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18. 2. 2. 19:46

사도행전 13장 32-43절 말씀 묵상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구약을 근거로 하고 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구약에서의 약속의 성취이기에 구약의 약속을 믿고있던 이들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이는 구약 시대에도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믿었던 이들이 구원에 참여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복음은 율법이 가지고 있는 행위 언약적인 면에서는 대립적이면서 불연속적이지만, 율법이 가지고 있는 은혜 언약의 속성에서는 율법의 완성이면서 연속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이기에 유대교에 들어온 경건한 이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약속의 성취이다.

낳았다는 말은 부활을 지칭을 지칭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히1:5)”라고 기록하고있다.

5장에서는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히5:5)” 기록함으로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것을 보게된다.

그리스도는 부활을 통하여 새롭게 태어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새이스라엘이 되신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로서 대제사장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로마서에서는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라고 기록함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되심의 근거를 부활에 두고 있다.

그리스도의 메시아되심은 부활을 떼어놓고서 생각할 수 없다.

새이스라엘로서의 그리스도는 성도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초대하셨으며, 혈통으로난 유대적 이스라엘이 아닌, 믿음을 근거로한 새로운 이스라엘로서의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것이다.

이러한 예수를 일으켜 아들 삼으신 것은 구약의 약속을 근거로 한 것이며, 그리스도는 부활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디심으로서 모든 믿는 자의 맏형이 되셨다.

바울이 전하는 그리스도는 새로운 하나님 나라 백성의 탄생을 대표하는 그리스도이시다.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썩음은 아담의 범죄로 부터 들어온 것이다.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은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는 더 이상 썩어짐의 종노릇하지 않고 부활의 능력을 공유하는 것이다.


35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베드로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면서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라고 전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썩어짐에서의 해방을 말한다.

바울과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은 아담의 범죄와 더불어 시작된 죄로 인한 썩어짐이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썩어짐에서의 해방을 말함으로서 베드로와 바울은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의 대조법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새관점에서는 어디에서도 둘째 아담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역할은 없으며, 톰 라이트가 전하는 그리스도는 유대적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유대주의의 메시아이다.

알버트 월터스의 “창조 타락 구속" 기독교 세계관도 마찬가지로 둘째 아담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역할에 대하여는 전혀 논하지 않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톰 라이트의 새관점을 수용하여 개정판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썩어짐에서 해방시키신 둘째 아담으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전해져야한다.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다윗을 특별히 그리스도와 연결시키는 것은 다윗이 사울왕과는 달리 하나님의 왕권을 이 땅에 선포한 왕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왕으로 있던 다윗 왕국은  이 땅에 대한 그리스도의 나라를 예표하였다.

아담은 왕으로서 피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왕권을 선포하여야 했었는데, 아담의 범죄는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왕권에  반기를 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 땅에서 직접 왕으로서 통치권을 행사하시고자 하셨는데, 백성들은 눈에 보이는 왕을 원하였고, 이는 결과적으로 사울왕의 타락으로 연결되었다.

하나님께서 다윗왕을 기뻐하셨던 것은 다윗 왕국이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가 왕되신 하나님 나라를 예표하였기 때문이었다.

다윗 왕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왕권이 선포됨으로서 그리스도는 참이스라엘이 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낳으신 참이스라엘이신 아들은 다윗왕과 더불어 유대 이스라엘 가운데 잉태되었었다.

아담은 범죄함으로 하나님에게서 떠난 자였으며, 사울은 아담의 범죄와 같이 자신에게 향한 하나님의 왕권을 선포하지 못했지만, 다윗은 하나님께 향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다.

다윗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왕권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선포할 하나님의 왕권을 예표하였기에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어도 하나님께서 살리신 것이다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썩지 않음의 근거는 죄사함이다.

죄는 아담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사함을 위한 것이다.

톰 라이트는 예수가 로마에 대한 이스라엘의 잘못된 행동방식을 수정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본을 보여주었다고 말하지만 이는 지극히 유대주의적 발상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속죄 사역을 부인하는 다른 복음을 말하는 것이다.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한다.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를 근거로하는 의는 모세의 율법으로 의롭다하려고 하는 것에 대하여 대조를 이룬다.

이는 율법이 의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잘못 사용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에 반해 톰 라이트는 율법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무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언약적 율법주의를 주장함으로서 바울과 상반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톰 라이트는 죄사함을 없애고 그 자리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 중심의 하나님 나라라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탄생을 집어넣었다.



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42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43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복음이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두려운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 앞에 모인 이들은 자연스럽게 복음을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이는 바울의 설교가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울도 베드로나 스데반과 같이 유대 이스라엘에 기반을 둔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는 유대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그리스도께 귀결되어야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음은 유대인과 유대교와 대립적이면서도 완성적인 면이 있다.

이는 복음이 율법과 가지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두 가지 면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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