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7. 12. 29. 12:29

예레미야 8장 4-17절 말씀 묵상

4  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갔으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

5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찌함이냐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6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악을 뉘우쳐서 내가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쟁터로 향하여 달리는 말 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7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8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냐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9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며 두려워 떨다가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그들의 밭을 그 차지할 자들에게 주리니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욕심내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1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12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질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할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

14  우리가 어찌 가만히 앉았으랴 모일지어다 우리가 견고한 성읍들로 들어가서 거기에서 멸망하자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멸하시며 우리에게 독한 물을 마시게 하심이니라

15  우리가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 고침을 입을 때를 바라나 놀라움뿐이로다

16  그 말의 부르짖음이 단에서부터 들리고 그 준마들이 우는 소리에 온 땅이 진동하며 그들이 이르러 이 땅과 그 소유와 성읍과 그 중의 주민을 삼켰도다

1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너희 가운데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를 물리라 하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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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절, 하나님의 바램과 인간의 현실)


온갖 가증한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회복을 희망하시나, 죄인인 당사자들은 회복을 바라지 않는다.


이러한 자존심은 아담의 후손이 가지고 있는 죄인으로서의 속성 가운데 한 가지로서, 회복에 대한 인간의 발목을 잡는다.


자존심은 아담과 같이, 자신의 실상을 보고싶지 하지 않는데서 연유된다.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은, 하나님의 간섭하심 앞에 자존심을 내려놓을 때 다가올 것이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은, 죄를 직면하게되기에, 비록 인간에게는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이것이 진정한 축복의 통로임을 인식해야한다.


대부분의 현대 사회가 지니고 있는 문제는 하나님을 배제한데서 연유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마음에 있는 양심이라는 자연법을 통해서 이러한 문제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러한 문제를 직면하고 싶지 않기에, 스스로를 속일 뿐이다.


현대 사회는 하나님을 떠난 악의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으며, 스스로 해결책을 제시해 줌으로서 더욱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부추긴다.



(7절. 규례와 자연법을 떠난 죄인들)


자연법은, 비록 속성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과 동물들 모두에게 주어졌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는 것은, 이미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제하여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규례는 구체화된 자연법으로서, 인간이 규례를 떠난다고 할지라도, 규례를 떠난 인간의 모습은 결국 자연법을 통해서 실상이 드러나게 되어있다.



(8,9절- 지혜의 근원된 말씀)


유대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은 지혜가 아니라 하나의 지식에 불과했다.


그들은 타락한 아담의 후손이기에 율법은 행할 능력이 없는 머리에만 남아있는 지식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행할 능력이 없으면서도 율법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현대 사회는 지혜로운 사회가 아니라 지식이 넘치는 사회다.


지식이 많은 이들은 자신이 지혜롭다는 착각을 하게된다.


지식은 인간 머리에서 나오는 생각을 강화할 뿐이지만, 지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지식이 많은 인간은 선과 악에 대해서 스스로 모든 것을 판단하면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고 교만해진다.


지식은 과학적이지만 지혜는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하나님의 말씀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이 지식으로는 알 수가 없다.


오직 지혜를 가진 이들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교만한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과학적 지식이나 인간 중심의 실존적 사고로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재단하려고 한다.


유신론적 진화론 같은 경우는,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지식으로 재단한데서 나온 결과이다.


오히려 증명되지 않은 진화를 가지고 진리를 대체한다.


하자가 있는 지식은 진리가 될 수도 없고 더군다나 과학적이지도 않다.


유신론적 진화론 뿐만이 아니라 칼 바르트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지식의 코드로 풀어내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결과물물은 인간의 지식 코드에는 잘 맞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지혜로운 생명력은 상실 될 수 밖에 없다.


이와같이 지식의 코트로 무장한 이들은 지혜로운 사람들을 쉽게 난도질 하면서, 자신들은 옳은 일을 하는 정의의 사도라는 자부심으로, 스스로 교만해지기도한다.


지혜가 없는 지식은, 진리의 생명력을 파괴하는 부작용만 양산할 뿐이다.


이들의 종국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며, 자신들이 쌓은 교만으로 인하여 스스로 두려움에 사로 잡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서 은혜를 거두어 가실 때, 이들은 결국 황폐하여 질 것이다.


지혜있는 자는 지식의 높은 자리에 앉을 때 더욱 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한다.



(11-12절, 악을 행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고 거짓말을 한다)


높은 자리에 앉은 이들에게는 책임감이 요구된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지도층 인사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가증한 일을 행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들의 모습은, 이 시대의 교회 가운데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설교시간에 수 많은 가식과 위선 그리고  거짓말을 하면서도 아무 문제 의식을 못 느낀다.


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의 영혼의 잘됨을 위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성도들이 상처를 받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씀을 왜곡 시키면서까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들은 이러한 일들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승리자 의식으로 살아갈 뿐이다.


이들에게 임하게 될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기만하다.



(13-17. 재앙만을 걱정하며 문제의 근원을 생각하려하지 않음)


부정적 상황을 허락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에게 주신 은혜를 거두어 가실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부정적 상황의 원인이 어디에서부터 오는 지를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자신들이 하나님께 잘못 한 것을 알고있지만, 하나님께 나아가기보다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환경의 재앙이나 여러가지 현상들에 대해서, 오직 과학으로만 풀어 가려고 한다.


기상 이변으로 작황이 안 좋으면 수입을 하면되고,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하려고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지식과 능력에 제한 받으시는  분은 아니시다.


한 가지를 해결하면, 그 보다 더 많은 여러가지의 재앙을 허락하신다.


마지막 때에는 재앙으로 울부짖는 소리를 더욱 많이 듣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방책을 구하여도 결코 하나님의 진노에서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함께 한 연약한 이들을 위해서 오래 참으실 뿐이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라도 감출 수가 없으며, 심지어는 마음 속의 어떠한 생각도 숨길 수가 없다.


다만 하나님께서 아시고도 오래 참으실 뿐이다.


이 모든 것을 알 때 어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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