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7. 12. 29. 13:03

예레미야 18장 1-12절 말씀 묵상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시기로

3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5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7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8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9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10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11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

12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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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인격체로서의 진흙)


토기장이와 진흙과의 관계는 성경에서 많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비유 가운데 한 가지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는 토기장이와 진흙의 관계는 이사야서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기록되고 있다.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라는 말씀은, 토기장이의 원래부터의 의도가 다른 용도로 만드시려고 한 것이 아니라, 과정 가운데서의 실패로 인해서 토기장이의 1차적인 의도대로 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으셔서 진흙이 터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으셔서 아담의 범죄를 막지 못하셨다는 것과 같은 말일 것이다.


진흙이 터진 상황은 오직 진흙만의 문제인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진흙이 인격체라는데 있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격체이다.


인격체는 자신의 일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할 권리와 책임이 수반되어야만 참된 인격체라고 할 수 있다.


유다 백성은, 비록 타락한 아담의 후손으로서, 거의 사단의 좀비와 같은 인생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에 대하여 끝까지 인격적으로 상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격체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수반하기에, 인격체와 맺는 언약은 행위 언약 일 수밖에 없다.


은혜 언약은 일단 제대로된 인격적인 기능이 상실된 경우에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으신 언약이 행위 언약이었던 것은 아담이 인격적인 존재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가나안이 에덴이 유형학적으로 재연된 곳이라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끝까지 인격적으로 상대하고 계신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행위 언약의 근거하에서는 유다 백성들을 재앙의 저주 직전까지도 끝까지 인격적으로 권면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시내산 언약이 행위 언약이라는 사실은, 아담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격체로 대하시겠다는 하나님의 표현이었다.


일부 신학자들의 주장과 같이 오직 단일한 은혜 언약만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비인격적으로 대하시겠다는 표현이기에, 이러한 적용은 행위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비인격적인 개념이다.


아브라함 언약과 그리스도의 새언약이 은혜 언약인 것은, 이미 타락한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류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율법을 이행할 수 없는 전적으로 부패한 비인격적인 존재라는 사실이 결론으로 내려졌기에 나올 수 있는 개념이다.


예레미야를 통해서 표현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인격적인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기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시내산 언약이 비인격적인 은혜 언약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시내산 언약의 본질은 은혜 언약에 속하여 있지만, 표면적인 속성은 행위 언약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행위 언약을 인정하지 않는 신학자들은 모세의 시내산 언약이 이스라엘의 보존을 위한 것이지, 결코 불순종에 따른 심판과 저주를 수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이 불순종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고, 이를 위해 그리스도를 예비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들에 대해서, 재앙을 내리시기 직전의 마지막까지도 인격적으로 이들이 돌이키고 다시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하나님의 예정을 생각할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이라는 논리가 대립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는 조화가 될 수 있는 것은 끝까지 인격이라는 개념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라고 하더라도, 비록 구원에 있어서는 문제가 없을지는 몰라도, 결코 잘못된 행위를 간과 하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비록 은혜 언약에 근거하여 구원을 받은 신자라도, 그리스도와 연합된 새로운 피조물로서 그리스도의 인격을 새롭게 부여받은 새로운 창조물이기에, 새로운 인격체로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에 만연한 비상식적 행동과 부도덕은 하나님의 예정과 인격체로서의 인간의 책임을 잘못 이해한 결과물일 뿐이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들의 죄악을 간과하지 않으셨듯이, 마찬가지로 인격을 새롭게 부여받은 신자들의 잘못된 죄악들에 대하여 어떠한 형태로든 그냥 지나가시지 않으신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5-10, 하나님의 주권)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빚어내듯, 이스라엘을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토기장이가 터진 진흙을 자신의 의견에 좋은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듯이, 세우셨던 이스라엘을 무너뜨리는 것도 하나님의 좋으신 뜻대로 행하실 권리가 있으신 것이다.


애초부터 천지를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주권은 당연한 것이다.


인간의 타락과 구속사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입은 인간을 인격체로 창조하시기 위해서 값비싼 댓가를 치르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적 주권을 인정하면서도, 끝까지 인간의 행동방식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신다.


하지만 인간의 행동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무조건 인간을 받아들여야만 할 의무는 없다.


인간이 인격적 선택권이 있듯이 하나님도 인격적 선택권이 있으신 것이다.


비록 유다 백성이 이제껏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악에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내리시기로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실 수가 있고, 유다 백성들이 악한 것을 행하여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주실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실 수가 있으신 것이다.


신학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선택에 관한 예정론은 구원 받을 자에 대한 것이며, 여기에서 인격이라는 기본 권리가 배제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생각하는 차원보다도 높은 차원에 계시기에, 모든 부정적 상황도 결과적으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시다.



(11-12, 마지막까지 권면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포기하기 않으시고 유다 백성들에게 돌아오기를 권면하시지만, 유다 백성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대하여 인간이 한 마디의 항변도 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시면서, 인격적으로 유다 백성들의 선택을 존중하시면서, 끝까지 노력하셨는데도 결국 유다 백성은 최후의 순간까지도 하나님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인간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어떠한 한 마디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재앙의 저주에 대하여 항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인류가 현재적으로 담고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의 한 단면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마지막까지 거부하는 것은, 아담의 반역으로 인하여 인류 가운데 심겨진 죄악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유다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들이기에, 오직 은혜가 아니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이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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