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7장 1-26절 말씀 묵상
1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지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오늘이라는 시간과 장소는 개인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존재는 주권자이신 하나님에 의해서, 그리고 선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선조들은 애굽에서 하나님께 탄식의 기도를 드렸으며, 가나안 입성은 선조들의 기도의 응답이었다.
하나님의 응답은 무조건적이지 않다.
무조건적 응답이라면 인간이 자신의 주관자가 되며 하나님은 단순히 반응하시는 분이 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은 하나님께 반응하는 존재일 뿐이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하며, 하나님의 법은 일종의 자연법으로 인간에게 다가온다.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백성에게 명령하는 하나님의 법은 자연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자연법은 구원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순응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법이다.
특히 가나안은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된 거룩한 땅으로서, 자연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이 요구된다.
가나안은 거룩한 땅이기에 주어진 자연법에 순종하지 않으면, 심판과 저주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거룩한 땅은 의인에게는 축복된 땅이지만, 죄인에게는 저주의 땅이다.
내면에 죄성이 가득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은 결코 축복의 땅이 될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순종에 힘입어 가나안의 축복을 누릴 수 있음을 깨달을 뿐이다.
2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3 요단을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라
4 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아담은 에덴에서 범죄한 날에 에덴에서 쫓겨나는 죽음을 당해야만 했다.
타락한 아담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안식의 땅에 들어갈 때는 다시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진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세울 큰 돌은 가나안이 명령에 대한 순종이 요구되는 땅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명령이 주어졌다는 것은, 안식의 성취가 아니라 안식의 성취를 위해서 요구되는 조건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가나안은 안식의 땅에서 안식을 위한 요구가 주어지는 검증의 땅이라고 할 수 있다.
5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6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쇠연장을 대면, 모양 자체가 사람의 생각을 반영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인위적인 형상이 만들어지거나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만약에 돌을 다듬는다면, 금송아지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 수가 있고, 이 돌 자체가 섬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로마 카톨릭이나 동방 정교회에서 사용하는 성상들은 물건 자체에 신적인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숭배의 대상으로 바뀌는 경향을 보인다.
7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가나안은 영원한 화목제이신 그리스도와 달리, 인위적이고 지속적인 제사가 필요했던 곳이다.
인간이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언젠가는 상황이 변할 수 있는 한계를 말해주는 것이다.
8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지니라
가나안 생활은,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된 율법의 모든 말씀을 기초로하여 시작되어야한다.
이는 가나안 생활의 조건이다.
미국에 가면 미국의 법을 따라야하듯이,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안식의 땅으로서, 이를 누리기 위해서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야한다.
이를 달리 말하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에덴에서 아담에게 주어진 언약, 즉 행위 언약이 가나안에서 재연되는 면이 있지만, 에덴은 언약의 성취를 통하여 안식이 약속된 반면, 가나안은 성취된 안식을 누리기 위해 요구되는 행위 언약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에덴은 아담의 순종을 통하여 종말론적 안식이 약속되어있던 반면에, 가나안은 순종을 통하여 현재적 안식을 누리는 곳이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가나안에서 누리는 안식은 종말론적 안식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에덴이나 가나안이나 공통적으로 영원한 종말론적 안식을 향하여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러한 점에서 가나안은 에덴에서의 아담 언약, 즉 행위 언약이 재연republication되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될 영원한 안식이라는 은혜 언약을 내포하고 있다.
9 모세와 레위 제사장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아 잠잠하여 들으라 오늘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이스라엘은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되었지만, 조건이 있기에,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은혜는 더 이상 사람에게 조건적 요구를 하지는 않는다.
조건이 주어진다는 것은 일종의 거래의 성격을 가지고있는 것이다.
10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다면, 율법의 의미와 역할이 무엇인가 고민해보아야한다.
율법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는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인가, 아니면 규범인가 구분해야한다.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은 요단강을 건넌 백성들에게 율법과 여호와의 명령을 지킬 것을 제차 강조한다.
율법과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가나안 생활에서의 요구 조건이었으며, 궁극적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는 일에있어서 실패하였기에, 가나안에서 추방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율법이 여호와의 백성이 지켜야 할 규범이 아니라 조건임를 말해주는 것이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언약적 울법주의에서는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규범이라고 말하지만, 율법은 규범을 넘어서, 행위 언약의 기준이 되는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11 모세가 그 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2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13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가나안은 축복을 받기 위한 땅이면서, 동시에 저주를 받기 위한 땅이다.
마치 무균실에 넣어진 음식이 부패될지, 아니면 계속 신선하게 유지될 지를 검증하는 실험실과 같아서, 부패되는 현상이 생기면 버려질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가나안이 안식의 땅이어도 검증을 위한 과정에 참여된다는 점에서 은혜 안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14 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15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말하되 아멘 할지니라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번째로 우상숭배에 대한 검증을 받는다.
가나안의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의 검증에서 문제를 보였듯이, 모든 인간은 우상을 섬기는 죄를 범하고 있다.
현대인에게 특징되는 우상은 문명의 기술이다.
조각하거나 부어만든 우상은, 현대에 와서는 문명의 발전이라는 형태를 띄고있다.
신칼빈주의에서는 에덴에서 아담이 받은 문화 명령을 근거로,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 종말론적 천국에 이르게 된다고 말한다.
즉 발전된 문명이라는 것이 원시 에덴에서 고도로 발전된 천국을 이어주는 매개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이 문명의 기술을 지향한다고 말하며, 이를 선한 방향으로 전환시켜 천국에서 보존되도록 해야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라는 문화명령의 개념은 성경을 너무도 왜곡시키는 해석이다.
기술은 하나님 의존적인 방식을 떠나, 인간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도시 문명의 산물일 뿐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의 손상으로 생기는 문제들 조차 기술로 해결하려는 것이 현대인의 생활 방식이다.
기술의 발전은 우상을 미화시킬 뿐이다.
16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태초의 부모는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아담을 거쳐서 하나님께로 이른다.
아담은 범죄함으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가 없었다.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은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를 수 있어야하고 부모를 경홀히 여기지 말아야지 진정한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그러하지 못했다.
타락한 아담의 후손을 대변하는 이스라엘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구세주를 필요로 함을 증명해 주고있을 뿐이다.
17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가나안에서는 각 사람에게 땅을 배분해줌으로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도록 허락하셨다.
경계표를 옮기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인간이 훔쳐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을 다스리라고하였다.
사단은 아담을 실족시킴으로서 아담으로하여금 하나님이 주신 영역에서 쫓겨나게끔 하였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와 환경이 있는데, 사단은 서로에게 불법적인 해를 가하고,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사용을 하지 못하도록 훼손함으로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방해하고있다.
인간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주면서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인격적 형상을 존중해주는 것이다.
18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분명하게 순종을 통한 종말론적 안식을 제시하셨다.
사단은 아담의 길을 굽게하여 실족하게하였다,
가나안은 실족하여 길을 잃은 자에게 다시 하나님의 길을 제시하고서, 바른 길로 인도하는 곳이다.
가나안의 이스라엘은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 길을 스스로 갈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길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능력이 없어서 도움이 필요한 자를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자는 사단이다.
예수님께서는 길을 잃어 버린 자에게 길이되시고 생명이 되시면서, 능력이 없는 죄인에게 능력과 힘이 되어주신다.
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가나안의 이스라엘은 실질적으로 객이나 고아나 과부였다.
이들을 억울하게 하는 것은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망각하는 것이다.
20 그의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는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일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해치면서 동시에, 아버지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행위이다.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내는 일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악한 행위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타락시킴으로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을 하였다.
사단은 인간이 자기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게 함으로서, 궁극적으로 하나님까지 모독하려는 시도를 한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면서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내는 범죄를 저질렀다.
가나안에서는 노골적인 범죄가 일어난다.
압살롬은 공개적으로 이러한 일을 범한다.
21 짐승과 교합하는 모든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자연법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유지하며, 궁극적으로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예비하는 역할을 한다.
짐승과 교합하는 일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구속 사역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다.
22 그의 자매 곧 그의 아버지의 딸이나 어머니의 딸과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압살롬은 마찬가지로 이러한 악한 일을 벌인다.
23 장모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이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획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남자가 집을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예표하는 것이다.
이러한 악행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훼방하는 일이다.
24 그의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적 구현으로서, 서로가 인격적으로 존중되고 보호받아야한다.
25 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일종의 청부 살인으로서 사단의 종노릇하는 자이다.
26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저주에 대한 선포는 단순한 규범을 넘어서 행위 언약의 결과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아담에게 주어졌던 통치 명령과 선악과 명령이 축복과 저주를 선언하였던 행위 언약의 속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과 같이, 에발산에서 이스라엘에게 선포하는 저주는 모세 언약이 행위 언약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며, 저주는 행위 언약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물임을 말해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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