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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018. 6. 1. 22:57

신명기 17장 14- 20절 말씀 묵상

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입성하였을 때에는 여러가지 긴장감과 하나님에 대한 경험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잠재되어있던 본성을 억누를 수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적일 수 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나안에 입성하였을 때의 긴장감이 사라지게되면 인간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본성대로 가게 마련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 주변의 이방민족들은 하나님 없이도 자신들의 본성대로 왕을 중심으로 사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주위의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심성을 가지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왕을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종속됨으로서 안정을 찾기 원하는 종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하나님을 갈망하는 본성이 타락으로 인하여 왜곡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을 허락하신 것은, 그들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넘어설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하나님의 배려를 우상 숭배와 연결시킨다.

이스라엘은 므낫세의 범죄를 비롯하여 왕들의 범죄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우상에 자신을 종속시키려는 백성들의 본성을 보여주고있다.

이는 모든 인간의 본성이면서, 교회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러한 노예 본성은 목사를 신격화시키려는 교인들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목사는 결코 의지할 대상이거나 섬김의 대상이 아니다.

인간은 사는 날 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노예 근성과 끊임없이 싸워야만 할 것이다.



15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권위는 전부 거짓의 영에 의한 것이다.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과의 혼인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순수성을 상실시켰다.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권위를 입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예표하는 것이며, 이는 아담 안에서 상실된 하나님의 왕권을 회복시키며 완성시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왕들이 보여준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아담의 타락과 같이, 인간이 하나님의 왕권을 이 땅에 선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타국인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맥락에서 벗어난 이들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할 왕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아브라함의 자녀에게서 나와야한다.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녀인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왕권을 이 땅에 선포하는 왕같은 이들이다.

성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땅의 사람들에게 자신을 종속시킨다면, 이는 자신 안에서 선포되어야 할 하나님의 왕권을 실추시키는 것이다.



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솔로몬은 가장 지혜있는 자였지만, 그 지혜가 교만이 되어 타락의 길로 빠져 들 수 밖에 없었다.

병마가 많아진다면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마음이 사라지면서 자신의 힘을 의지하게 될 것이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은 다시 세상을 의지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솔로몬의 부귀는 하나님의 축복을 저주로 바꾸어버렸다.

애굽을 비롯한 각국에서 보내온 말들을 비롯하여, 병거와 마병의 규모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이방의 부정적인 것들도 같이 들어온다는 것에 대하여 경계를 소홀히 하였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인간적 시행착오로 얻은 지혜를 모두 가질 수 있었지만, 이미 많은 시행착오를 통하여 얻은 지혜는 이스라엘에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의 씨앗을 심었던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이는 성공한 교회의 목회자들이 대부분 타락의 길을 걸어가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풍요는 이스라엘의 몰락을 가져왔으며, 결국 패망 직전에 애굽에 돌아가서 도움을 청하는 수치를 행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담을 그릇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라고 할지라도,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육신의 소욕에서 자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한다.

성공한 이들은 솔로몬과 같이 지혜의 한 가운데에서 지혜의 그늘에 파 묻혀버릴 수 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겸손하고 조심해야한다.


18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모세의 본론은 율법의 모든 말과 규례를 지켜 행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희망차게 들어갔던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의 실상은 행함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요시야왕은 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을 보수하다가 발견한 율법책을 읽고서야 옷을 찢고서 통곡을 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은 타락한 이스라엘의 한 가운데에서도, 요시야왕의 통곡을 기뻐받으셨다.


율법책이 성전을 보수하다가  발견된 것은, 모세의 명령과 같이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율법 책이 왕의 곁에서 읽혀진 일이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왕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왕권을 이 땅에서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구현하여야하는 의무를 가지고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율법책을 읽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뜻을 실행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처음 아담은 에덴에서 하나님의 왕권을 드러내는 자로서, 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곁에 두고서 여호와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워야 할 자였다.


이스라엘 왕들의 실패는 왕으로서의 아담의 타락을 기억하게하며, 모든 인간이 아담 안에서 타락된 존재임을 드러내주고있는 것이다.


왕은 백성을 대표한다.


처음 아담은 모든 인류를 대표한다.


처음 아담의 반역이 모든 인류의 타락을 초래하였듯이, 이스라엘 왕들의 타락은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의 타락을 초래하였다.


모압 땅에서의 모세의 강론은 이스라엘의 죄를 드러내면서 그리스도를 예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왕들의 타락의 역사였으며, 왕들의 타락을 통해서 아담으로 대표되는 인류의 타락을 증명해주고있다.


타락한 인간은 이미 아담 안에서 죽어 육신이 된 존재이기에, 인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킬 수가 없다.


이스라엘의 왕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말씀을 곁에 두려고하지도 않는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간에게 행위에 의한 구원이 불가능함을 보여주고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알고있던 모세가 인간에게 불가능한 요구를 하였던 것은, 오직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이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담 안에서 상실되었던 왕권을 회복하심으로서, 신자를 사탄의 권세로부터 구해내어 자기 백성 삼으셨다.


신자는 왕되신 그리스도의 백성으로서, 이미 창세 전 성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주시고자 작정된 자들이다.


아담에게 요구되었된 명령과 이스라엘에게 요구되었던 하나님의 말씀의 원형은 창세 전 삼위 하나님의 구속 언약 안에서 그리스도께 요구되었던 순종이다.


창세 전 삼위 하나님의 구속 언약 안에서, 성부 하나님께서는 기쁘신 뜻 가운데 택한 자를 그리스도께 주심으로서, 그리스도는 그들의 왕으로서, 그리고 중재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통하여, 택한 자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대표하는 왕들의 범죄로 인하여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지만, 왕되신 그리스도는 자기의 백성을 위하여 성부 하나님께 자신을 복종시켜서 완전한 순종을 이루심으로서, 신자로 하여금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하셨다.


신자의 삶은 모압 땅에서 모세를 통하여 선포되었던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그리스도의 순종을 본받아서, 그리스도의 순종의 향기를 전하는 삶이 되어야한다.


성도는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처음 아담 안에서 상실되었던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창세 전 삼위 하나님의 언약을 근거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사역에 의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다.


성도가 매일 묵상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기 위한 첫번째 요구 사항이다.


그리스도의 왕권이 성도 안에서 구현되기 위해서는 매일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20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왕위가 장구하기 위해서는 항상 말씀을 품고 이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성도는 비록 이를 다 실행할 수 없지만, 중보자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장구한 날을 살아갈 수 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 나라 백성일 수 있다.


육신으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없다.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야하며, 선포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요구된다.


하나님 나라와 불순종은 양립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불순종의 자녀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담이 모든 인류를 대표하듯,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은 모든 인간들의 실상을 대표해서 보여주고있는 것이다.


가나안에서의 불순종은 순종에 대한 또 다른 방식의 필요성을 제기해 준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졌지만, 다윗의 범죄는 육신의 한계를 보여주면서 구원자의 필요성을 제기해주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으며, 동시에 둘째 아담으로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은  레위지파를 따른 거시 아니라 멜기세댁을 반차를 쫓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댁의 반차를 쫓아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것은, 이 땅에서의 가나안을 완성하시기 위함이 아니었다.


육신에 속해있는 이스라엘을 영구할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 이스라엘과 이에 속한 백성들만이 장구할 뿐만 아니라, 영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성도에게 참된 소망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는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은 눈물이 없을 것이다.


전쟁과 서로를 상하게하는 일들과 환경의 재앙과  낙담과 슬픔과 이별과 외로움과 질병과 온갖 부정적인 요소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에는 육신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리워졌던 천상의 세계가 드러날 것이며,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어 인간이 생각하지 못했던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할 것이다.


성도는 그 날을 소망하면서 슬픔과 고통이 가득한 이 땅을 한시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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