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018. 5. 22. 21:12

신명기 11장 1-17절 말씀 묵상

1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가 주신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이 주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십계명을 대하는 이스라엘의 마땅한 자세를 설명한다.

모세의 강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택이 아닌 의무사항을 말하는 것이다.

자상하게 설명하면서도, 권위를 가지고 강변하는 것이다.

국민이 한 나라의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나라의 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듯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규정하는 이스라엘에 부합된 의무를 마땅히 수행하여야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을 받았지만, 축복과 저주라는 선택의 갈림길에 있기에,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지속적인 교훈을 받아야만 했다.

마치 자녀가 성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 교육을 받는 것과 같다.



2  너희의 자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였으나 너희가 오늘날 기억할 것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교훈과 그의 위엄과 그의 강한 손과 펴신 팔과


출애굽의 과정에서 보여주신 이적과 기사는 택함받은 백성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교육을 받는 장면이었다.

교훈과 위엄과 강한 손과 펴신 팔은, 하나님의 품에 안겨서 가르치는 모습이며, 가르침을 받는 이는 하나님의 위엄에 압도되고, 그의 펴신 팔에 안기어서, 강한 손에서 꼼짝못하고 교훈을 들어야하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죄인이기에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가 임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없음을 본다.

성도의 걸어가는 길도 하나님께 붙들린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험난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3  애굽에서 그 왕 바로와 그 전국에 행하신 이적과 기사와


출애굽의 전 과정은 택함받은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성숙되어가는 전과정과 유사하다.

성도 한 사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출애굽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성령의 강림하시기까지의 전 과정이 내포되어있다

애굽에서 행하신 이적과 기사는 성도를 세상과 분리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를 보여준다.

성도를 위한 세상과의 싸움은, 택함받은 자가 아닌, 하나님께서 직접 싸우시는 것이다.

성도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승리를 보아야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승리를 이 땅에서 경험하여야한다.



4  또 여호와께서 애굽 군대와 그 말과 그 병거에 행하신 일 곧 그들이 너희를 뒤쫓을 때에 홍해 물로 그들을 덮어 멸하사 오늘까지 이른 것과


출애굽 과정에서 행하신 이적들은 성도들이 세상과 분리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영적 전쟁에서의 하나님의 승리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분리를 통한 영적 전쟁은 고통의 과정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세상과 분리되는 과정에서 경험한 하나님은 평생 신앙생활의 동력이 되며, 현재의 삶의 위로가 된다.



5  또 너희가 이 곳에 이르기까지 광야에서 너희에게 행하신 일과


여호와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이적들은, 미숙하고 아직 불신자였을 때의 모습이 남아있는 가운데, 영적 성장을 위한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보여준다.

광야에서의 여정은 성장 과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귀한 과정이다.

장성한 분량의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보살핌과 돌봄 가운데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많은 관심을 받아야만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오순절 성령이 임하기까지, 그리스도와 삶을 공유하면서 많은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6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에게 하신 일 곧 땅이 입을 벌려서 그들과 그들의 가족과 그들의 장막과 그들을 따르는 온 이스라엘의 한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삼키게 하신 일이라

하나님을 향한 삶의 여정은 쉽지만은 않다.

자신이든, 혹은 주변 상황이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시험하고, 반항하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인간은 타락한 아담의 후손이기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통로가 될 수 있다.

사단의 통로가 되는 이들은 나름대로 선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정의와 하나님의 공의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기에,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성도에게는 영적인 분별력과 지혜가 요구된다.



7  너희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이 모든 큰 일을 너희의 눈으로 보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를 보았음에도 이를 담을수 있는 마음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애굽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증명해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변한 것이 없었다.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믿음과 순종을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시지만, 문제는 보편적인 인간의 실존으로는 하나님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경험하게하시고 하나님의 큰 일을 눈으로 보게 하시지만, 택한 자에게는 경험하고 본 것을 담을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주신다.

하나님의 역사는 실존적 사고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보편적인 실존적 사고는 하나님을 담아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실존주의의 문제는, 인간의 보편적 사고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사고의 출발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사고로는 인식이 불가능하다.

보편적 사고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행위 언약으로서의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에서의 선택에 대한 요구이며,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만 축복이 가능한 은혜의 자리로 초대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간적인 실존주의 방식으로서, 자신들의 사고에 하나님을 집어넣음으로서, 멸망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었다.

인간은 자신의 사고, 즉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에서 축복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한다.

하나님께서 제시한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은, 모든 인간은 축복의 길을 선택할 수 없으며, 설령 축복의 길을 선택하였더라도 그 길을 갈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증명해주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은, 우리의 사고에 하나님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참여함으로서, 성령의 내주하심에 힘입어,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8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 차지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할 것이며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순종이 요구된다.

하지만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한 순종을 하였던 것은 아니다.

에덴에서부터의 삶을 시작한 아담과 달리, 아담 안에서 타락하여 죄의 종노릇하는 인간들에게는, 죄악된 세상으로부터의 탈출, 즉 애굽으로부터의 탈출이 필요하였으며, 광야에서의 순종이 요구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한 순종과, 가나안 땅에서의 순종이 요구되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모든 과정에서 끊임없는 불순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순종은 가나안,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한 조건이었지만, 이스라엘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의 가능성만을 가지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9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약속의 땅은 타락으로 인하여 쫓겨난 에덴의 바깥에서 다시 구원에 참여되는 땅으로서, 에덴과 에덴의 바깥의 대조를 보여주고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타락 후에 수고하고 땀을 흘려 소산을 먹는 땅과 대조를 이루는 땅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에덴을 상기시키면서, 궁극적으로 영원한 가나안 땅인 천국을 예표하고있다.

가나안의 이스라엘은 인간의 노력으로는 영원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음을 보여준다.

아들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기업은 순종을 전제로 한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되었다.

아들은 영원한 기업을 얻기 위하여 창조되었다.

이스라엘은 아들로 부르심을 받음으로서 영원한 기업을 얻기 위한 순종이 요구되었지만,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인간의 실상이 어떠한지 보여주고있다.

이미 아담 안에서 타락한 인간은 순종의 능력이 없기에 오직 그리스도의 순종의 의를 의지하여 영원한 기업을 얻을 수 있다.


10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11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애굽 땅은 땀을 흘리고 수고하고 노동해야지만 소산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가나안은 수고하고 땀을 흘리기보다는, 공급해주시는 것으로 풍요를 누리는 안식의 땅이었다.

가나안은 하나님의 주권적 공급 하심이 있는 곳이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거부하였다.

가나안에서의 풍요는 영원한 안식을 예표하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서 사는 동안 안식을 거부하고 인간적인 탐욕의 방식을 취하였다.

성도의 삶은 가나안의 안식을 넘은 영원한 가나안을 이 땅에 구현하면서 사는 삶이다.

성도는 주일, 즉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안식의 날을 일주일의 첫 번째 날로 삼으면서, 한 주를 그리스도의 안식 위에, 즉 그리스도께서 공급해주시는 것으로 생활하는 안식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13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14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15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누릴 안식은 조건적인 안식이었다.

이스라엘이 누리는 안식은 순종을 전제로한다.

이는 에덴에서 아담에게 순종을 통한 안식이 요구되었던 것과 같은 성격의 것이다.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에게 요구되었던 순종은, 에덴을 돌이키면서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역할을 하면서, 처음 아담과 둘째 아담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성도가 누리는 안식은 에덴과 가나안을 넘어서는,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이 땅의 종말은 에덴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에덴에서의 과제가 성취된 영원한 가나안 땅인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의 성도의 삶은, 더 이상 스스로의 힘으로 안식을 성취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누리는 안식의 삶이 되어야한다.


16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17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불순종은 다른 신을 섬기고 그것에게 절을 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불순종과 악행은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불순종과 악행과는 차이가 있다.

현대인들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거부하고 자기를 위해서 자족하려는 것이 불순종이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신은 자기를 위해 만든 신으로서, 자기의 내면에 자리잡고있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마음 가운데 자리잡고있다.

불순종하는 이들에게 가나안에서의 공급이 끊기듯이, 현대인들의 자족은 결코 영원한 생명을 체워주지 못하는 죽음의 굴레인것이다.

가나안에서의 불순종은 인간 모두의 불순종을 대변해주고있으며, 불순종한 이스라엘이 멸망할 수 밖에 없었듯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인간들은 결국 멸망할 수 밖에 없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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