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4장 22-29절 말씀 묵상
22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가나안이 하나의 자립적 공동체의 틀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양식만을 먹었기에, 땅에서 수고하고 소산을 먹는 것은, 직접적인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인간의 참여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생활은, 과연 인간을 대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하여 제대로 참여할 수 있는지 점검이 시작된 것이다.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은 처음 아담과 둘째 아담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기에,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은 타락한 아담의 후손이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공동체적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하나님 나라라는 공동체를 제대로 완성시켜 나아가기 위한 필연적인 과제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기에 적합한가에 대한 검증의 매개체가 되기도한다.
가나안의 이스라엘에게 십일조는 신정체제라는 제도적 이스라엘의 기반을 유지하는 근간이 된다.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이 제도적 공동체로 유지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향하는 그림자이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아담 안에서 구현되어야만 했었으나,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공동체적 형상이 손상됨과 동시에 공동체의 파괴를 가져왔다.
가나안은 에덴에서의 궁극적 목적지인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구현을 향하여있다.
가나안의 목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공동체적 형상을 구현하기 위한 나눔의 원리가 적용되어야하며, 그 가운데 한 가지가 십일조이다.
십일조는 수직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의 복합성의 유지를 위한 것이다.
십일조는 나눔의 원리가 적용되며, 십일조는 자신의 소산에 문제가 안될 정도의 나눔의 몫이 정해진 공동체의 운영원리이다.
십일조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공동체적 원리의 표현 방식이다.
구약에서 십일조가 성전을 중심으로한 국가의 외형을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다면, 신약에서는 교회를 중심으로한 교회공동체의 틀을 유지하는 기반이 된다.
가나안에서의 십일조가 외형과 형식을 갖춘 성전을 중심으로 행하여졌어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하나님 앞에서의 교제라는데 수직적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듯이, 신약의 교회에서도 십일조를 중심으로한 각종 헌금이 성령 안에서의 성도의 교제를 중심으로 사용되어져야 할 것이다.
교회가 십일조를 강조하는 만큼이나,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공동체적 형상을 구현하여야 할 것이다.
삼위 하나님의 공동체성의 구현이 없는 십일조의 강조는, 교회가 세상의 경영원리를 따르는 세상적인 공동체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23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국가에 바쳐지는 조세는 하나님과 관계없이 사용되어지지만, 신정체제를 이룬 가나안에서 바쳐지는 십일조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십일조를 아무 곳에서나 먹지 않고, 여호와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만 먹어야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시내산 앞에 모여서 여호와의 강림하심 앞에서 먹고 마시며 즐거워했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는 궁극적으로 교회의 모습이 어떠해야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며,이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가리키고있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은 바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구현되는 곳이었으며, 이는 오늘날 교회 공동체로 구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십일조는 교회 공동체에서의 식탁 교제를 비롯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공유하기 위하여 사용되어져야한다.
도시 문화의 한 가운데 자리한 유형의 교회는, 교회의 틀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문제를 안고있다.
도시 문화의 한 가운데 자리잡고있는 유형의 교회는, 십일조가 주로 외적인 교회의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지고있다.
도시 교회는 공동체 내에서의 수평적 교제가 약화되면서 십일조는 강화되는 왜곡을 수정할 과제를 안고있다.
24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십일조를 먹고 즐거워하는 곳은 반드시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되어야한다.
아무 곳에서나 먹고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이 배제된 인간만의 즐거움만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택하신 곳이 거리가 멀어 소산의 십일조를 옮길 수 없을 경우는, 돈으로 가지고 가서 필요한 것을 구입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깊으신 배려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배려를 악용하여 성전을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마음 중심으로 이해하고 이를 실천하기보다는, 외적인 형태만 남기고 자신들의 목적으로 악용한다.
가나안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담아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 만한 능력이 있는지 검증하는 곳이다.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멀면, 이를 핑계로 십일조를 행하지 않을 수도 있기에, 하나님의 깊으신 배려는, 인간의 입장을 배려하심이면서 동시에 핑계거리를 차단하기 위하심임을 알 수 있다.
돈으로 성물을 사는 것이 허용된 근본은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가 불필요한 고생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하심에서 나온 것이지만, 인간은 이마져도 악용하며 성전을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이는 인간이 중심에서 거듭나지 않고는, 인간은 잘못된 길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구제 불능이라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마음의 중심이 따르지 않는 형식은 어떠한 형태로든 외식과 허영, 욕심등으로 왜곡될 수 밖에 없다.
예수님께서 채찍을 들어 성전을 청결케하신 것은, 인간은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의 영광을 담아낼 그릇이 될 수 없음을 말씀해주시는 것이다.
27 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이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레위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도적 틀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전임 사역자들이었다.
신약에 와서는 만인제사장이라는 개념이 적용되면서, 제사의 개념 대신에 예배의 개념으로 바뀌었다.
비록 레위인과 같은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목회자는 전임 사역자로서 성도들이 필요를 공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8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하나님 나라는 공동체적으로 이루어진다.
공동체 내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공동체의 일원이 책임을 져야한다.
교회 공동체는 이익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구성되어있지만, 하나님 나라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라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구성된 것이다.
최초의 나눔은 택한 자를 구원하시기 위한 창세전 하나님의 구속 언약에서 시작된 것이다.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공동체적으로 책임을 지는 일들은,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예표하는 것이다.
인간의 인생은 이 세상을 잠시 살다가는 나그네이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고아이며, 신랑되신 예수님이 필요한 과부의 인생이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고아이면서, 나그네요, 과부인 성도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의 희생을 감당하신 것이다.
공동체적 책임을 지는 것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도우심을 베푸시는 것이다.
성도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교회공동체를 돌보는 것은 그리스도의 공동체적 희생을 돌아보는 행동인 것이다.
'신명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명기 16장 1-17절 말씀 묵상 (0) | 2018.05.30 |
---|---|
신명기 15장 1-23절 말씀 묵상 (0) | 2018.05.29 |
신명기 14장 1-21절 말씀 묵상 (0) | 2018.05.27 |
신명기 13장 1-18절 말씀 묵상 (0) | 2018.05.26 |
신명기 12장 20-32절 말씀 묵상 (0) | 2018.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