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장 1절 묵상
김원호(dent4834@hanmail.net)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은 자신의 서신서에서 자신의 신분과 직책, 그리고 소임에 대하여 설명한다.
종이라는 의미는 일꾼이라는 역할의 의미 이전에 주인의 소유물이라는 신분을 나타낸다.
종이라고 반드시 일꾼인 것은 아니다.
종은 주인이 일을 하지 말라고하면 일꾼이 될 수 없기도한다
또한 종은 신앙인 가운데 특정 부류만 가리키는 신분도 아니다.
흔히들 목회자를 주의 종이라고 말하지만 모든 신자는 주의 종이다.
신자는 그리스도께서 피값으로 사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소유물로서의 주의 종이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종이다.
마치 요셉이 가뭄으로 굶주린 애굽인들에게 곡식을 팔아 애굽인들을 바로의 종으로 드렸듯이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셔서 하나님께 드려진 하나님의 소유물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종이 아닌 것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들의 죄의 값을 치르시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오직 택한 자들만을 위해서 속죄 사역을 하셨기에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오직 신자들만이 주의 종이다.
오직 창세 전에 택정함을 입은 자들만이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오직 이들만이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한 것은 모든 신자가 공통적으로 고백할 수 있는 신자의 신분으로서의 표현이다.
종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사회적 비하가 아니다
톰 라이트는, 바울이 자신을 종이라고 부른 것은 사회적인 비하를 내포하고있는 것이라고 말한다.(톰 라이트, 로마서, 38)
이러한 해석은 복음을 윤리적으로 접근하는 이들의 해석이다.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겸손의 표시가 아니라 자신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상대방에 대한 겸손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종이라는 표현에는 자신의 주인인 그리스도를 소개하고자하는 의도가 내포되어있다.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 함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자신을 사셨는지에 대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종이라는 표현이 겸손에 대한 표현이었다면 로마서 전체가 자신과 같이 겸손한 사람이 되기 위한 서신이 될 것이다.
실제로 톰 라이트는 로마서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본받는 겸손한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한다.
새관점에서 말하는 그리스도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따름의 대상이다.
하지만 바울이 로마서를 통하여 진정 말하고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삶에 대한 것이다.
겸손은 다른 사람과의 수평적 관계에서 나온 표현이지만 종은 수직적 관계에서 나온 표현이다.
복음은 일차적으로 수평적 관계를 위한 것이 아니다,
복음은 일차적으로 수직적 관계를 위한 것이며 수평적 관계는 어디까지나 이차적인 것이다.
톰 라이트는 바울이 앞으로 방문하게될 로마 사람들에게 겸손을 표시하기 위해서 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고 말하지만 이는 바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해석이다.
목회자는 주의 종인가?
종종 목회자를 주의 종이라고 부르기도한다.
하지만 주의 종이라는 말은 목회자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창세 전에 택하신 자를 위해서 돌아가셨고 이들을 피값으로 사셨기에 모든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종은 신자의 신분이며 직책은 아니다.
바울은 자신의 직책을 사도라고 표현한다.
목회자를 직책의 관점에서 주의 종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
목회자를 주의 종이라고 칭하는 것은 역으로 일반 성도는 주의 종이 아니라는 말을 내포한다.
모든 인간은 죄의 종이다
이 세상에 죄 없는 자는 없다.
인간은 죄를 짓기 이전에 존재론적으로 죄인이다.
죄인이기에 죄를 짓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한 여인을 데리고 온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다(요 8:4).
서기관과 바리세인은 하나님 말씀을 가장 잘 알고 자신들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죄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고 말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인으로서 죄의 종이다.
하지만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더이상 죄의 종이 아니다.
신자는 진리 안에서 자유케된 이들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진리이다.
성도는 말씀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종이기에, 말씀 안에 거할 때 더 이상 죄가 지배하지 않는 참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함으로서, 자신이 전하는 하나님의 복음이 자신에게서 출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출발된 것임을 말하고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자신의 생각에서 출발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어떤 신학자는 4복음서와 바울 서신서가 서로 대립적 관계에 있다고 해석하면서,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복음이 4복음서에서 전하고있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킨다고 말하기도한다.
하지만 바울은 신학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도이다.
사도와 신학자는 구분되어야한다.
어떤 목회자는 설교시간에 노골적으로 사도를 목사라고 칭하면서 자신을 자칭 사도라고 부르는 거짓을 말하기도한다.
복음 전파는 자신의 인간적인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과 3년간의 공생애 사역을 같이하였지만 성령이 임하기까지는 복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세는 40세에 사명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이없이 자신의 인간적인 방식으로 먼저 나섰기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모세는 80세가 되어서 더 이상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부르심을 받았다.
바울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가장 혈기 왕성하던 상황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왕성한 의욕을 가졌던 40세의 모세나 다메섹 도상에서의 사울은 분명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사명감에 충만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시작한 목회 사역은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가져다 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은 복음 전파를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하여서는 안된다.
불행하게도 수 많은 교회의 현장에서는 목회자가 표면적으로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다고하면서도 자신의 욕심에 이끌리는 목회를 하고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의 잘못된 행위는 세상 끝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들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이들이야말로 복된 성도일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된 좋은 소식이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따로 부르셔서 전하고자하는 복음은 창조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근원적인 불행에 대한 해결책이다.
인간 세상의 어느 족속이나 예외없이 어두움 가운데 묶여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하나님의 복음은 인간이 잘못된 불행에 묶여있는 것에서 자유케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복음은 모든 이들을 위한 복음이 아니기에 현세적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동일한 개념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죄인을 사심으로 죄인을 악에서 구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오직 믿음을 고백하는 이들만 그리스도의 백성이기에 이 세상이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의 나라이지만 구속의 나라는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들의 죄값을 치르시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택한 자들만의 죄값을 치르셨고 오직 택함받은 자들만이 믿음을 고백하게된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들의 죄값을 치르셨다면 바울의 복음 전파의 내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믿음을 요구하는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셨다고 선포하는 복음으로 바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신정통주의자, 새관점주의자, 선교적 교회 운동가 등등….)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셨다는 소식을 모든 이들이 인식하도록하는 것을 복음 전파의 내용으로 말하고있다.
이는 마치 1945년에 대한민국이 일제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과 같이 사실을 인정하는 이들에게만 해방이 적용되지 않고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사실을 전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톰 라이트와 같이, 이 땅에 이미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었다고 말하는 이들은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만들려고한다.
이들은 보편구원을 추구하며 개인의 회개나 신앙고백을 구원의 조건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그냥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셨다는 소식을 전하고 이에 동참하는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구원은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은 택한 자들에게만 적용된다.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복음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대한 신앙고백을 요구하는 복음이다.
(택정함을 입었으니)
사도로서의 사역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스스로의 결정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분리시켜서 거룩하게하시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도록 명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결정에 있어서 언제나 하나님의 예정이 앞선다.
하나님의 예정은 인간이 지음을 받기 이전에 정하신 것이다.
인간의 결정은 하나님의 예정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인간의 모든 행함의 동기에는 하나님의 예정이 앞서기에 인간이 자신의 공로를 주장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논리를 앞세울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부르셔서 따로 세우신 바울뿐만이 아니라 모든 신자도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따로 세우신 자들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세상적인 것으로부터의 분리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세상과의 분리라는 과정이 반드시 수반되어야한다.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복음을 신자로서의 삶의 근거로 삼아야한다.
신자가 세상에서 사는 것은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다.
신자는 처음 아담에 속하여있지 않고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말미암아 거듭난 이들이다.
신자의 세상에서의 삶은 세상과의 끊임없는 투쟁의 과정이 수반되어야한다.
신자는 바울과 마찬가지로 택정함을 입은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육신의 소욕과 싸워나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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