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020. 11. 22. 10:34

로마서 1장 12절 말씀 묵상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관계성의 회복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

바울과 로마의 성도를 연결시켜줄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었다.

만남을 통하여 힘을 얻는 것은 인간의 지음받은 속성으로 인한 필연적 요구이면서 동시에 결과이다.

불신자들 조차도 서로의 만남을 통해서 서로 힘을 얻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성도의 만남은 하나님을 향하는 힘을 얻는다는 것이 불신자들과 다른 것이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기에 이방인을 만나서 그들 가운데 믿음의 열매를 보고서 힘을 얻는 것이 마땅한 의무이면서 동시에 당연한 결과이다.

바울과 로마의 성도가 서로 안위함을 얻는 것은 바울과 로마의 성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진 모든 성도들에게도 적용되는 원리이다.

바울과 로마의 성도가 피차 안위함을 얻는 것은 서로의 인간적인 만남에서 오는 자신에 대한 정당성의 부여나 혹은 인간적인 파워의 증가가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초자연적인 안식과 위로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앞두고 시작된 박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인간적인 일이 아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에 의한 것이다.

성령께서는 성도들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신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서로 힘을 키우기 위해서 당을 지으려고 하지만, 바울이 로마의 성도를 만나서 안위함을 얻고자하는 것은 당을 지어 인간적인 세력을 키우고자하는 세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이전에는 이방인이 서로의 만남을 통하여 서로가 격려를 받고 힘을 얻는 것은 인류 역사상 없었던 일이다.

처음 아담의 범죄 이후에 인간 관계는 급속히 파괴되었다.

타락 이후 부부 사이에 대한 원망으로부터 시작하여 형제 간에 살인,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살인을 넘어서 하나님을 소외시키는 행위에 이르기 까지 관계성의 파괴는 점진적으로 증폭되었다.

인간의 수평적 관계의 손상은 아담의 범죄로 인한 수직적 관계의 손상으로부터 초래된 것이다.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회복시키심으로서, 믿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회복된 수직적 관계를 가지고있다.

바울과 로마 성도의 만남은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라는 회복된 수직적 관계의 수평적 확대인 것이다.

바울과 로마의 성도 간의 만남은 새로운 관계성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있다.

아합 왕이 다스리던 이스라엘에 극심한 가뭄이 왔을 때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을 죽이고서 사환에게 주먹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날 때까지 일곱번을 확인하도록 보낸다.

주먹만한 작은 구름은 하늘이 캄캄해지기까지 뒤덮여 온 지면을 적신다.

바울과 로마 성도의 만남은 주먹만한 조그마한 것이었지만 이 시대에 성도의 교제와 만남은 온 지면을 뒤덮으며 하나님을 찬양하고있다.

하나님 나라는 관계성의 회복과 더불어 확장된다.

이방인 성도와의 만남은 서로에 대한 격려를 넘어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하나님 나라는 민족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둘째 아담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가 되었기에 성도는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로 인해서 힘을 얻을 수 있는 관계가 된 것이다.

믿음을 통한 관계성의 회복은 인류 역사의 전환이 되는 사건으로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성도는 전혀 낯선 처음 만난 사람도 믿음 안에서는 서로 쉽게 가까워질 수 있다.

교회가 교회답게 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만남의 동력이 믿음이 되어야한다.


믿음에 근거한 관계성 회복

아담의 범죄 이후의 사람 간의 모든 관계성은 왜곡되고 변질되었다.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육신적 본능에 의한 것이거나 아니면 이익에 의한 것이다.

혈연, 학연, 지연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대표적인 요인이었다.

이러한 요인에 의한 관계성은 배타성을 가지면서 외부에 대한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부정적인 면이 있다.

혈연, 학연, 지연은 아담의 타락 이후에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는 주요 수단이었지만, 이는 회복된 하나님과의 관계성의 수평적 확장에 커다란 장애가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오신 것이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마 10:35)”라고 말씀하신다.

육신적인 인간관계는 어떤 면에서는 일반 은총의 영역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 은총의 영역은 하나님의 특별 은총의 영역 안에 있을 때 순기능을 할 수 있다.

아담에 의하여 파괴되고 왜곡된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근본적인 회복을 보게된다.

바울과 로마에 있는 성도와의 관계는 일반 은총 위에 더하여지는 하나님의 특별 은총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있다.

믿음은 특별 은총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바울이 로마의 성도와 만나 안위함을 얻고자하는 매개체는 바로 서로의 믿음이었다

바울과 로마인은 서로 이방인의 관계였지만 서로 안위함을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관계가 될 수있었던 것은 믿음의 결실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는 물론 사람간의 일그러진 관계를 바로 잡아준다.

성도가 세상에서 해야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한가지는 믿음을 기반으로하는 관계성의 회복이다.

참된 관계성의 회복은 오직 믿음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대위임령을 실천하여 제자삼는 사역의 실천은 바로 믿음을 통한 관계성의 회복이라는 결실을 가져오게된다.

믿음을 통한 관계성의 회복으로 모인 무리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며 그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세워져나아간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믿음이 근거가 되어야한다.

모든 만물의 구속이라는 우주적 교회론을 근거로한 선교적 교회론이나, 알버트 월터스의 "창조 타락 구속"의 기독교 세계관을 근거로 한 문화변혁 개념 안에는 믿음에 의한 관계성의 회복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근거한 성령의 창조 사역의 결과물이다.

믿음에 근거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아니다.

믿음은 문화와 달리 세상 사람과 공유될 수 없다.

구속의 근거는 믿음이 되어야한다.

성도가 문화활동을 하면서 세상에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활동의 근거가 만물의 구속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주적 교회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문화변혁 활동이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개혁주의 전가교리에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모든 이들이나 모든 피조 세계와 관계된 것이 아니라 오직 택한 자와만 관계가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택한 자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오직 택한 자만이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다.

참된 개혁주의 하나님 나라는 오직 믿음에 근거한 택한 자들 가운데 임한 그리스도의 나라이다.

바울과 로마의 성도들이 서로의 믿음으로 인하여 안위함을 받는 것은 오직 성도들 사이에서만 관계성의 회복이라는 하나님 나라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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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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