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018. 6. 17. 21:25

신명기 28장 36-57절 말씀 묵상



36  여호와께서 너와 네가 세울 네 임금을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 가시리니 네가 거기서 목석으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며


명령이라기보다는 예언의 말씀이다.

실제적으로 일어날 일로서, 불순종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선택받은 민족이었다고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은혜의 자리에 선택된 것은 아니다.

타락한 아담의 후손은 타락에 대한 문제 해결없이 직접적으로 은혜의 자리에 참여될 수 없다.

새관점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담의 문제와 관계없이 직접적으로 은혜의 자리에 참여된 것으로 본다.

새관점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모세 율법은 은혜를 유지하기 위한 삶의 지침이라고 본다.

이러한 관점을 언약적 율법주의, 혹은 신율주의라고 말한다.

하지만 율법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는 참혹하기만 한데, 이를 삶의 지침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톰 라이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아담의 범죄는 잠정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아직 아담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아담의 타락의 영향을 그대로 나타내고있다.

가나안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곳이라기 보다는, 구원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문제점들을 노출시킴으로서, 이차적으로 구속사가 이루질 수 있도록 준비되어지는 곳이다.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의 문제는 모든 사람의 문제이며, 가나안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일 때에만,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자신에게 다가 올 수 있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임하는 일반 은혜는 구원으로의 초대를 위한 것이다.

보편적 평안 가운데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다면, 이들의 최후는 가나안의 이스라엘 못지 않을 것이다.



37  여호와께서 너를 끌어 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가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


원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비방거리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서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노출시킴으로서,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었다.

사람은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지만 자신들의 실상이 어떠한지를 모를 뿐이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실상이 드러나야만 한다.

인생의 삶 가운데 당하는 수치와 비난은, 비록 고통스럽지만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냄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되는 귀한 기회가 될 것이다.



38  네가 많은 종자를 들에 뿌릴지라도 메뚜기가 먹으므로 거둘 것이 적을 것이며
39  네가 포도원을 심고 가꿀지라도 벌레가 먹으므로 포도를 따지 못하고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며
40  네 모든 경내에 감람나무가 있을지라도 그 열매가 떨어지므로 그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41  네가 자녀를 낳을지라도 그들이 포로가 되므로 너와 함께 있지 못할 것이며
42  네 모든 나무와 토지 소산은 메뚜기가 먹을 것이며
43  너의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은 점점 높아져서 네 위에 뛰어나고 너는 점점 낮아질 것이며
44  그는 네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그에게 꾸어주지 못하리니 그는 머리가 되고 너는 꼬리가 될 것이라

가나안에 들어갈 때와는 달리 반대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축복이 저주로 바뀌는 것이다.

만약에 불순종하여도 처음의 축복이 지속된다면, 이들의 불순종은 끝을 모르고 심화될 것이다.

모든 축복은 순종을 전제로 한다.

저주받는 상황에서는 차라리 시작을 하지 말았으면 좋았으리란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유익의 기준이 틀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절대로 선택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상황이 실제적으로 자신의 삶 가운데 주어졌다면, 이 시간은 인생의 가장 값진 시간이 될 것이다.

고통 가운데 얻는 유익은, 평안 가운데 얻는 유익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고통 가운데 얻는 유익이 진정한 축복이다.

세상적인 축복을 원하며 이를 간증하거나 자랑하는 신앙은 항상 위험을 내포한다.

행위 언약의 형식을 가진 모세 율법의 본질이 은혜 언약이듯이, 영원한 죽음에 이르지 않는 한 에발산에서의 저주의 본질은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삶의 여정 가운데 생기는 모든 문제를 경제 원리, 혹은 과학이나 정치로 해결하려고하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구속의 기회를 흘려보내는 불행한 방식이다.

성도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부정적 상황을,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가운데 유익한 상황으로 전환시켜야 할 것이다.


45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지 아니하고 네게 명령하신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므로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와서 너를 따르고 네게 이르러 마침내 너를 멸하리니
46  이 모든 저주가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있어서 표징과 훈계가 되리라


가나안에서는 순종이 철저하게 요구되며,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않는 불순종에는 반드시 저주가 임할 것이다.

가나안은 일차적으로는 심판의 장소이다.

심판은 철저하게 인간의 순종이라는 공로를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심판의 두 번째 단계는 은혜의 과정이다.

문제를 노출시키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직접적 해결이 없이는 진정한 은혜라고 할 수 없다.

은혜는 문제를 문제로 노출시킬 때에만 다가 올 수 있는 것이다.

새관점에서 가나안을 은혜의 장소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차적인 단계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새관점주의자들은 유대 이스라엘을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고 말한다.

새관점주의자들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두 번째 단계는 일차적 단계의 단점을 보강하는 부차적인 단계이며, 그들에게 그리스도는 유대 이스라엘을 완성시키기 위한 부차적인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속죄가 없는 가나안은 심판과 저주만 있을 뿐이다.

가나안에 임한 저주는 그리스도의 속죄에 참여될 때에만 진정한 은혜가 있는 것이다.



47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48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부족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적군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 마침내 너를 멸할 것이라

적군을 섬기는 것은 불순종으로 말미암은 것이지만, 이미 불순종한 아담의 후손들은 실질적으로 이미 사단을 섬기고있었다.

뱀을 미화시킨 가상 동물인 용은 인간이 직접적으로 보지 않았어도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모습으로 그려지고있다.

남미의 고대문명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용이나 중국에서의 용이나, 서로의 직접적인 교류가 없었을 텐데도 너무나도 유사하다.

용은 남미나 중국 대륙이나 세계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섬기는 짐승이지만, 신기한 것은 용을 본 사람이 없어도 비슷한 모양으로 세계 각국에서 제각기 용의 모양을 섬긴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이미 자유 의지가 박탈되어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은 섬김의 대상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것으로 귀결되어야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반 은혜는 구원의 특별 은혜로 연결되는 수단과 통로가 되어야한다.

인간에게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격도 없으며 통로도 없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인간은, 이미 사단의 권세 아래있기에, 자유 의지가 있을 수가 없다.

인간의 의지는 노예 의지이면서 전적인 부패해 있을 뿐이다.

인간의 노예 의지와 전적인 부패는 새관점주의자들이 무척이나 싫어하는 개념이다.

노예 의지 개념은, 새관점주의자들의 최종적 구원을 위한 공로 주장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49  곧 여호와께서 멀리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가 날아오는 것 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민족이요
50  그 용모가 흉악한 민족이라 노인을 보살피지 아니하며 유아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51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의 소산을 먹어 마침내 너를 멸망시키며 또 곡식이나 포도주나 기름이나 소의 새끼나 양의 새끼를 너를 위하여 남기지 아니하고 마침내 너를 멸절시키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지배를 당하며, 이전의 애굽에서의 상태보다도 더 비참한 상태가 된다.

사단의 세력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는 반대로 이스라엘을 압제 가운데로 몰아간다.

이스라엘 백성은 사단의 실상이 어떠한지 막연한 가운데 섬겨왔지만 실질적으로 다가오는 현실은 생각과는 달랐다.

사단의 악한 모습은 상대적으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바닥이 없으면 높이를 알 수 없듯이, 악을 경험하지 않으면, 선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궤변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 경험하는 세상에서의 악은,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이 어떠한지를 드러낸다.


52  그들이 전국에서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네가 의뢰하는 높고 견고한 성벽을 다 헐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의 모든 성읍에서 너를 에워싸리니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인간은 악의 세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두어 가시면, 악이  마치 제방이 무너져 쏟아지는 물과 같이 덮칠 것이다.

쓰나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인간이 무력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현재의 일반 은혜는 결코 당연하지도 않으며, 가벼운 것도 아니다.


53  네가 적군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한 공격을 받아 곤란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살을 먹을 것이라
54  너희 중에 온유하고 연약한 남자까지도 그의 형제와 그의 품의 아내와 그의 남은 자녀를 미운 눈으로 바라보며

55  자기가 먹는 그 자녀의 살을 그 중 누구에게든지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 적군이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맹렬히 너를 쳐서 곤란하게 하므로 아무것도 그에게 남음이 없는 까닭일 것이며

56  또 너희 중에 온유하고 연약한 부녀 곧 온유하고 연약하여 자기 발바닥으로 땅을 밟아 보지도 아니하던 자라도 자기 품의 남편과 자기 자녀를 미운 눈으로 바라보며

57  자기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가 낳은 어린 자식을 남몰래 먹으리니 이는 네 적군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하게 하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함이리라


극단적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면서도 연약한 존재인가를 보여준다.

아무리 극단적인 상황이라도 인육을 먹은 사람은 사람이기를 포기한 수치를 감당해야만 한다

그것도 자식을…

이는 아담에게 주어졌던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의 극단적 반대 상황이다.

극단적 상황에서는 인간의 온유하고 연약한 것도 아무 의미가 없다.

가장 기본적으로 사랑해야할 사람이 미움의 대상이 된다.

가장 사랑해야 할 대상이 먹이감이 되며 자신을 가장 보호해주어야 할 사람이 자신을 해친다.

인간의 품위는 어느 정도의 환경이 조성이 되어야만 가능하며, 극단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최악의 모습을 보여줄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자신의 성품과 기질을 자랑해서는 안된다.

가나안에서의 환란은, 마치 상품의 품질을 검사하듯이 극단적 테스트를 하는 것이며, 이러한 테스트에 통과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원래 인간은 모두 다 아담 안에서 타락한 불량품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불량품은 아무리 좋은 환경이 제공되어도 만족하지 않으며, 주어진 환경 마저 파괴 할 수 밖에 없다.

가나안은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고발하는 곳이다.

불순종에 따른 저주는 문제를 문제로 드러내면서 해결책을 모색해보는 과정이다.

가나안에서의 저주는 사랑의 채찍이며, 완전한 멸망을 위한 것이 아니다.

현 시대에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은혜 가운데 드러나는 삶의 문제들은 택함받은 자에게는 구원의 통로이며, 택함받지 않은 이에게는 멸망의 통로이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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