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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018. 6. 4. 22:52

신명기 19장 1-13절 말씀 묵상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여러 민족을 멸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땅을 네게 주시므로 네가 그것을 받고 그들의 성읍과 가옥에 거주할 때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 가운데에서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고
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


이스라엘이 축복을 받을 근거가 없는데도 축복을 받는 것은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나쁜 일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은 일종의 살인한 자가 도망할 도피성과 같은 곳이다.

도피성에 도망한 이들은 반드시 판결을 받아야한다.

가나안의 이스라엘은 판결을 받기 위해 검증 과정에 들어간 이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한 아담의 후손으로서, 이미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수 많은 살인을 한 자들이며, 마음으로 하나님을 죽인 자들이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이스라엘의 행위는 마음에 가득한 것이 우러나온 것이다.

이스라엘은 도피성과 같이, 임시적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만, 종국에는 그들의 행위가 세밀히 조사되어 형집행을 받게되는 것이다.

도피성은 이스라엘 전역 어디서나 쉽게 도달될 수 있는 곳에 세워졌으며,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만약에 광활한 지역 전체를 한 구역으로 정한다면, 살인자가 도피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며, 도피성의 개념은 이스라엘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개념이 되었을 것이다.

도피성은 이스라엘의 영역 확장과 더불어 확대되어 세워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도피성은 길을 닦아서 접근성이 용이하도록 함으로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이스라엘의 도피성의 역할은 한시적이었지만, 참이스라엘이신 그리스도는 성도의 영원한 도피성이 되신다.

도피성이 가까이 있고 길도 닦여있듯이, 영원한 구원에 이르는 길은 누구에게나 쉽게 열려있는 것이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여러가지 철학적 논리나 고도의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직 성령의 은혜로 쉽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예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마 9:12)”고 하신 말씀과같이, 영원한 도피성이 되신 그리스도는 자신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는 자에게만 구원자가 되실 것이다.



4  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우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인 일,
5  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의 이웃을 맞춰 그를 죽게 함과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억울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이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시어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의 악행이 증명되지 않고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면, 억울해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을 통하여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드러내심으로서, 억울한 마음을 갖는 이들이 없도롱 배려하신다.

도피성은 구원과 심판을 위한 곳이다.

도피성은 죄를 죄로 드러나게 하는 곳이며, 동시에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징검다리와 같다.



6  그 사람이 그에게 본래 원한이 없으니 죽이기에 합당하지 아니하나 두렵건대 그 피를 보복하는 자의 마음이 복수심에 불타서 살인자를 뒤쫓는데 그 가는 길이 멀면 그를 따라 잡아 죽일까 하노라


복수심에 불타서 살인자를 뒤쫓는 이는 모든 인간에 해당될 것이다.

아담 안에서 타락한 이들은 하나같이 복수심에 불타있는 이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죽이고자 선악과 금령을 정하신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순종을 요구하신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만이 하나님과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었지만, 아담의 불순종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했던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을 에덴 바깥으로 내어쫓으신 것은, 아담과 한 약속, 즉 행위 언약으로서의 아담 언약을 지키셔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은 하나님께 향한 복수심에 불타있다.

인간은 하나님없이도 잘 살수 있다는 반항위 길을 가기 시작한 것이다.

가인은 자신의 제사가 배척을 당함에 대하여 얼굴을 붉히면서 하나님께 대하여 등을 돌리고 하나님을 소외시키는 삶을 시작함으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생활을 시작한다.

에녹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개벽을 뜻한다.

가인이 건설한 에녹성은 스스로 만든 도피성이면서, 도시의 출발이 되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도시인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배제하고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살아가고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을 살고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의식이나 생각을 안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가인과 같이 하나님을 소외시키는 도시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들에게 일반 은혜라는 또 다른 보호막으로서의 도피성을 제공하심으로서, 도시생활이 한시적으로 보호받게끔 은혜를 베푸신다.

하지만 도피성에서의 보호가 한시적이듯, 일반 은혜 가운데 있는 이 세상도 심판때까지 한시적으로 보호되고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생활이, 이스라엘이 심판받기에 합당한 모습을 보여주었듯이, 마지막 때에 일반 은혜의 보호막 가운데 있는 인간들의 삶의 문화는 스스로가 보아도 하나님께 심판받기에 합당한 모습이 되어있을 것이다.



7  그러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기를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라 하노라
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혀 네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신 땅을 다 네게 주실 때

9  또 너희가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항상 그의 길로 행할 때에는 이 셋 외에 세 성읍을 더하여
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이같이 하면 그의 피가 네게로 돌아가지 아니하리라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도피성을 세운다.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것은 땅을 더럽히는 것이다.

가인은 아벨을 죽임으로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렸다.

더럽혀진 땅은 저주를 받은 땅이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 4:10-12)”

가나안의 풍요는 저주받은 땅과는 대조를 이룬다.

땅은 축복의 근원이면서 저주의 근원이다.

아담은 에덴에서 땅의 소산을 풍요롭게 먹을 수 있었지만, 에덴 바깥의 땅은 불순종으로 인한 저주로 가시덤불와 엉겅퀴를 내게되었다.

가나안의 풍요는 저주로부터의 해방이었으며, 가나안은 도피성과 같이, 인간에게 주어진 형벌이 한시적으로 보류된 곳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풍요의 땅에서 잘못되는 것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다.

가나안은 타락한 인간이 심판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인지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더 확인하는 곳이었다.



11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이웃을 미워하여 엎드려 그를 기다리다가 일어나 상처를 입혀 죽게 하고 이 한 성읍으로 도피하면


가인이 건설한 에녹성은 도피성의 성격을 가지고있다.

살인한 것에 대한 보복이 두려워 성을 쌓음으로서 스스로를 보호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만들라고하신 도피성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에녹성으로부터 시작된 도시는 도피성의 역할과 같은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되며, 이는 하나님께서 도시에서 이루실 구원의 표식이 된다.

도시인들에게 주어진 일반 은혜는 궁극적으로 구원을 위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심판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도시에서 이루실 구원의 표식은 예루살렘에서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구원의 도시인 예루살렘은 아담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구원을 제공해주진 못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하여 거듭난 이들에게만 영원한 구원의 도성인 새예루살렘이 영원한 도피성으로 제공될 것이다.


12  그 본 성읍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거기서 잡아다가 보복자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할 것이라

13  네 눈이 그를 긍휼히 여기지 말고 무죄한 피를 흘린 죄를 이스라엘에서 제하라 그리하면 네게 복이 있으리라


영원한 도성을 예표하는 가나안은 지속적인 성결작업이 필요한 곳이다.

만약에 아담이 공로로 인하여 영원한 나라에 들어갔다면, 인간이 그곳에서 범죄의 가능성이 없다고 장담 할 수가 없다.

마치 결혼 전에 연애를 잘하였다고 하더라도 결혼 후에 변화하듯이 인간은 변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의존해야만 하는 이유다.

그리스도께서 값주고 사신 이들에게는, 궁극적으로 기업으로 주실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무죄한 피를 흘림이 없다

그리스도의 피는 무죄한 자의 피흘림이었지만,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은 이들은 영원한 죄용서 가운데 있게된다.

가나안에서는 인간의 불완전성으로 인하여 피흘림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인생은 오직 그리스도의 완전하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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