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7. 12. 29. 12:53

예레미야 15장 10-21절 말씀 묵상

10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어머니여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꾸어 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꾸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에게 복을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 네 원수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

12  누가 능히 철 곧 북방의 철과 놋을 꺾으리요

13  그러나 네 모든 죄로 말미암아 네 국경 안의 모든 재산과 보물로 값 없이 탈취를 당하게 할 것이며

14  네 원수와 함께 네가 알지 못하는 땅에 이르게 하리니 이는 나의 진노의 맹렬한 불이 너희를 사르려 함이라

15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하건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돌보시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로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

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17  내가 기뻐하는 자의 모임 가운데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에 붙들려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18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찌 됨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1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20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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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예레미야의 탄식의 기도)


예레미야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최선을 다해서 감당하였지만, 아무런 보람도 느낄 수가 없었기에  좌절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심정은 많이 격해져있어서 자신을  낳으신 어머니까지 들먹이고있다.


하나님과 유다 백성의 사이에서 어찌할 줄을 모르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심정은 격혀져가기만 한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과의 끊임없는 다툼으로 인하여 지쳐가기만 했을 것이다.


선지자의 직책은 세상과의 싸움이기에 피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모든 산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로서 그리스도가 회복하신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서의 직책을 가지고 있다.


신자도 선지자로서의 직책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세상과의 싸움으로 인해서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11, 하나님의 응답)


지쳐가고있는 예레미야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응답이다.


인간은 누구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만 한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맡은 일을 감당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모든 과정이 힘들지만 공동체의 위로를 받기보다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야 한다.



(12, 북방의 철)


북방의 철과 놋은 유대인의 교만을 깨뜨릴 강력한 금속으로서 깨뜨려져야할  유대인의 완고함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의 완고함을 깨뜨리기 위해서 더 큰 완고함을 사용하신다.


이는 이미 유다의 불순종이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유다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로 붙잡혀 갈 수 밖에 없는 상태인  것을 말씀하신다.


사랑하는 이들을 이방 민족의 포로로 내어주는 것은, 자녀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의 노예로 내어준다는 것과 같기에,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하나님과 언약 관계 가운데 운행되기에, 하나님의 순종에 대한 요구는 창조 세계의 공동체적 질서를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창조 세계 가운데 한 부분의 무너짐은 모든 창조 세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에, 창조 세계의 보존을 위해서 불순종을 수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13, 예레미야의 죄?)


13절의 뜻이 모호해서, 다시 번역해서 해석해본다.


“너희 나라에 만연한 너희들의 모든 죄악들로 인해서, 너희의 부와 보물들을 아무 값없이 탈취 당하게 할 것이다.-NIV번역)


13절은 예레미야 한 개인의 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가 포함된 공동체적 죄로 인한 유다 백성들에 대한 징계를 말씀하신다.



(14. 원수에게 내어줌)


중립지역은 없다.


어린 자녀가 부모로부터 독립하면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악한 세력에 귀속되듯이, 하나님께서 내어버린 민족은 자유가 아닌 다른 세력에 종속 될 수밖에 없다.


참 자유는 진리 안에서만 가능하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만이 참 지유를 누리는 길이다.



(15-17, 예레미야의 기도)


예레미야 선지자는 완전히 자기 문제에 빠져서 하나님의 응답과  관계없이 계속 자신의 이야기만을 계속 하고있다.


심지어 자신을 위해서 자신을 핍박하는 자에게 보복을 해달라고 외친다.


하지만 이러한 간청은 미움에 의한 간청보다는 유다 백성의 심각한 상황에 대한 답답함을 하나님께 아뢰는 탄식의 기도라고 할 수 있다.



(18, 하나님을 불신?)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고 하더라도 본인 자신이 고통스러우면 하나님을 원망할 수가 있다.


이러한 심정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종종 느끼는 감정들이기도하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체질적으로 손상된 아담의 자손이기에,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야 할 경우들이 있다.


예레미야가 바로 이 경우라고 생각된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의 일원으로서 유다 백성들과 같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것을 두려워할 수 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유다 백성과 다르다는 사실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한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고통을 솔직하게 기도한다.


기도는 잘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고백하여야한다.


신자의 기도는, 이 세상에서 복받는 것에 대한 것보다는, 이 세상과 구별되게 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세상은 심판받기에 합당한 방향으로 가고있기에 신자는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19, 예레미야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


선지자는, 하나님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여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강요 하시기 보다는 설득 하시고 기다리신다는 것을 볼 수 있다.



(20-21, 마음의 중심을 아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


비록 순간적인 감정에 의해서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항변하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마음의 중심을 아시기에 오히려 예레미야를 위로하시면서 다시금 예레미야를 굳건히 세우신다.


하나님은 단편적이시거나 감정적으로 일을 진행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권위주의자들은 자신에 대한 항변을 견뎌내지 못한다.


세상 권세들은 자신의 지위를 지키고자 항변하는 이들을 어떠한 형태로든 댓가를 치르게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권위는 우리를 두려움으로  경직되게 만들지는 않는다.


참된 권위는 사랑과 위로가 함께 할 때 세워질 수 있음을 본다.



(결론)


신자의 살아가는 것이 고달프다.


교회에서 조차도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공동체적 인간으로 창조하셨기에 신자는 비록 힘이 들더라도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여야 한다.


인간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처하게되는 공동체적 환경은 하나님의 공동체적 형상이 이 땅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 관계없이 공동체적 환경에 대한 책임을 지게되어있다.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 담겨있는 공동체성은 아담의 타락 이후에 변질되었기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할 수 밖에 없다.


예레미야의 탄식의 기도는 인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공동체에 대한 피해의식을 나타내는 것이다.


공동체성으로 인하여 가장 피해를 보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아담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공동체성을 파괴한 것이며,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류는 자기 이외의 공동체에 대한 파괴적 본능을 나타내고있다.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아담에 의하여 파괴된 공동체의 회복이며, 신자의 신앙생활은 공동체의 회복에 관여되어야만 한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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