가지이다.



(21-22, 세상을 의지한 결과)


세상을 의지하면 세상의 지배를 받는다.


마음을 하나님께 두고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한다.


신자에게는 교회나 가족이나 의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다고 하더라도 교회도 의지의 대상이 되면 우상이 될 수가 있다,


교회에서 우상 숭매가 만연하지만 이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교회가 의지의 대상이 될 때 우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교회를 의지 할 때, 교회가 오히려 자신을 지배하는 권력이 될 수도 있고 세상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이 당하는 수치는 이 세상을 의지한데서 오는 결과물이다.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23, 바뀔 수 없는 인간의 상태)


인간이 악에 익숙해있어서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인간은 누구나 아담의 후손이기에 원래부터 선을 행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타락한 인간은 사단의 종이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자유의지가 없다.


인간이 행하는 선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나온 것이며, 인간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진다면 이 세상은 악마의 세상이되며, 인간의 존재는 악마의 좀비일 뿐이다.



(24, 하나님의 흩으심)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는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견고한 약속을 근거로 어느 이방민족도 감히 건드릴 수가 없었던 거룩한 땅이었지만, 이제는 정 반대의 상황에 직면해있다.


이유는 한가지, 즉 우상숭배로 인하여 교만해진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고 그곳이 있는 인간까지 거룩한 것은 아니다.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나 교회나 마찬가지다.


교회 공동체의 교인이라고 견고한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가나안 땅에서의 위치를 견고하다고 생각하여 이를 의지하여 교만하여졌던 것과 같이, 교회의 규모를 자랑하며, 자신의 직책을 자랑하며, 교회 공동체에서 든든히 뿌리내렸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외적인 교회를 의지할 때, 바람에 흩날려가는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교인들도 뿔뿔히 흩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안식하여야 할 것이다.



(25, 거짓 것을 신뢰한 결과)


거짓 것은 총체적으로 우상과 일치된다.


교회의 외적인 규모, 안정된 직장, 든든한 재정적 여유, 장성한 자녀들 등등….


우리의 마음을 든든하게하는 모든 것이 다 거짓 것이 될 수 있다.


이런 것들에 의지하는 것은 거짓 것을 신뢰하는 우상 숭배이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의지하거나 의지할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신자는 어떠한 외적 환경에서도 목을 곧게 할 수가 없으며,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높아지려고 해서는 안된다.


인간이 스스로 높아지려는 순간, 실질적인 추락이 시작된다.



(26, 심은대로 보응받는 유대인)


유대인들은 절박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애굽을 의지하고 우상을 의지함으로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배제시킴으로 하나님을 수치스러운 존재로 만들었다.


이제 유대인의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외면하셔서 그들로하여금 수치를 당하게하신다.


교회가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있는 상황으로 인하여, 언젠가는 교회도 수치를 당할 때가 올 것을 염려해야한다.


신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그가 환란 가운데 있을 때 그를 구해주실 것이다.



(27, 오랫동안의 간음의 결과)


유대인들은 돌이키기에는 너무나 더러워진 상태에 있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사악한 행위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정죄하실 것이 두려워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던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미 간음에 길들여져있어서 돌이킬 수 없는 위치에 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문명의 발달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왔다.


문명을 거부하는 아미쉬들도 스마트폰에서는 자유할 수 없다는 기사를 보면서, 이제  하나님을 거부하는 현대 문명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와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결론)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을 의지해야한다.


교회공동체도 의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성도가 교제하는 것과 서로 힘이 되며 의지 할 대상이 되는 것은 다르다.


교회 공동체가 의지의 대상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교회 공동체에 종속되게되며, 더 나아가 교회 공동체가 우상으로 전락되며 교회 공동체로 인하여 수치와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현대인들은 점점 더 문명의 기기에 의존하면서 하나님을 배제하는 환경을 조성해가고 있다.


이럴 때 일 수록 더욱 경계하여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겠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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