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6장'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8.05.31 :: 신명기 16장 18절- 17장 5절 말씀 묵상
  2. 2018.05.30 :: 신명기 16장 1-17절 말씀 묵상
신명기 2018. 5. 31. 21:45

신명기 16장 18절- 17장 5절 말씀 묵상



1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공의로 재판하는 것은 악을 제거하고 하나님 나라의 성결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원칙이다.

공의의 재판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의 성결이 유지 될 수 없으며, 불의한 재판에 의해서 자리잡게된 악이 독버섯 처럼 자라서 공동체 전체를 파괴시킬 수 있다.

공의의 재판은 암세포를 제거하여 건강한 세포를 보호하는 것과 같다.

불의한 재판은 암세포를 보호함으로서 암이 몸 전체에 퍼져나가게 함으로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원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가나안에서 시행되는 공의의 재판은, 악한 이들을 제거하는 것이기에, 가나안이 완전한 구원의 은혜 가운데 있는 상태가 아님을 보여준다.

가나안은 에덴에서 성취되었어야할 영원한 안식의 모형으로서, 에덴에서 실행되었던 하나님의 공의가 재연되는 곳이었다.

행위 언약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의 근거가되며, 처음 행위 언약인 아담 언약을 근거로하여, 범죄한 아담은 에덴에서 쫓겨나는 판결을 받은 것이다.

죽음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하며, 선악과를 먹었을 때 죽으리라한 약속이, 에덴에서 쫓겨남으로서 공의가 실행이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공의의 실행이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새언약의 은혜는 아담 안에서 약속된 죽음이 실행됨으로 인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톰 라이트는, 아담의 범죄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은혜 언약을 약속하실 때 이미 암묵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간주한다.

이는 하나님이 공의를 실행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아담의 범죄에 대하여 댓가를 치루지 않고 암묵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간주한다면, 가나안에서도 마찬가지로 공의가 실행이 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악에 대해서는 공의의 심판을 하시는 분이시다.

가나안 땅에서 실행되는 공의의 재판은 아담에 대한 공의의 재판을 상기 시키면서, 최종적으로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예표한다.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을 언약적 신율주의라는 관점으로 해석하는 새관점은, 아담의 범죄에 대하여는 일단 무시하였지만,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하여 무시하면,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는 잘못을 범하기에,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도 행위에 의한 최종적 심판을 받게된다는 이론을 펼치게 된다.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면, 범죄의 문제와 재판의 문제는, 이미 받은 은혜와 대립되는 모순이 생긴다.

행위에 의한 심판이 남아있다면, 제한적이고 한시적인 은혜이며, 이는 구원의 은혜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톰 라이트는 이스라엘이 이 땅에 실현된 하나님 나라이지만,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행위로 말미암아 최종적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반펠라기우스semi-Pelagius적 행위 구원론을 주장한다.

톰 라이트가 보는 교회는 확장된 이스라엘로서, 신약의 성도라 할지라도 그 행위로 말미암아 최종적 구원에 이르지 못할 수가 있다고 말한다.

톰 라이트가 보는 그리스도는, 어떻게 최종적 구원에 이를 수 있는지 본을 보여주신 분이다.

톰 라이트에게 예수는 따름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하시는 말씀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에서의 공의의 재판은, 이스라엘 백성은 범죄한 아담의 후손으로서 범죄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있음을 유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행위에 의존하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자신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며,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는 자만이 최후의 심판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19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20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


가나안의 이스라엘은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를 예표하기에, 굽은 재판은 하나님의 공의를 손상시킴으로서,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손상시키는 행위이다.

가나안이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 곳이 되지 못한다면, 가나안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예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기에, 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공의를 실현함으로서 이 땅에 완전히 임할 하나님 나라를 예비하는 곳이 되어야한다.

국가의 사법부에서 돈이나 권력이 있는 자가 이긴다면, 그 국가는 공의롭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하물며 교단 재판국에서 돈이 많은 자가 이긴다면, 상황은 더욱 참담하고 암울하겠지만, 이것이 오늘날 한국 교계의 현실이다.

S교회의 O목사 사건이 사회법의 판결을 받아야만 했던 것도 그만큼 교단 재판국의 공의와 권위가 상실되었음을 증명해주고있는 것이다.

공의가 상실된 이스라엘이 패망의 길을 걸어가야 했듯이, 공의가 상실된 오늘날의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심정은 참담하기만 하다.

굽은 재판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할 교회가 세상의 걱정이 되고있는 것이다.


21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제단 곁에 어떤 나무로든지 아세라 상을 세우지 말며

22  자기를 위하여 주상을 세우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공의와 우상 숭배는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대부분 우상 숭배와 연관되어있으며, 가나안에서의 우상 숭배의 근원에는 아담의 불순종이 있었다.

하나님은 우상과 겸하여 섬김을 받지 않는다.

인도에서 복음 전파가 힘든 것은,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에 대하여 포용적이지만 정작 기독교는 그들의 신앙에 대하여 배타적이다.

현대신학자들은 타종교와의 불화보다는 평화와 타협을 추구하려한다.

세상적으로는 포용적인 것이 바르게 보여도 하나님은 우상에 대하여 배타적이신 분이시다.

무슬림과 기독교의 하나님을 동일한 하나님으로보면서, 인종 간의 평화를 위해서 종교간의 대화와 화해를 추구하는 미로슬라브 볼프의 시도는 종교다원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신학자들의 한 가지 시도에 불과하다.

인간이 하나님보다 옳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보시는 인간의 가장 큰 악은 우상 숭배이며, 이는 바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의 대상이다.


1  흠이나 악질이 있는 소와 양은 아무것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지 말지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 됨이니라


흠이나 악질이 있는 소와 양은 제물이 될 수가 없다.

제물은 죄를 없이하여주는 것으로서, 흠이 있어서는 안된다.

흠은 죄의 결과물로서 이미 죄 안에서 죽어있는 것이다.

흠은 일종의 죄의 결과물로서 결코 깨끗한 것이 아니기에 제물로서의 효력이 있을 수가 없다.

제물은 궁극적으로 단번에 드려질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기에, 흠이 있으면 안된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속죄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가 죄로부터 깨끗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어느 성중에서든지 너희 가운데에 어떤 남자나 여자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 언약을 어기고

3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것에게 절하며 내가 명령하지 아니한 일월성신에게 절한다 하자


최초로 언약은 어긴 자는 아담과 이브였으며, 이들은 하나님과 행위 언약 관계에 있었다.

가나안의 이스라엘은 아담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우상을 섬겼다.

므낫세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여호와의 전의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

실제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러한 일들이 공공연하게 행하여졌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는 자신들의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하였다.

므낫세의 죄악은 이스라엘의 바벨론 유수의 근거가 되었다,

가나안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이 아니라, 구원을 받아야 할 백성임을 증거해주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는 교만을 버려야 할 것이다.

모든 인간은 타락한 아담의 아들로서, 전적으로 부패한 이들일 뿐이다.


4  그것이 네게 알려지므로 네가 듣거든 자세히 조사해 볼지니 만일 그 일과 말이 확실하여 이스라엘 중에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함이 있으면
5  너는 그 악을 행한 남자나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고 그 남자나 여자를 돌로 쳐죽이되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단호하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가증한 일이다,

현대인들은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선진국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면서,  사형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있다.

이로 인하여 성경의 죽이라는 말씀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지금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인하여 구원의 기회를 허락하기 위한 일반 은혜의 시대이다.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명령과의 차이는, 그만큼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를 가장 가증한 악으로 여기시지만, 현대인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문화의 한 부분일 뿐이다.

posted by Wonho Kim
:
신명기 2018. 5. 30. 22:35

신명기 16장 1-17절 말씀 묵상

1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


유월절을 행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기억을 통하여 자신들이 어떠한 존재였는지에 대한 정체성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현재는 과거를 통하여 있게 마련이며, 과거는 인간 존재의 정체성을 규명해준다.

유월절에 대한 기념은 구속을 통한 이스라엘의 현재의 상황을 기억하게 해주는 것이지만,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상황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고있다는 것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이어져야했다.

현재의 상황의 문제점은 과거를 돌아봄으로서 문제의 원인을 파악 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이 돌아보아야만 하는 과거의 큼지막한 사건은,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과,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이다.

인간의 모든 문제들은 창조 타락 구속의 사건 가운데 어느 정도는 해석 될 수 있다.

과거에 대한 기념을 통하여 현재를 돌아보지 않는 자는 교만해 질 수 밖에 없다.



2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소와 양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 제사를 드리되


유월절을 행하는데 있어서 소와 양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은 민족이 아님을 말해준다.

이미 출애굽을 통하여 구원을 받은 민족이면, 더 이상의 제사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톰 라이트는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함으로서,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말한다.

출애굽이 완전한 구속의 사건이었다면, 그리스도는 구속주가 되실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기념하는 유월절은 완전한 구속이 아니기에 지속적인 제사가 필요하며,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속을 위한 그림자로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언약적 율법주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 안에 머물기 위해서 율법을 지켰으며, 그 가운데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도 구속의 은혜의 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마지막 만찬은 이스라엘의 포로 상태에서의 해방을 선언하는 것으로 해석함으로서,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이 용서를 받고 이 땅에 새롭게 하나님 나라를 세우신 것이라고 말한다.

톰 라이트는 유월절 만찬을 통하여 새롭게 세우신 하나님 나라는 바벨론 유수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심이 되어, 확장된 이스라엘인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이 보여주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의식으로는 언약 백성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구속 안에 머무를 수가 없기에 오직 그리스도만이 단번에 드려짐으로서, 영원한 구속을 성취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이 기념하는 유월절이 완성된 형태라면 유월절 제사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읺을 것이다.

유월절 제사는 출애굽에 대한 기념이면서 동시에 실체로 오신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표하는 표상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드리는 성전에서의 제사 모두는 유월절 제사가 재현되는 것이며,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림자일 뿐이다.

톰 라이트의 새관점의 문제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이 실체이며, 이스라엘이 행하는 제사는 구원을 유지하는 것이며, 그리스도는 단지 희생적 본을 보여주신 분에 불과하다.

톰 라이트가 보는 그리스도의 위대함은, 부활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희생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셨다는 증거를 가지고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흘림에 의한 속죄 사역을 제거하면서 동시에 부활의 의미까지 왜곡시키고있다는 것이다.


3  유교병을 그것과 함께 먹지 말고 이레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함께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급하게 나오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위해서 인간적인 온갖 것들을 준비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 위에 자신들의 인간적인 욕심들을 더 하였을 것이다.

누룩과 같은 인간적인 욕심은, 바리세인이나 사두개인들을 교훈과 같은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출애굽에 자신들이 인간적인 의미를 부여했을 수도 있으며, 순전하지 못하고 진실되지 못한 생각들이 그들을 혼란케하였을 것이다.

출애굽의 과정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가 주체가 되심으로서, 그리스도에 의하여 완성되는 구속을 위한 모형이었다.

한 주의 수고를 통한 안식은 오직 그리스도의 수고를 통한 안식이었다.

진정한 출애굽은 이레동안 무교병을 먹음으로서, 오직 그리스도께 자신을 온전히 맡김으로서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다.



4  그 이레 동안에는 네 모든 지경 가운데에 누룩이 보이지 않게 할 것이요 또 네가 첫날 해 질 때에 제사 드린 고기를 밤을 지내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며


유월절에 고기를 먹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떡과 잔을 먹는 것과도 연계시켜 생각해야 한다.

성찬은 오직 단번에 이루신 구속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지, 양식을 위한 것이 아니다.

누룩이 보이는 것이나, 고기를 아침까지 두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구속을 인간적인 욕심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인간의 욕심을 성취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교회가 세속화되는 것은, 성도가 누룩과 같은 바리세인이나 사두개인들과 같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악용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고있기 때문이다.



5  유월절 제사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각 성에서 드리지 말고
6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가 애굽에서 나오던 시각 곧 초저녁 해 질 때에 유월절 제물을 드리고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 고기를 구워 먹고 아침에 네 장막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자신이 거주하는 곳에서 자신이 편한 시간에 유월절 제사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통로가 다양해질 수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오직 희생 제물로 드려진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 교회는 배타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애굽 안에서 모임을 가지지 않고, 애굽을 나와 시내산에 성회로 모인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다.

배타성이 상실된 교회는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수용하면서 또 하나의 종교집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

종교 포괄주의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서 다양한 길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으로만 이루어진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은, 시내산 앞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억하게하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방식으로만 구원의 길이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선교적 교회는 선교라는 의미로 쉽게 다가올 수 있지만, 전통적으로 모이는 교회와는 달리, 교회가 삶의 현장으로 이동된 교회를 말한다.

선교적 교회는 모든 이들이 예배에 참여할 수 있다.

물론 전통적인 모이는 교회에서도 불신자들이 예배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식으로 세례교인이 되기 이전의 준비되어지는 단계이다.

세례는 주를 믿음으로서 교회의 구성원으로 선포되는 것다.

선교적 교회의 구성원에게는 세례의 의미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예배는 오직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는 이들만이 드린다는 배타성을 없애버린 것이다.

이들은 선교를 위해서 스포츠센타나 커피샾, 심지어는 술집이나 나이트클럽에서 예배를 드리기도한다.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되어진 배타성을 존중해야한다.



8  너는 엿새 동안은 무교병을 먹고 일곱째 날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성회로 모이고 일하지 말지니라


유월절의 결과로 성취된 가나안은, 일곱째 날의 안식이 성취된 곳이었으며, 누룩이 없는, 즉 오직 인간의 욕심과 공로가 제거된 오직 그리스도만의 공로로 성취될 안식을 예표하는 곳이었다.

가나안은 영원한 나라에 대한 기다림의 장소였지 결코 최종 목적지는 아니었다.



9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10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1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칠칠절은 보리와 밀의 단순한 수확을 넘어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물질적으로만 축복하시기 위해서 가나안에 입성시키신 것은 아니다.

가나안이 진정한 영적인 가나안이 되기 위해서는 칠칠절이 영적인 추수를 하는 날이 되어야한다.

시기적으로는 밀과 보리를 추수하는 시기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칠일이 일곱번 반복됨으로서 완전한 희년을 선포하는 날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해야 하는 것은, 먹고 배불러서가 아니라, 애굽에서 종으로 있었던 자신들이 해방되었음으로 인해서다.

이 땅에 임한 진정한 기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구속 사역으로 인한 성령의 강림이라는 결실과 연계되어져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수로 인하여 육적인 만족을 얻었을지라도, 신약의 성도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인하여 영적인 충족을 얻게 된 것이다.



13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초막절을 기념하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자신들이 현재 누리는 풍요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오게된 것이지 기억하는 것이다.

현재의 풍요가 있기까지는 과거의 고통이 기반이 되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멸망 직전에 예레미야로부터 교만에 대한 질책을 받아야만 했다.

초심을 잊어버렸기에 교만해진 것이다.

자신의 과거가 어떠했는지를 알면 인간은 쉽게 교만해질 수 없다.

성도는 자신이 초신자시절과 불신자였을 때 어떠했는지를 기억함으로서, 교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만 한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받은 초심을 잃지 말아야할 것이다.


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에서의 복된 생활의 근원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여호와 하나님께 일 년에 세 번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뵙는 것은 마땅한 도리이고 의무이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인간은 쉽게 나태해지고 과거를 잊게 마련이다.

받은 복을 힘대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며, 동시에 자신의 소유를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posted by Wonho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