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018. 5. 25. 23:22

신명기 12장 20-32절 말씀 묵상


2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히신 후에 네 마음에 고기를 먹고자 하여 이르기를 내가 고기를 먹으리라 하면 네가 언제나 마음에 원하는 만큼 고기를 먹을 수 있으리니
21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멀거든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너는 여호와께서 주신 소와 양을 잡아 네 각 성에서 네가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먹되
22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막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는 것 같이 먹을 수 있거니와
23  다만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함께 먹지 못하리니

24  너는 그것을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으라

25  너는 피를 먹지 말라 네가 이같이 여호와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면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누리리라
26  오직 네 성물과 서원물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가라
27  네가 번제를 드릴 때에는 그 고기와 피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에 드릴 것이요 네 제물의 피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위에 붓고 그 고기는 먹을지니라

28  내가 네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구히 복이 있으리라


피는 육적인 생명을 유지해주는 절대적인 역할을 하기에, 피는 생명과 동일시 될 만큼 중요하다.

피는 손상된 조직을 회복시키는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피의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조직은 썩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피는 육적인 조직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생명을 위해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있다.

모세의 입을 통해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영적인 생명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육적인 생명을 위해서 고기를 먹도록 허락하신다.

가나안에서의 삶은 광야에서와 달리 직접 살육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행함의 지침이 필요하였다.

가나안이 비록 안식의 땅이었지만, 가나안에는 살육에 의한 죽음이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죄를 사함받기 위한 속죄제로 인하여 동물의 희생이 필요하였기에,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와는 달리 동물의 희생이 인간의 죄와의 관계 가운데 정립되어야만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서 고기를 먹는 것 자체에 대하여는 비교적 엄격한 규율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피에 대하여는 분명한 지침이 주어진다.

피에 생명이 있다는 말씀은, 에덴에서 있었던 생명 나무와 연계시켜 볼 수 있다.

아담은 범죄한 후에 생명나무의 길이 차단되었다.

그렇다고 동물의 피를 먹으면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아니다.

참된 생명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있기에, 동물의 피는 생명을 예표하는 역할을 한다고하더라도, 단지 표상일 뿐이다.

약에서는 피를 먹는 행위에 대하여 엄격하게 금하고있는 반면에, 신약에 와서는 그리스도의 피외에는 피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는 것을 본다.

신약에서는 피를 죄사함과 연계시키고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서는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에서 언급하고있는 피는 정결케하는 피이면서, 피흘림을 죄사함과 연계시킨다.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은 죄를 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톰 라이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관하여, 피흘림보다는, 희생을 강조하지만, 그는 예수가 삶의 본을 보여주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희생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속죄의 개념을 제거하지만,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보혈은 분명 속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스도의 피흘림에서 속죄의 개념을 제거한다면, 구약에서의 속죄제를 비롯한 피흘림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밖에 없고, 신자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 왜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피를 먹지 말아야하는가?

성경에는 피에 생명이 있다고 간결하게 기록하고있다.

노아에게도 고기가 허락되었지만, 고기를 생명되는 피째 먹지말도록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왔지만, 피를 먹음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물의 피는 인간을 깨끗하게 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만찬에서 떡과 잔을 나누시면서, 잔에 담긴 포도주를 자신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이 참여하는 성례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성도가 성례에서 마시는 잔은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는 성도에게 피를 마시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인이 마시는 잔으로서의 피는,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시지 말라고 금한 것을, 참된 이스라엘 백성인 성도에게 허락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죄를 사하는 능력이 있기에, 성도는 성찬식에 참여하며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를 마심으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기념하며, 생명에 초대받음에 감사하는 것이다.

피는 육체적인 생명을 유지하면서, 또한 영적인 생명을 유지해주는 것이다.

속죄제에 드리는 동물의 피로서는 사람이 깨끗하여질 수 없다.

속죄제로 드려지는 짐승은, 이미 타락한 피조세계의 한 존재로서, 사람의 죄가 안수를 통하여 전가되었기에, 결코 깨끗하다고 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는, 죄가 없으신 분으로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의 피가 전가되어, 하나님 앞에 드려짐으로 깨끗함을 입을 수 있었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기에, 성도는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망에서 생명을 얻게된 것이다.

성례에 참여하여 잔을 마시는 행위는 주의 몸을 먹고 마시는 행위이기에, 죄에 대하여 민감하여야한다.

고린도 전서 11장 27-30에서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신다.

거룩함에 참여하는 잔을 마시는 행위는, 다시 생명에 이름으로서, 영적 자녀를 낳는 복을 누리는 것이다.

피를 금하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지는 영구한 복은,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되는 축복과,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녀를 낳게 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는 피를 먹지 말라는 것과 더불어, 너와 네 후손이 영구히 복이 있으리라는 말씀을 하신다.

아담은 범죄한 이후에 자녀를 낳았어도, 이들 가운데 참된 생명이 있는 자녀를 낳지를 못하였다.

하지만 너와 네 후손이 영구히 복이 있으리란 말씀은 획기적인 도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로 인한 것으로 해석 될 수 있다.

후손에게 주어진 복은 피로 인한 생명과 연관되어있다고 생각된다.

분별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것과 가나안에서 피를 먹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안식교에서 피를 먹지 말라고하는 이유를, 피에 독성이 많다는 성분 분석에 의존하여 해석하고있다.

동물이 죽임을 당할 때, 몸 속의 독성들이 피로 스며들어서 독성이 많다고 말한다.

이는 피를 먹지 말라는 본질을 왜곡시키는 해석 방법이다.


2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쫓아낼 그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절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게 하실 때에
30  너는 스스로 삼가 네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아 올무에 걸리지 말라 또 그들의 신을 탐구하여 이르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섬겼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
31  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께서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들의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자기들의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들에게 드렸느니라

3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

에덴에서 아담에게 주어진 통치 명령 가운데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이 있다.

자녀를 불사르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이다.

인간의 욕심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인간이 욕심을 위해서 하는 행위들이 어느 정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속성들을 지닐 수 밖에 없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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