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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8.16 :: 로마서 1장 11절 묵상
로마서 2020. 8. 16. 21:31

로마서 1장 11절 묵상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성도를 견고하게하는 신령한 은사


은사는 일차적으로 성도를 견고하게 하기 위함이다.


새롭게 시작된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여러가지로 쉽지 않다.


내부적으로는 지식과 경험의 부족에서 오는 두려움과 확신의 부족이 있을 수 있고, 외부적으로는 강력한 방해가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때에는 헤롯이 두 살 아래의 아이들을 다 죽임으로서 왕되신 그리스도의 탄생을 막으려고하였다.


이방 신자들의 탄생은 사탄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만해도 로마에서는 기독교인의 존재가 미미하였고 별다른 박해도 없었다.


하지만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에게 임할 박해를 예견하고있었다.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만나고 그들을 양육시킨 후에 기독교인들이 증가하자 이들에 대한 엄청난 핍박이 다가왔다.


바울이 나눠주고자하는 성령의 은사는 이러한 핍박을 이길 힘을 주는 것이었다.


어떤 성도는 시체가 태워짐으로 로마의 밤거리를 밝히기도했으며, 어떤 성도들은 로마의 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되어 목숨을 잃기도하였다.


살아남은 신자들은 핍박을 피해서 지하 무덤으로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기도하였다.


인간적으로 볼 때 바울은 로마에서의 혼란과 비극을 초래한 주범이었던 것이다.


기복 신앙에 익숙한 현대인의 입장에서 볼 때 바울은 문제가 많은 전도자였을지도 모른다.


성도의 죽음은 이 땅에서 보면 불행한 일이지만, 천상의 세계에서는 신자의 처음 부활이며, 하나님과 천사들의 기쁨이 되는 존재로 탄생되는 과정인 것이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죽음을 새로운 희망으로 받아들임으로서 핍박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에서는, 그동안 자신의 영역으로 땅을 지배하고있었던 사탄이 쉽게 물러날 수가 없는 것이다.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를 만나고자했던 것은 그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견고함을 주기 위함이었다.


당시에는 말씀도 정립되어있지 않았기에 사도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으며, 사도들이 전한 말씀으로 무장된 성도들은 성령의 은사로 인하여 강건해 질 수 있었다.


지금은 성경으로 말씀이 정립되어 있기에, 사도들의 도움이 없더라도 누구나 말씀을 접할 수 있으며, 상황도 초대 교회만큼이나 핍박은 있지 않다.


핍박의 양상은 초대 교회의 시대와는 많이 다르지만 현대인이 싸워나아가야할 대적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속이면서 다가오고있다.


초대 교회는 핍박이 수그러들면서 온갖 이단들과 영지주의자들을 상대하여야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도 이단의 거짓에 너무나도 많이 노출되어있다.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에게 가서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함으로서 그들이 성령의 은사로 강건해질 수 있도록 하였듯이, 현대인들은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도움을 받음으로서 혼탁한 인본주의적 이단사상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성령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듯이 새로운 시작에서는 항상 직접적인 간섭하심을 통해서 신자를 인도하신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죄의문제가 해결되지 못했으며 거룩함에 참여하지 못하였기에 신령한 은사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한 백성에게는 그 증거로 성령의 은사를 주신다.


성도는 바벨론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성령의 함께 하심으로 세상을 감당할 힘을 얻는다.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사도 시대와 달리 하나님의 말씀이 정립된 시대를 살아가기에, 사람으로부터 신령한 은사를 부여받으려고하면 안되고 말씀과 더불어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 4:12)


성도에게는 말씀이 곧 능력이 된다.



성령의 내주하심


나누어 준다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있는 소유를 공유하는 것이다.


바울이 나누어주고자하는 신령한 은사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신령한 은사와 성령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바울이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준다는 것은 바울 안에 성령이 내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증거하고있다.


바울이 성령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바울이 성령의 소유물이 된 것이다.


성도 안에 성령이 내주 하신다는 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되었다는 증거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거룩한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면서,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성전이었던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이 다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되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바울이 로마에있는 성도를 만나서 나누어주고자하는 신령한 은사는 그들도 성령의 내주하심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임을 인치는 것이다.


성도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성도에게 주시는 신령한 은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리스도의 안식에 참여케함으로서, 이 땅에서 평강을  누릴 수 있도록 해준다.



임파테이션


은사주의자들은 로마서 1장 11절의 말씀을 근거로 자신들의 임파테이션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현 시대에 유행하는 임파테이션이나 성령 운동은 종종 왜곡된 형태로 나타난다.


성령의 역사라기보다는 유사, 가짜 은사로서 사탄의 역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령한 은사는 신비를 경험을 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사도 시대에는 치열한 영적 전쟁이 있었다.


말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령의 은사는 악한 영과의 싸움에서 성도를 강건하게 해주었다.


신령한 은사는 성도에게 바벨론과 같은 세상을 살아갈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최근의 임파테이션은 주로 신사도 운동을 하는 이들 가운데서 흔히 볼 수 있다.


현재 유행하는 임파테이션의 경우 그 결과들은 대부분 귀신들림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성도를 거룩하게 해주고 강건하게 해주며 평안으로 인도 해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바울이 나눠주기를 원하는 신령한 은사는 환란 가운데 성도를 견고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시대에 성도를 견고하게 해주는 것은 말씀이다.


말씀 안에 거할 때 성령께서 말씀과 더불어 지혜와 능력을 주신다.


신사도주의자들은 성경말씀보다는 직접계시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이시대에 나타나는 영적 전쟁은, 육체적 고통에 의한 핍박보다는 속이고 혼탁하게하면서 유혹에 빠뜨리는 양상으로 나타나고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세우시는 역할을 한다.


신사도주의자들의 임파테이션은 말씀을 허무는 일을 하고있다.


이러한 면에서도 신사도주의자들의 임파테이션은 분명 속이는 자들의 가짜 성령 운동이다.


지금은 사도 시대와 같은 육체적 핍박보다는 영을 혼탁하게하는 인본주의 사상이 더 위협적이다.


이 시대에 신령한 은사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속이는 자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게하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


종말의 마지막을 살아가는 혼탁한 이 시대에 성령의 도움심과 더불어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면서 하나님 앞에 올바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을 만나야만한다.



만남의 중요성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도의 모임을 귀하게 여기신다.


분리는 아담의 범죄와 함께 시작되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가장 가까워야할 형제 사이가 미움의 관계로 바뀌었다.


인류는 싸움을 종결지을 수가 없었다.


사람의 만남 사이의 불협화음과 분열과 싸움은 인간이 사탄의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연합을 추구하여야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연합을 위한 희생적 사랑의 표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관계로 새로운 연합을 이루심으로서 새창조를 시작하셨다.


새로운 연합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다.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만나고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시작된 연합의 한 형태이다.


연합을 통한 새로운 창조는 성령의 역사이다.


신자는 성령의 대리인으로서 성령께서 하시고자하는 역할을 담당하게된다.


신령한 은사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사역이다.


예수님께서는 신자들이 서로 모이기를 원하셨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19-20)"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모이는 것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 세계의 회복으로서 이를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 사탄과 싸울 수 없다.


바알의 제사장들과의 싸움에서 이긴 엘리야는 지쳐서 죽기를 간구했다.


성도들도 악과의 싸움에서는 지칠 수밖에 없다.


엘리야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다가오신 하나님과 같이 성도에게는 말씀을 통하여 세미하게 다가오신다.


성도의 싸움은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의 싸움이다.


로마의 성도들에게 바울이 전한 신령한 은사는 성도들로 하여금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말씀 가운데 새롭게 모임을 형성하는 능력과 지혜를 허락하신다.


비록 로마의 초대 교회가 카타콤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새로운 창조 세계의 시작이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임으로서 이 땅에 하나님의 창조를 회복시킨다.


성령께서는 말씀 가운데 성도들에게 모임에 힘쓰도록 지혜와 능력을 허락하신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만남은 말씀과 더불어 성령이 함께하심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성도가 모이는 것의 중심에는 항상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여야만 참다운 교회로서의 만남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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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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