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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020. 7. 17. 22:41

로마서 1장 2절 묵상


김원호(dent4834@hanmail.net)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복음의 5가지 구성 요소


하나님


복음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기독교 이외의 모든 종교는 인간이 주체가 되어서 인간이 만든 종교이다.


인간 세계에 종교가 없는 종족이 없으며 또한 모든 종족의 중심에는 종교가 있다.


그만큼 인간에게 하나님과 구원은 삶의 주제였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출발되지 않은 어떠한 종교와 철학도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해주지 못한다.


역사 속에 수많은 인간들이 오랜 역사를 통해서 그렇게 많은 고민과 생각을 통해서 구원의 문제와 씨름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지 않고는 어떠한 결론에도 도달할 수 없었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구원의 문제와 씨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어느 누구도 죽음의 문제를 비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내린 모든 결론은 빛이 없는 흑암으로 결론이 나지만,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복음은 흑암에 비추이는 빛과 같이 또 하나의 창조의 과정이었다.


창조주 하나님은 물질적인 세계만을 창조하신 분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어있던 생명체에 살아 숨쉬는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신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지만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스스로 숨을 쉬면서 하나님의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새생명을 불어넣으심으로서 택하신 자로하여금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게하는 복을 주신다.


복음의 주체가 하나님이시듯이 복음에는 구원의 근거에 인간의  공로가 가미될 수 없다.


인간의 공로가 요구되는 어떠한 이론도 더 이상 참된 복음일 수가 없으며, 더군다나 하나님의 복음일 수 없다.


하나님의 복음은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전적인 인간의 부패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개념이 전제가 되어야 참된 복음이 될 수 있다.



선지자


최초의 선지자는 아담이었다.


아담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아담에게 주어졌던 선지자로서의 역할은 모든 피조 세계에 하나님의 왕권을 선포하는 일이었다.


하나님의 왕권의 선포는 처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비가시적인 하늘과 가시적인 땅의 연합에 있었다.


모세는 창세기 1장 1절에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 하셨다고 기록한다.


태초에 비가시적 하늘과 가시적 땅이 창조되었던 것이다.


에덴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하나님의 왕권이 선포되는 곳이었다.


에덴에서 아담이 순종에 성공하였다면, 아담은 이 땅에서 에덴을 확장시키고 이 땅에 하나님의 왕권을 선포함으로서, 이 땅이 하늘과 연합되는 곳이 되었을 것이다.


아담의 불순종은 아담이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왕권을 선포하는 직책에 실패함으로서, 이 땅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에게 종속되게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대한 왕권을 회복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세우시기로 작정하시고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자신의 아들을 준비시키셨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아들에 관하여 예언을 하였으며 아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왕권을 선포하심으로서 최종적 선지자가 되셨다.


선지자의 최종적 역할은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왕권의 선포이며, 이 땅에 하나님의 왕권이 완성되는 마지막 날에는 하늘과 땅이 연합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것이다.



그의 아들


그의 아들, 즉 하나님의 아들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내용의 중심에 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지만 복음을 훼손하려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의 중심에서 제하려는 시도를 한다.


톰 라이트의 경우는 성경의 몸통은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이라고 주장하며, 출애굽한 이스라엘 이전과 신약은 머리와 꼬리라고 말한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예수는 유대주의 이스라엘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오신 부차적인 인물일 뿐이다.


현대신학은 기독론보다는 신론 중심의 복음을 주장함으로서 보편구원론을 추구한다.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대표성을 가진다.


처음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류를 대표한다.


둘째 아담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신자를 대표한다.


구원을 위한 복음은 아들에 관한 복음이어야한다.


아들에게 요구되는 첫번째는 아버지에 대한 순종이다.


불순종으로는 아들이 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성경 해석은 둘째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처음 아담의 불순종의 문제를 해결하신 분으로 묘사되어야만한다.


처음 아담과 둘째 아담의 대비는 처음 아담에게 주어졌던 언약이 순종을 요구하는 행위 언약이었다는 개념이 전제가 되어야만 한다.


칼 바르트를 비롯한 신정통주의자들은 아담의 행위 언약을 부정하기에 둘째 아담으로서의 순종의 의미, 즉 능동적 순종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기에 능동적 순종이 배제된 십자가에서의 수동적 순종의 전가만 인정한다.


능동적 순종의 전가가 배제된 전가 교리는 모든 이들에 대한 속죄 개념으로 확장되며 결과적으로 만인 구원론으로 귀결 될 수밖에 없다.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리스도는 처음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은 원시복음(창 3:15)으로부터 시작된 둘째 아담으로서의 그리스도이어야한다.


톰 라이트는 처음 아담의 범죄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적에 암묵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간주하였다고 주장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처음 아담과의 관계성을 배제하고서 해석한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의를 신자에게 전가시키신 분이 아니며 단지 로마에 대항하는 혁명적 죽음으로서 삶의 본을 보여주신 분일 뿐이다.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실 필요도 없기에 톰 라이트는 그리스도의 신격을 손상시키며 결과적으로 삼위일체 개념마저도 훼손시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선지자들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한 신격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복음의 중심에 있으신 분이시다.



성경


하나님께서 성경에 미리 약속하셨다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증거이다.


성경을 통하여 미리 약속하신 주체는 하나님이시기에 성경 말씀을 기록하신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성경을 기록한 주체가 아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은 단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을 되었을 뿐이다.




성경의 저자가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아들에 관한 약속을 성경에 기록하시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아담 안에서 범죄한 사람은 증인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없으며,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으셔서 사람의 책에 자신의 약속을 기록 하시지는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도록하신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증거이다.


칼 바르트는 성경이 인간이 하나님에 관하여 기록한 인간의 책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성경의 저자가 인간이라면 성경은 언제나 새로운 버전으로 수정 보완 되어야하지만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기에 성경은 일점 일획도 수정 보완 될 수가 없다.


성경은 복음을 위해 기록된 책이다.


구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의 한 부분이지만 그 중심은 아들을 증거하기 위한 기록이다.



미리 약속하신 복음


하나님의 복음은 아담의 범죄 직후에 바로 약속되어졌다.(창 3:15)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요구하셨던 순종은 창조 세계의 완성을 위한 것이었다.


아담은 불순종함으로서 이 땅에 하나님의 왕권을 선포하여야할 자격을 상실함으로서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에 손상을 가져다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불순종 직후에 둘째 아담에 대한 약속을 하심으로서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왕권이 온전하게 선포되도록 계획하시고 선지자를 통하여 아들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신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땅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왕권이 회복된다.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왕권이 회복되었다고 이 땅이 구속을 받은 것은 아니다.


이 땅은 최후의 심판까지 의인과 악인이 공존하는 세상으로서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까지 이 땅은 죄 가운데 놓여질 것이다.


문화칼빈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모든 피조 세계의 구속을 의미하는 우주적 교회론을 주장하지만, 아직 최후의 심판이 남아있기에, 하나님의 왕권의 회복과 구속은 구분되어야한다.


아담의 타락 직후에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실 수도 있으셨지만 왜 구약이라는 오랜 시간의 흐름이 있은 다음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져야만 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창세 전에 미리 택하신 모든 이들이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이지만, 그보다도 인간은 역사를 통하여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고는 결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아담의 범죄를 기억하게하는 역사였다.


톰 라이트는 미리 약속하신 복음을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에 두고있지만, 육적인 이스라엘은 처음 아담의 모형으로서 인간의 죄를 드러냄으로서, 둘째 아담에 의한 구속의 필요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 것이다.


미리 약속하신 복음은 육적인 이스라엘을 통하여 성취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이스라엘의 실체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된 것이다.


구원의 역사의 시간들에는 인간의 죄가 항상 고발되어야한다.


인류의 역사는 종교와 전쟁의 역사이다.


이는 모든 인간이 죄와 더불어 살면서 동시에 구속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자는 사는 동안에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서 오직 믿음만을 통해서만 그리스도의 복음에 참여될 수 있음을 고백하여야한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새관점은 행위를 더해야지만 구원에 이른다고 말한다.


복음이 약속을 근거로 한 것이며 복음은 신약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톰 라이트는 출애굽한 사건을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음의 성취였다고 보고 복음의 몸통을 육적인 이스라엘로 보는 유대주의적 사고를 가지고있다.


새관점에서는 유대인들이 좀 더 잘하였더라면 신약으로 연결되지 않는 구약 성경만으로도 복음이 완성될 수 있었다고 본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새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유대주의적 신율법주의의 완성을 위한 부차적 수단으로 존재할 뿐이다.


새관점은 행위를 요구하는 유대주의와 마찬가지로 최종적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본받는 행위가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새관점은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 출애굽한 가나안의 육적인  이스라엘을 자리잡게함으로서 그리스도를 소외시킨다.


새관점에서는 선지자들을 통한 미리 약속하신 복음이 이스라엘의 홍해를 건너는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성취되었다고 주장한다.



적용


바울이 전하는 아들에 관한 복음은 구약의 이스라엘의 역사적 증거 위에 세워진 것이다.


역사적 증거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은 성경이 증거하는 실체로서의 그리스도이시다.


선지자들을 통한 성경의 약속은, 구약이 신약을 증거하기 위한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신약은 아들을 증거하는 실체라고 할 수 있다.


톰 라이트는 유대 이스라엘이 실체인 몸통이며, 창세기와 신약은 머리와 꼬리라고 말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유대주의의 완성을 위한 부차적인 존재로 해석하며, 유대 이스라엘을 실체로 보는 유대주의적 사고를 하고있다.


하지만 모세를 비롯하여 이스라엘을 향한 선지자들의 결론은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있다.


복음이 복음되기 위해서는 죄가 드러나야한다.


육적인 이스라엘은 처음 아담의 범죄를 증거하고있다.


구약은 인간이 왜 죄인인가를 말해주고았다.


선지자는 죄를 고발하면서 동시에 아들에 관한 약속을 전하고있다.


신약의 당위성은 구약을 근거로한다.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을 통하여 미리 증거되었다.


현재의 당위성은 역사와 전통을 근거로해야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역사와 전통을 해체시키고, 그 빈자리를 자아 중심적인 새것으로 대체시킨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신학을 표현하는 현대신학들은 모두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역사와 전통의 고리를 끊어 버리려한다.


톰 라이트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한 가지는 “우리가 이제껏 복음을 잘못 이해하였다”이다.


톰 라이트의 새관점은 종교 개혁의 역사와 전통을 거부한다.


하지만 톰 라이트가 말하는 새관점은 역사적 예수 탐구라는 주제의 역사 위에 세워진 것이다.


라이마루스로부터 시작된 역사적 예수 탐구는 슈바이처에 이르러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톰 라이트의 새관점은 슈바이처의 역사적 예수 탐구와 불트만 학파인 케제만의 “하나님의 의”를 자신의 제2성전 유대교를 근거로한 “언약적 신율주의”와 조합을 시켜서 만들어낸 것이다.


해 아래 새것이 없으며, 현재의 모든 것은 역사와 전통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모든 신학은 타락한 아담의 후손에 뿌리를 둔 아래로부터의 신학과 하나님의 은혜와 계시에 뿌리를 둔 위로부터의 신학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에 속하여있다고 할 수 있다.


바울이 전하고자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구약의 선지자로부터 약속된 아들에 관한 위로부터의 신학에 속하여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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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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