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2018. 3. 14. 20:13

예레미야애가 2장 1-10절 말씀 묵상



1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딸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가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음이여 그의 진노의 날에 그의 발판을 기억하지 아니하셨도다

딸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다는 표현을 한 정도로 사랑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다.

마땅히 사랑을 받아야 할 대상이 진노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믿었던 이로부터의 배신은 증오를 불러일으키겠지만, 하나님으로부터의 징계는 배신이 아니라 스스로 화를 자초한 일이기에 하나님께 항의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심정은, 기대하였던 자녀에게 배신당하는 부모의 심정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다가오라고 성전이라는 발판까지 만들어 주시고 아름다움으로 입히셨는데,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기보다는 아담의 후손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먼저 하나님을 소외시켰던 것이다.

딸 시온과 이스라엘에 대한 진노는, 기대하시고 원하셨던 것에 대한 실망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발판을 만들어 주셨지만, 유다가 이를 원치 않았기에 성전이 파괴되는 것을 허락하신 것과 같이, 에덴에서도 하늘과 땅의 연합을 위한 성전으로서의 발판을 저버린 아담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아담이 에덴에서 추방 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시온에 발판을 허락하신 것은 궁극적으로 하늘과 땅의 연합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유다가 보여준 모습은, 아담의 후손이었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더 이상 하늘과 땅의 연합이 불가능함을 보여준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그리스도없이는 하늘과 땅의 연합을 바라볼 수가 없다.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는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인하여 하늘 문이 열린 곳이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없는 유대 이스라엘을 하나님 나라의 실체로 보지만, 이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거부하는 사단이 좋아하는 이론일 뿐이다.

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나라이기 이전에 이들이 아담의 자손임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2  주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들을 삼키시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셨음이여 노하사 딸 유다의 견고한 성채들을 허물어 땅에 엎으시고 나라와 그 지도자들을 욕되게 하셨도다

야곱은 이스라엘로서 아브라함의 영적인 자손이라고 할 수가 없다.

인간의 본능적으로 육체를 위해 살기에,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마련해주셔도 인간은 이를 육체의 기회로 사용할 뿐이다.

야곱의 모든 거처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필요할지라도 인간에게 이것은 스스로 힘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될 수가 없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성전이 파괴되도록 허락하심으로서, 야곱의 모든 거처,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육체적 후손에게서 기대하셨던 제사장 나라로서의 기능을 소멸시키신 것이다.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은혜의 방편은 하나님께 귀결되지 않고는 소멸될 수 밖에 없다.


3  맹렬한 진노로 이스라엘의 모든 뿔을 자르셨음이여 원수 앞에서 그의 오른손을 뒤로 거두어 들이시고 맹렬한 불이 사방으로 불사름 같이 야곱을 불사르셨도다

하나님의 진노가 맹렬하시다는 것은 불순종의 심각성의 한 단면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뿔을 자르심으로서 이스라엘은 더 이상 자신을 방어할 수 없을 뿐더러, 대적들 앞에서 무력하게 당해야만 했다.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이들의 최후의 모습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을 배제하는데 있어서 어느 시대보다도 탁월하다.

첨단 기술이 하나님을 대체하였고, 물질과 돈이 하나님보다도 더 의지할 뿔이 되었으며,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하나님을 철저하게 배제하고있다.

마지막 때의 마지막은 환경 재앙이나 갖가지 난관들이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도 없으며, 철저하게 하나님을 배제하는 인간의 죄성에 심각성이 있다.

하나님을 배제하면서 다가올 재앙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현대인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이들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4  원수 같이 그의 활을 당기고 대적처럼 그의 오른손을 들고 서서 눈에 드는 아름다운 모든 사람을 죽이셨음이여 딸 시온의 장막에 그의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하나님께서 원수가 되셨다는 사실은 그냥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것이다.

불순종은 단순히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과 적대적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이방인인 우리는 얼마나 순종하는가?

율법을 받지 않았다고 무책임 할 수 있는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자연법 아래에 놓여있다.

자연법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이 주어졌듯이,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법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자연법 아래에서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하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위치와 책임을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은 자신의 삶의 목적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주신 삶의 목적은 분명하게 있는 것이기에 이에 대한 외면은 유다의 종말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5  주께서 원수 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셨음이여 그 모든 궁궐들을 삼키셨고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리사 딸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도다

버림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원수같이 되심을 통해서 불순종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보여주신다.

인간에게는 하나님께 순종하느냐, 아니면 불순종하느냐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라도, 순종의 문제는 하나님께 매우 중요한 주제인 것이다.

율법이 아니라 자연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있는데도 인간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외면하지만, 그 종국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무너지는 가운데 비참해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6  주께서 그의 초막을 동산처럼 헐어 버리시며 그의 절기를 폐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시며 그가 진노하사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도다


유다에 임한 파괴는 그동안 하나님께 나아가는 발판들에 대한 것이었다.

초막이 헐리고 절기가 폐하여졌음은 경고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이라는 결론의 차원이다.

더 이상 인간에게 주어진 수단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없어졌을 뿐만이 아니라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나라이기 이전에 아담의 후손임을 증명하는 것으로서, 이는 아담의 후손인 인류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항이다.

율법을 통하여 주어졌던 안식일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에, 오직 안식의 주인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하고, 그리스도께 참여된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7  여호와께서 또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궁전의 성벽들을 원수의 손에 넘기셨으매 그들이 여호와의 전에서 떠들기를 절기의 날과 같이 하였도다

예루살렘의 모든 기능이 상실되었다.

하지만 제3성전에 집착하는 현재의 상황은 인간이 얼마나 자신들의 죄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방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제3성전에 대한 집착은 모든 인간이 자신의 방식으로 의를 세우려는 것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파괴를 통해서 인간에게 더 이상 기회를 주시지 않으신다.

오직 그리스도께 의지하며 두 손들고 나아가야만 될 것이다.


8  여호와께서 딸 시온의 성벽을 헐기로 결심하시고 줄을 띠고 무너뜨리는 일에서 손을 거두지 아니하사 성벽과 성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그들이 함께 쇠하였도다

인간을 통해서 세워지는 눈에 보이는 성전은 파괴될 수 밖에 없다.

제2성전의 파괴와 마찬가지로 솔로몬 성전도 파괴될 수 밖에 없었다.

아담이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던 것과 같이 예루살렘 성전은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모형일 뿐이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서 인간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9  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부서져 파괴되고 왕과 지도자들이 율법 없는 이방인들 가운데에 있으며 그 성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하는도다

보호받지 못하는 예루살렘은 바벨론 유배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하나님과 교통 할 수 없는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 있는 것이며, 이는 인간의 상태가 사단의 종노릇 할 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이 발전과 노력을 통하여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평안은 근본적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


10  딸 시온의 장로들이 땅에 앉아 잠잠하고 티끌을 머리에 덮어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둘렀음이여 예루살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도다

이들은 자신들이 절망 가운데 있음을 인식하고있기에 그나마 희망이 있다.

이러한 절망도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에게는 희망을 찾아 볼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이 땅에서의 고통은 절망적일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과 현재의 상태에 대한 인식의 출발이 되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도 있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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