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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8.01 :: 로마서 1장 8절 묵상
로마서 2020. 8. 1. 13:27

로마서 1장 8절 묵상


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먼저)


바울은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방인의 구원은 바울의 가장 큰 관심사였기에 그 결실에 대하여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는 바울의 일차적인 관심사가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인의 구원이 가능하게 된 것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방인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이전에는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기에 이는 인류 역사상 처음있는 놀라운 사건인 것이다.


특히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바울 자신이 바로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새생명의 탄생


바울이 드린 감사는 인류 역사의 새로운 시작에 대한 감사였다.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믿음은 구원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놀라운 것이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은 유대인들의 한계를 벗어난 모든 나라들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로서 모든 이방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사건이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서 창조세계를 보시고 기뻐하셨듯이, 바울은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안에서 새롭게 시작된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보고 기뻐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이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새생명들이다.


새 생명의 탄생은 보는 모든 이들에게 기쁨을 준다.


이러한 새생명의 탄생이 가능했던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알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러한 믿음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주는 놀라운 사건이었기에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아담의 범죄와 더불어 여러가지로 손상되었고, 땅은 하나님의 생명이 담겨있는 피를 삼킬 수밖에 없는 저주 받는 곳이 되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종교의역사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은 범죄한 이후에 끊임없이 서로를 죽이며 우상을 숭배하는 죄악을 범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를 구속하시고자 이 땅을 바로 멸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며 일반 은혜를 베푸셨으며,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은 믿는 자의 나타남은 하나님의 구속의 특별 은혜가 시작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처음 아담에게 주어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은 아담의 타락과 더불어 육신의 것으로 변질되었지만,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인한 신자의 출현은 처음 아담이 실패한 창세기 1장 28절의 명령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믿음의 자손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대위임령(마28:19-20)을 실행하며 이 땅에 충만해질 것이다.


대위임령은 유대인들의 한계를 넘어서 땅에서 사는 모든 이들을 향한 것이다. 


모든 이들을 향한 대위임령이 가능한 것은 공로적 순종이 아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거부하였던 바울은 이제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고있다.


이방에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모든 민족에게 구원의 믿음을 주신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막힌 담을 무너뜨리신 분이시다.


인간의 폐쇄성은 어느 민족에서나 볼 수 있고 개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민족주의적인 유대인의 관점에서는 이방인의 구원이 용납될 수가 없기에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사울이 그리스도인을 핍박하였던 것도 민족주의적 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강하게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그만큼 획기적 전환점이 필요하다.


보수적 유대인이었던 바울이 그리스도를 주시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다메색 도상에서의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외부의 강압적인 사건이 아니고는 인간적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바울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는 것은 바울의 유대주의적 자아가 완전히 무너졌음을 말한다.


율법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없다.


율법은 인간이 얼마나 자아 중심적이고 자기 성취적인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율법은 인간의 부패성을 알게해준다.


율법과 마찬가지로 자연법도 모든 인간이 얼마나 부패한 존재인지를 알게해준다.


그리스도께를  주로 고백하기 위해서 인간은 바울이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실패와 좌절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서의 온갖 부정적인 상황은 바울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 초대하는 하나님의 싸인이 될 수 있다.


바울과 같이 무너짐을 통해서 삶의 방향이 전환될 때 바울과 같이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을 것이다.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로마는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이 최종적으로 가고자하였던 곳인데 자신이 방문하기 전에 이미 믿음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로마에 성도가 전혀 없었더라면 죄인의 신분으로 로마에 가야만 하는 바울로서는 자신을 통한 결실을 맺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비되어지고 준비되어진 이들은 사역에 있어서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바울이 이제껏 로마에 가는 일이 막혔던 것도 어찌보면 성령께서 미리 준비하시는 동안 바울로하여금 기다리게끔 하셨다는 생각도 해보게된다.


성령께서는 상황을 준비하시고 예비하신다.


열매맺는 일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성도는 쓰임을 받을 뿐이다.


성령의 예비하심으로 인해서 사람은 겸손해지게된다.


예비하심이 없이 자신이 일을 해서 결실을 맺을 수 있다면 인간은 교만해지게된다.


사람이 결실을 맺는 삶을 사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의 믿음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초자연적으로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바울이 로마에서 믿음의 주역으로 활동하기 이전에 이미 로마에는 자체적으로 믿는 자들의 무리가 형성되어있었다.


바울은 이러한 성령의 사역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린 것이다.


바울이 제1,2차 전도 여행에서 로마까지 바로 갔더라면 로마의 성도들이 거의 바울로 말미암은 결실들이었을 것이지만 그 결과는 지금보다도 나았을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바울이 로마에 가는 것이 지체된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주권적 간섭하심이 있으셨다.


태초에 천지 창조부터 종말의 새생명의 탄생까지 성령은 주체적으로 창조 사역을 진행하신다.


사도행전의 핵심에는 성령의 사역이 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함이다.


사람이 자신의 일을 계획할지라도 성령의 간섭하심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루시고자 하는 일을 이루신다. 


복잡한 역사적 상황에서 조차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목적하신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간섭하시며 상황을 운행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적 상황을 사용하셔서 복음을 전파하신다.


로마라는 상황은 유대 이스라엘에서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모든 민족에서 전파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통로였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이후의 종말론적 세계 역사에는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기 위한 성령의 간섭하심이 있다.


세상의 어떠한 상황도 복음과 관계없는 세상만의 상황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상황을 주관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세상 나라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은 하나님의 구속을 위한 수단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의 나라에 속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면서 동시에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특별은총의 나라에 속한 하나님 나라 백성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두 나라 백성으로서 일상의 삶 가운데 역사하는 하나님의 구속의 손길을 보아야한다.


바울은 자신을 감옥에 가두는 로마나 세상 나라와 투쟁하지 않았다.


바울은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이루시는 상황을 보면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바울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가 로마의 식민지배하에 있었으면서도, 그 가운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결실을 보면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있다.



구원의 근거가되는 믿음과 이를 거부하는 새관점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린 것은 그들이 구원의 근거가 되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또한 이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믿음은 인류 역사의 전환점이 된 것이다.


모든 인간은 이미 아담 안에서 부패된 존재였기에 행위로서는 구원의 희망이 없으며 오직 절망 뿐이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절망뿐이었던 세계에 희망의 싹이 트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율법은 행위를 요구하기보다는 죄를 깨닫게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지만,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인해서 구원을 위해 요구되는 것이 행위에서 믿음으로 바뀐 것이다.


바울이 감사하였던 것은 바로 이 “믿음”에 대한 것이었다.


바울은 이방인들의 믿음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는 약속이 이 땅에 이루어진 것을 본 것이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땅에 구현된 것이다.


믿음은 육적인 이스라엘과 교회를 나누는 기준이 되며 참된 하나님 나라 백성의 근거가 된다.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은 하나님 명령에 대한 순종이 요구되었던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요구되는 실체로서의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는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믿음은 하나님 나라가 인간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부터 말미암은 것임을 증거한다.


톰 라이트는 아브라함 언약이 유대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 땅에 구현되었으며, 이스라엘은 이 땅에 구현된 하나님 나라의 실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이 맞다면 그리스도와 관계없이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었다는 것이고 이러한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에있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것에 관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는 것은 믿음을 통하여 진정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바울이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다는 사실은 자신이 율법의 수호자로서 믿는 자를 박해하였던 자였음을 생각해 볼 때 놀라운 변화인 것이다.


행위에 의한 구원의 길을 포기하는 것은 죄성을 가진 인간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율법주의는 믿음을 요구하는 그리스도를 대적할 수밖에 없다.


율법주의는 인간이 구원의 주체가 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주체이이시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없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근거는 그리스도이시며 여기에 인간의 공로는 전혀 근거가 되지 못한다.


새관점은 그리스도를 부차적인 존재로 격하시키지만,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사건이었으며, 이 땅에 실현된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생각해볼 수 없는 일이다.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주었던 인간의 부패성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실현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믿음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이방인들 가운데에서의 구원의 믿음은, 온 세계에 대한 희망의 시작이었으며,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출애굽의 역사를 통하여 시작된 가나안에서의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는 열매를 맺을 수없는 과정일 뿐이다.


바울의 이방인에 대한 사역은 예수로 말미암아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비로서 열매를 맺기 시작한 것이었다.


바울이 전하고자하는 복음은, 이제 열매를 맺기 시작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더욱 강건하게 하면서, 이방인들에게 전파될 복음이 더욱 견고하게 정립된 가운데 전파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바울이 감사하였던 것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에 대한 것이었다.


메튜 베이츠가 주장하는 것과 같이 그들은 충성을 보여주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톰 라이트가 말하는 것과 같이 많은 연습과 노력으로 삶의 모습을 개선시킨 것에 대한 것도 아니었다.


세상에 전파된 것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선행이나 삶의 본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이 전파된 것이다.



언약적 신율주의에서의 구원의 근거


율법주의자들은 분명하게 그리스도를 거부하지만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또 다른 형태를 언약적 신율주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언약적 신율주의에서는 그리스도를 수용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리스도를 거부하고있다.


언약적 신율주의에서 말하는 그리스도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따름의 대상일 뿐이다.


언약적 신율주의는 행위에 의해서 구원에 이르려는 또 다른 형태이다.


언약적 신율주의는 신인협력적 사고에서 나온 구원론이다. 


샌더스, 제임스 던, 톰 라이트로 대변되는 새관점주의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가나안 땅에 임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안에 머무르고자 율법을 지켰다는 언약적 신율주의를 주장한다.


새관점에서는, 이미 출애굽시에 이스라엘에 구원의 은혜가 임하였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그리스도의 사역 이전에 구원의 은혜 안에 머무르고 있었기에, 새관점에서의 그리스도는 구원의 은혜에 머무르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며 삶의 본을 보여주신 분일 뿐이다.


새관점에서의 예수는 구원을 얻기 위한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임한 구원의 은혜 안에 머물기 위한 따름의 대상일 뿐이다.


새관점에서 말하는 믿음은, 예수의 로마에 저항하는 혁명적이고 희생적인 방법이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셨기에 예수의 방법론이 신뢰를 받을만한 방법이기에 믿고 따르라는 것이다.


이는 바울이 말하는 로마 성도들의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는 다른 것이다.


구원을 받기위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요구된다는 개혁주의의 입장과는 달리, 새관점에서는 이미 이른 구원 안에 머무르고자 행함이 요구된다는 주장을 하고있다.


개혁주의 입장에서 볼 때 새관점의 주장은 분명 다른 복음에 속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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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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