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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017. 12. 29. 14:01

예레미야 20장 7-18절 말씀 묵상

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 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8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0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11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12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14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15  나의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당신이 득남하였다 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16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무너뜨리시고 후회하지 아니하신 성읍 같이 되었더면, 그가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니

17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머니를 내 무덤이 되지 않게 하셨으며 그의 배가 부른 채로 항상 있지 않게 하신 까닭이로다

18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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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지쳐만 가는 예레미야)


예레미야는 지쳐만 가고있다.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일을 끝까지 시키시는 하나님께 항복한다.


자신이 당하는 조롱과 핍박을 체념 하듯이 받아들인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은 사람이기를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예레미야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아무런 결실을 보지 못했기에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죄인이기에 아무리 옳은 하나님의 일이라도 죄인의 정서로는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공의의 차원에서 일을 하시지만, 사람은 감정의 차원에서 일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시키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있기에 반어적으로 자신을 한탄하며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죄인으로서 하나님을 일을 감당하는데서 오는 괴리감이 예레미야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이중인격자, 혹은 위선자로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격적이신 분이시기 때문에 신자로하여금 일방적으로 명령하시지는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이신 분이시기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마음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하소연 할 수 있었다.



(9, 피할 수 없는 사역)


예레미야 선지자의 선포가 효과도 없는 것은 둘째치고, 핍박은 늘어가고 자신은 지쳐만 가는데, 예레미야는 이러한 상황을 벗어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래도 기도 할 수 있기에 예레미야는 내면에서의 혼란과 내적인 갈등을 하나님께 하소연하듯이 표현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뜻을 알 것같으면서도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잘 모르는 것으로 인한 답답함으로 인해서 더욱 혼란에 빠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 가운데서  예레미야가 성숙되어지고, 다듬어져가고 있었다.


비록 열매가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가 자신의 말에 순종하는 것으로 인해서 기뻐하셨음에 틀림이 없다.


성도는 비록 듣는 이들이 없고 열매가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아야 한다.


비록 헌신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성도의 외침은 하나님께서 마음의 소원을 주시고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생각을 하여야 할 것이다.



(10, 두려움에 처한 예레미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핍박했던 바스훌의 이름을 마골밋사빗, 즉 “사방이 두려워함”으로 바꾸었는데, 이러한 상황이 오히려 자기한테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면서, 예레미야는 극도의 두려움과 고통에 빠져서 혼란스러워한다.


심지어 예레미아는 친한 벗에게서도 핍박을 당한다.


예레미야는 이 세상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다 없어진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세상 어디에도 마음을 하소연할 곳이 없어진 것이다.


예레미야에게는 오직 하나님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예레미야는 이 세상을 살아가야하는 존재로서, 이 세상을 대적하면서 천상의 삶을 살아가야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러한 현상은 진리를 선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공유하다보면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진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다보면, 가까운 이들과 불편한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교회 공동체에서 조차도 진리를 말함으로 인해서 오해를 사고, 급기야는 서로가 결별해야하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교회에서조차도 진리를 공유하는 일이 쉽지만 않은 세상이다.



(11, 예레미야의 깨닫음)

예레미야는 매우 힘든 상황이지만, 자신의 대적들이 치욕을 당할 것을 생각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에 감사드리며 힘을 얻는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유다 백성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들과 싸우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예레미야에게 고통은 단지 자신의 희생에 대한 것이라고만 할 수가 없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경험했고, 하나님 안에서 이스라엘과 유다가 구원받을 것이라는 사실도 이미 깨달았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의 핍박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핍박과 하나님의 희생으로 이어질 것을 미리 짐작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레미야는 자신과 하나님을 동일시 함으로서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하나님께서도 당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에게서 볼 수 있는 희망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희생이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인간의 반역에 의한 하나님의 희생을 생각하면서 더욱 깊은 고통 가운데 빠져 들어갔다.


예레미야가 반역자들에 관하여 하는 불평은, 자신의 희생에 대한 불평보다는, 하나님께서 그들로 인하여 희생을 당하시는 것보다는 그들을 무찌르시는 것이 낫다는 것에 대한 간접적인 표현이다.



(12, 인격적이신 하나님)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을 믿고서, 자신과 하나님이 하나됨을 경험한다.


하나님의 쌍방 통행적인 인격이 예레미야를 통해서 나타난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반복해서 자기 중심적인 기도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만큼 예레미야를 인격적으로 대하시고 계시다는 것이다,


세상의 권위와는 달리 참된 권위는 인격적 관계를 형성하는 가운데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신 분이시며,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들에게 인격적으로 관계하시는 분이시다.


인간에게 있는 비인격적인 모습은 전부 아담의 타락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교회 공동체에서 성도 상호간에 인격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13, 찬양으로 바뀐 예레미야의 기도)


예레미야는 자신을 가난한 자로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여기서 가난한 자는 물질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핍박을 받는 자를 가리킨다.


세상에서 부자는 자신의 능력과 권력에 의지하려고 하지만, 세상에서 핍박받는 자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하기에 천국을 소유하는 부자가 될 수 있다.



(14-18, 저주가 찬양으로)


예레미야는 또 다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한탄을 하는 것 같지만, 실은 이제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자신이 기쁘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하는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예레미야의 반복되는 변덕과 감정은 예레미야가 지극히 변덕스러운 성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지극히 생각이 깊은 선지자라고도 생각된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깨달았으며, 궁극적으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깨달았기에, 예레미야의 슬픔과 고통은 결국 하나님께서 당하실 고통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유다 백성의 반역은 단순히 반역한 이들의 멸망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 반역할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며, 이는 결국 하나님의 희생으로 이어질 것이란 깨닫음 때문이 혼란스럽기만 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러한 서대한 구원 계획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으시기에,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마치 속이는 시내와 같이, 이해할 수 없는 분이라고 불평을 할 수 있다고도 생각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이라는 엄청난 고통을 보고있는 것이다.


예레미야가 자신의 삶을 저주한 것은, 인간의 본질이 저주 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후에 전개될 예레미야의 고백을 보면서,  예레미야는 인생의 본질적 죄악으로 인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라는 상상 할 수 없는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모든 고통이 결국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임을 보면서, 신자의 삶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인생임을 생각해 본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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