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7. 12. 29. 12:34

예레미야 11장 1-8절 말씀 묵상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이라 이르시되

2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말하라

3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언약의 말을 따르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니라

4  이 언약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령한 것이라 곧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순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5  내가 또 너희 조상들에게 한 맹세는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언약을 이루리라 한 것인데 오늘이 그것을 증언하느니라 하라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멘 여호와여 하였노라

6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말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선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지키라

7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간절히 경계하며 끊임없이 경계하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순종하라 하였으나

8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각각 그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에게 행하라 명령하였어도 그들이 행하지 아니한 이 언약의 모든 규정대로 그들에게 이루게 하였느니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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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절, 언약의 대상인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의 존재적 삶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 안에서의 삶이다.


이들의 가나안 땅에서의 삶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순종을 조건으로 허락받은 삶이었으며, 불순종에 대해서는 저주가 약속된 행위 언약 안에서의 삶이었다.


이들의 이전 상태는 쇠풀무 애굽 땅에서의  종이었지만, 가나안 땅에서의 현재적 삶은 종에서 해방된 삶으로서, 순종과 명령을 따를 것을 조건으로하는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 있었다.


하지만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무시하였으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배제하는 삶을 살았다.


인간이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무시하고 하나님을 배제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언약에 대한 파기를 의미하지만,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행위 언약에 의해서 그들에게 저주를 선언하실 수 밖에 없으신 것이다.


이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저주는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이 행위 언약 안에 있었던 것을 근거로하는 하나님의 정당한 심판이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거주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신 것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주는 죄성은 인간이 결코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해주고있다.


(6-8절, 하나님의 원하심)


하나님께서는 부패할대로 부패한 백성들에게도 예레미아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으로서, 유다백성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끝까지 언약의 요구인 순종을 요구하신다.


예레미야로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상기시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순종하고 명령을 지킬 것을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주실 저주는 행위 언약을 근거로 한 것이기에, 순종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 완악한 이들이 자신들에게 임하게 될 저주로 인하여 하나님을 원망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행위 언약을 근거로한 순종에 대한 요구는 결과적으로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앞으로 임할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이 참여할 자리가 없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증거해주시는 것이다.


아담이 인류를 대표하였듯이 이스라엘은 보편적인 인간의 실상이 어떠한 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고있다.

모든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현재적 삶도,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삶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행위에 대한 심판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아담의 후손으로서, 하나님과 아담 사이의 행위 언약 관계 아래에서 대표자 아담을 통해서 행위 언약 아래있었다.


아담은, 유다백성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같이, 행위 언약을 근거로 에덴에서 쫓겨난 자이다.


우리는 이미 아담 안에서, 실패한 아담에 의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죽은 상태에 있는 자이다.


이스라엘은, 행위 언약 아래에서, 이미 죽어있는 자들의 실상이 어떠한지를 고발하고있다.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미 죽어있는 자들이 고발되는 목적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을 성취하시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아담에게 또 하나의 언약(원시복음: 창 3:15)을 세우심으로서, 타락한 아담이 낳은 아들 셋 안에서 여호와를 부를 수가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적 삶은,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으신 언약 관계로 인하여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노아 언약의 궁극적인 목적은, 일반적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인류 모두는 누구나 다 양심과 같은 자연법을 통하여 자신이 언약 안에서 저주를 받은 아담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원을 위해서는 죄가 고발되어지는 인생을 경험해야만 하는데, 이는 자연법을 통해서 인간의 실상이 고발되어져야만 가능한 것이다.


인간이 누구나 예외없이 죄인이라는 사실은 어느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는 엄연한 사실이며,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는, 아담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정하심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제대로 설명되어질 수 있는 것이 없다.


펠라기우스와 같은 이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에 모두 다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며, 어거스틴은 생물학적인 유전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행위 언약을 근거로한 하나님의 강령이라고 설명할 수 밖에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실상이 어떠한 지를 깨달을 때 우리에게 구원의 소망이 주어질 수 있다.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우리는, 행위 언약 안에서 저주받은 자이기에, 더 이상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우리의 행위는 단지 고발되어질 뿐이다.


아담의 아들 셋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것과 같이,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할 때, 고발되어지는 인생에게 희망이 있는 것이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부터 오는 것이기에, 인간의 행위는 구원의 공로에 더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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