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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12 ::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 묵상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 묵상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태초에 이미 영원 가운데 계신 예수님
만물의 시작 이전에 이미 계신 분이신 예수님은 영원 가운데 시간을 초월하여 계신 분이시며, 시간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인간은 피조물로서 시공간에 갇혀있지만 말씀으로 계신 그리스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계시는 초월자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육신적인 한계에서 출발되어서는 안되며, 육신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어지는 분이 아니시기에,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는 주어진 말씀이 근거가 되어야한다.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는 인간의 한계 안에서 말씀을 육신적인 시공간의 제약 속에서 가두어 놓고 해석하려하기 때문이다.
말씀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다가오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손수 취하신 형태인 것이다.
피조물 가운데 언어는 인간에게만 주어졌다.
언어를 소유할 수 인간은 존재의 근원을 말씀 안에서 찾아야한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인간에게 다가오신 것은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또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작정하심 가운데 시작된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로서 말씀을 통하여 인간 안에 담겨진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여야만한다.
죄악으로 일그러진 인간은 불순종을 속성으로 가지고있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말씀을 가까이 할 수가 없다.
처음 아담에게는 순종의 요구라는 말씀이 주어졌지만 처음 아담 안에서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 회복이 불가능하였기에, 둘째 아담, 즉 말씀 안에서만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다.
요한복음은 말씀으로 시작된다.
인간의 거듭남과 구원은 말씀과 더불어 시작된다.
매일의 말씀 묵상은 구원받은 거듭난 자로서 이 땅에서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을 구현해나가는 삶에 대한 지침을 제공해준다.
말씀 안에서만 해석되어지는 존재의 근거
창세 전에 오직 삼위하나님만 계셨음은 창조된 세계의 절대적 기준과 근거가 되신다.
만물의 가시적 존재는 존재의 시작과 존재의 근거가 있게 마련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것은 모든 만물에 대한 주권적 선포라고 할 수있다.
인간이 만든 물건도 그 물건의 존재와 시작이 있으며 그 소유권이 그것을 만든 인간에게 있는 것이다.
태초에 계신 말씀은 조물주이시며, 말씀은 피조 세계의 존재의 근거가 된다.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사고 능력의 한계는 어떻게 무에서 유가 만들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사고에서 한계에 부딪히지만, 성경은 이 한계를 넘어서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인간의 존재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가시적 현상들은 빛으로 오신 말씀 가운데 해석되어질 때에만 제대로 이해되어질 수 있다.
말씀으로 창조된 가시적 세계는 보시기에 좋았지만, 인간이 사는 세상은 결코 아름답다고만 할 수 없다.
인간사는 전쟁으로 얼룩져있고 인간의 삶은 부정적 상처 투성이일 뿐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세상사는 태초에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이 땅에 오셔야만 하였던 이유였다.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결코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이러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기에, 모든 고통으로부터의 참된 해방은 오직 말씀으로 오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
예수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였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예수의 죽으심을 선지자의 죽음으로 밖에 인식하지 못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들 가운데 직접 나타나시어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 설명해주셨다.
인간의 눈으로는 예수의 죽으심을 직접 목격했지만 해석이 없이는 그 깊은 뜻은 알 수가 없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찾아오신 그리스도께서 이제 말씀 가운데 우리에게 찾아오셨다.
하나님께서는 말씀 가운데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가 삶 가운데 경험하는 다양한 현상들에 대하여 설명해주시고 계신다.
칸트는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는 분리되어있기에 인간이 하나님을 경험할 수도 없고, 인간의 논리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고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택하신 자에게 찾아오셔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말씀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셨다.
말씀은 절망 속에 갇혀있는 인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참된 빛인 것이다.
성도와 함께하기 위한 말씀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사실은 말씀이 하나님이시라는 근거가 되면서 동시에 말씀이 하나님과 동등하시다는 근거를 제시해준다.
인간의 존재론적 근거도 인간이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달려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인간과 함께하시기 위해서 말씀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은 인간의 존재론에 또 다른 정의를 부여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셨던 인간의 세상은 암흑 자체였다.
극단적으로는 인간은 신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서 인간을 제물로 바치기도하지만 이는 또 다른 암흑 세계를 만들어갈 뿐 해결책이 아니었다.
인간사에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은 어떠한 인간적인 방법도 하나님께 기쁨이 되었던 일은 없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들이 저주받은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해결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셨기에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세상을 창조하신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오신 것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간에게 주어진 특혜인 것이다.
이제 말씀을 받아들인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본질적인 변화를 수반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하나님의 아들됨이다.
요한복음을 통하여 제시되어진 하나님이신 말씀은 인간을 하나님의 존재 안으로 초대하는 초대의 말씀이다.
말씀을 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리에 초청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께 초청을 받았다는 사실은 복음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선포하고있는 것이다.
처음 아담과 둘째 아담의 대비
요한복음의 첫 번째 구절은 창세기의 첫 번째 구절과 대비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창세기와는 달리 말씀되신 그리스도께서 등장하신다.
창세기의 첫장이 에덴에서의 아담이 그 중심에 있다면 요한복음의 첫번째 장은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중심에 계신다.
창세기는 창조와 타락이 주제였다면 요한복음은 구속이 주제이다.
요한복음은 인간의 구속을 위해서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요한복음은 처음 아담과 둘째 아담의 대비라는 관점에서 처음 아담의 타락과 둘째 아담의 구속이라는 관점에서 대비적으로 묵상해 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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