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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2.29 :: 예레미아 7장 29절- 8장 3절 1
  2. 2017.12.29 :: 예레미야 7장 16-28절 말씀 묵상
  3. 2017.12.29 :: 예레미야 7장 1-15절 말씀묵상
예레미야 2017. 12. 29. 12:27

예레미아 7장 29절- 8장 3절

29  너의 머리털을 베어 버리고 벗은 산 위에서 통곡할지어다 여호와께서 그 노하신 바 이 세대를 끊어 버리셨음이라

3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 자손이 나의 눈 앞에 악을 행하여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그들의 가증한 것을 두어 집을 더럽혔으며

31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령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하지도 아니한 일이니라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날이 이르면 이 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말하지 아니하고 죽임의 골짜기라 말하리니 이는 도벳에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했기 때문이니라

33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

34  그 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어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의 지도자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주민의 뼈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2  그들이 사랑하며 섬기며 뒤따르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에서 펼쳐지게 하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며

3  이 악한 민족의 남아 있는 자, 무릇 내게 쫓겨나서 각처에 남아 있는 자들이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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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에서의 가증한 것)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이스라엘의 가증한 것은 주로 우상 숭배들에 대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는 표면적으로나마 명확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달리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명확한 우상숭배하지 않는 것일까?


오늘날의 사람들은 도벳에서의 이스라엘의 행위와 같이 가증한 것을 행하지 않는가?


더 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율법이라는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오늘날의 보편적인 사람들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심겨 놓으신 자연법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율법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저주와 심판이 예고되어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인류도 마찬가지로 자연법 앞에서 저주와 심판이 예고되어있다.


율법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는 분명한 배교행위로 드러났지만, 자연법 앞에서 오늘날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등진 문명의 발달로 하나님을 등지고 있다.


이 세대는 이스라엘 백성들 못지 않게 하나님을 배제하는 악한 세대임이 분명하다.


인간의 문명의 발달 이면에는 분명하게 하나님을 배제하고, 인간의 필요를 하나님께 구하기 보다는 인간 스스로 해결해보자는 독립적인 마음이 깔려있다.


문명은 정죄를 하지 않지만, 하나님께 나아가면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고 정죄 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아담도 범죄하고서 하나님을 피하였듯이, 아담의 후손인 가인도 아벨을 죽이고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의미를 지닌 에녹, 즉 개벽을 뜻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으로 부터 독립 선언을 하였다.


한 세기전 서구 사회는 산업혁명과 더불어 대량 생산한 물건을 팔 시장을 확보하고자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렸다.


산업화된 나라들은 수 많은 나라들의 주권을 강탈하고, 수 많은 이들을 희생시키면서도, 그저 자신들의 이익만 증가되면 아무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산업혁명에 뒤늦게 동참한 독일과 일본은 다른 나라들이 이미 식민지를 다 차지하고있었기에, 자신들도 시장을 확보하고자 전쟁을 일으키게되었다.


현대 사회는 시장 경제가 사회를 이끈다.


시장 경제에서의 진리는 이익이다.


현대 사회는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낼 구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스라엘에서는 도벳에서의 가증함이 제한적으로 드러났지만, 제1,2차 세계대전은 하나님을 등지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먹이 쟁탈전을 벌이는 전 세계적인 살욕의 현장이었고, 전 세계를 죽임의 골짜기인 힌놈의 아들들의 골짜기로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이는 아직도 여러가지 형태로 우리의 경제 활동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제 1, 2차 대전 후에 전 세계적인 무역의 발달과 첨단문명을 발전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이들이 승리를 외치는 소리다.


이제 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인터넷의 발전과 더불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영역에 까지 새롭게 둥지를 틀고있다.


모두가 이 골짜기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곳은 영혼을 파멸로 몰아가는 게헨나가 될 뿐이다


힌놈의 골짜기는 죽이는 자들이 죽는 곳이 되었듯이, 문명의 발전은 모두에게 죽음의 골짜기가 될 수밖에 없다.


삶의 환경에서 부딪히는 재앙들은 대부분이 힌놈의 골짜기를 만든 인간의 작품들이다.


도벳에서 어린 아이들을 희생제물로 드리는 이들은 결코 자신들이 그릇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것이 얼마나 커다란 악행인지에 대하여 무지할 뿐이다.


도벳과는 다르지만 한국교회에서 일어나는 온갖 악행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곳에 얼마나 가증한 것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교회 안에 있는 이들 가운데 비판하는 소리를 하는 이들을 쫓아내고서, 자신들은 남겨진 기드온 용사들이라 선포하는 교회도 있다,


말씀이 무덤에 덧입혀진 회가 되어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교회마져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가증한 것이라도 쉽게 수용해버리고 만다.


결국 교회의 몰락은 죽이는 자의 죽음과 같이, 스스로 파놓은 골짜기에 묻혀버리는 것이다.


교회의 몰락은 희망의 상실이며, 세상에서 난도질 당한 이들에게 위안을 제공하지 못한다.


마지막 때에는 교회의 부패로 말미암아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 마저도 쫓아낼 수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저주하시는 분이 아니고 살리시는 분으로서 산자의 하나님이시다.


사람들의 부정적 상황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두어 가신 결과일 뿐이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고발 당하는 인생들에게 유일한 희망이 될 것이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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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017. 12. 29. 12:25

예레미야 7장 16-28절 말씀 묵상

16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네게서 듣지 아니하리라

17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18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의 여왕을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일으키느니라

1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나를 격노하게 함이냐 자기 얼굴에 부끄러움을 자취함이 아니냐

20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나의 진노와 분노를 이 곳과 사람과 짐승과 들나무와 땅의 소산에 부으리니 불 같이 살라지고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제물과 번제물의 고기를 아울러 먹으라

22  사실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령하지 아니하고

23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24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신들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 얼굴을 향하지 아니하였으며

25  너희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었으나

26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조상들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27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을 할지라도 그들이 너에게 순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네가 그들을 불러도 그들이 네게 대답하지 아니하리니

28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민족이라 진실이 없어져 너희 입에서 끊어졌다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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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숭배에 대하여 분노하시는 하나님)


불순종은 다름 신에게 종속된 상태를 말한다.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의 종이든지, 아니면 사단의 종이다.


불순종의 문제는 아담에게서와 같이 처음에는 유혹, 그리고 그 다음 결과는 다른 신에게 종속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순종은, 우선 광야에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그 다음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가운데, 성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을 희생 제사로 드린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다 지키셨다는 성경 구절이 없다면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를 거부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광야에서 금식 하신 후에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심으로서, 율법의 요구인 완전한 순종을 이루신 것이다.


예레미아를 통해서 보여주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이미 유혹받은 자로서의 삶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에덴에서 불순종한 아담의 후손이기에, 결과적으로는 사단에게 종속되는 행동을 보여줄 수 밖에 없다.


예레미아서에서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보다는, 유혹받아 사단의 종노릇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가 어떠한 지를 고발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모든 인간이, 오직 은혜를 통해서 그리스도께 나아가야만하는 인생임을 가르쳐준다.



(순종은 들음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관심은 순종이다(24, 26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초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생각이 없었기에 순종을 기대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었기에, 자신이 판단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소견에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이 옳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데서 오는 결정은 불순종일 뿐이고 악일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최대의 관심사는 듣는데서 오는 순종이었다.


불순종하는 이들의 마음에 가득한 악한 마음의 꾀와 완악한 마음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가운데서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현대 첨단 문명의 기기들을 통하여 제공해주는 지식들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을 대신해준다.


첨단기기가 삶을 윤택하게해주는 것과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더 많은 불순종의 기회를 제공해주기도한다.


도구 자체가 악은 아닐지라도 악의 수단이 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인간이 쉽게 스마트 폰에 중독된다는 것도, 스마트 폰의 기능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인간들에게 우상 숭배의 길을 열어주고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악한 마음의 꾀와 완악한 마음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첨단 기기에 의해서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인간이 개발한 첨단 문명은,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에 합당한 모습을 제공해주고있다.



(부정적 상황들은 하나님을 외면한 결과에서 온다)


고도의 문명을 자랑하며, 뛰어난 학식을 가지고서, 최고의 지성이라 자는 이들이 가득한 현대인들도 우매하기는 마찬가지다.


현대의 삶의 환경 가운데서 발생하는 부정적 상황의 근본 원인이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결과라고 말하는 이들이 없다.


모든 부정적 상황은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설명되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부정적 상황의 근본 원인이 하나님을 외면한 결과에서 온다고 말하는 이들이 없다. (20절)


인간은 자신이 인식을 하지 못하더라도 악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유다 백성들이 조상들보다도 더욱 악을 행한 것과 같이 인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발전의 심도를 더해가게 되어있다.


문명의 발전은 마음의 소원을 이루는 방향으로 가게 되어있다.


하나님께서 내어버려둔, 우상 숭배하는 이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결코 낙관적일 수 없다.


내어버려진 이스라엘의 종국과 같이, 하나님께서 내어버려둔 현대인들에게 임할 종국은 악마적이고 파괴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순종하지도 않고 교훈을 받지 아니하려는 민족에게 외치는 말씀은 심판에 대한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간구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사람에게는 부정적 상황의 위협이 심각한 문제이겠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들의 마음을 두드리시는 표시라고 보아야한다.


인간은 스스로가 어쩔 수없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면서 부터 길이 열리게 되어있다.


인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에는 인간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현대 문명은 창조적 발전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분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심에 절대적 영향을 받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고 이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고 간구도 하지말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겠다고 하시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희망은 그리스도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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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017. 12. 29. 12:23

예레미야 7장 1-15절 말씀묵상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

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7  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8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9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2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보라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 같이 너희가 신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곳에 행하겠고

15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낸 것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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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의 종교가 아니지만 윤리는 열매로서 중요하다)


행위의 열매가 없는 예배의 문제점을 지적하신다(3절).


이들이 길과 행위에 있어서 바르지 못한 것은 이들에게 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알아도 이미 타락한 아담의 후손이기에, 능력이 없는 죽은 자임을 증명해 줄 뿐이다.


행할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윤리를 말한다고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행함의 열매가 없는 것은, 이들이 참된 기독교인들이 아님을 증명해주는 것이며, 또한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사망의 몸에서 자유 할 수 없음을 증명해 줌으로서, 성도를 더욱 겸손케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여호와의 말씀은, 이들의 길과 행위가 정도를 넘어서고 있음에 대한 것이다.


현재의 기독교인들의 문제도 마찬가지로, 근원적으로 그들의 잘못된 신앙에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 윤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인간을 윤리적으로 만들기 이전에, 인간은 이미 윤리적으로 실패한 존재이라는 것을 고발함으로서,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새관점에서는 윤리에 기초하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말하지만, 인간에게는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행위를 통해서 구원받을 능력도 없다.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볼 수 있는 행실의 문제는 기독교인 들에게도 같을 수 밖에 없다.


차이가 있다면 율법 아래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에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지만,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순종의 의를 전가받음으로서 율법의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제시되어있다는 것이다.


또한 죄의 문제를 해결받은 신자에게는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해서 성화의 과정이 요구된다.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전에 대하여, 인간이 이를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를 인정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성전이라는 하는 말이 거짓말이라고 하신다.


이는 성전에 예배드리러 오는 이들에게 충격적인 말로서, 이보다 더 큰 충격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성전에 올라오는 이들이, 자신들이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는 성전에 있지않고 성전에 예배드리러 오는 이들에게 있다.


오늘의 많은 교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이용하여 거짓말을 하고있다.


가장 대표적인 거짓말은 교회를 성전이라고하면서 교회당을 신성한 곳으로 만들고서, 목회자만이 제사장인것과 같이 행하고, 성전 건축이라는 용어를 갖다붙이면서 예배당 건축을 독려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개인의 문제 이전에 목회자 전체의 문제인 것은, 이러한 용어 사용에 대해서 교단 차원에서는 전혀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교회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책임은 공동체적으로 있기에, 어느 누구도 자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예배당을 건축하면서도, 성전 건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거짓말을 한다.


문제는 이러한 거짓말이 보편화되어있고, 우매한 성도들에게는 먹혀들어간다는 것이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다.


예레미아 선지자를 통하여 선언되는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재앙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성전 건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목회자는 전부 거짓 목회자라고 보면 틀림이없다.


이러한 이들은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악한 이들이다.


기독교는 자신을 포장하고 자신의 의와 욕심을 이루기 위한 종교가 아니다.



(가나안- 영원 무궁토록 준 땅)


가나안 땅에서의 영원한 삶의 조건은 말씀의 순종과 이에 따른 행위이다.


가나안은 에덴에서와 마찬가지로 행위 언약 아래 있다.


아담이 불순종으로 에덴에서 쫓겨난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바벨론 유수는 불순종의 결과였다.


불순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난한 자, 즉 이방인, 고아, 과부, 무죄한 자들을 압제하는 일은 긍휼의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종노릇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에덴과 가나안은 은혜 이전에 하나님의 공의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는 곳이다.



(도둑의 소굴이 된 성전)


성전이 도둑의 소굴이 된 상황은 한국의 교회들과 너무나 유사하다.


하지만 이는 기독교 역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는 교회가 외적인 건물과 조직 위주로 형성되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현상들이다.


참된 교회는 성도들 가운데 있는 무형의 교회이지 외적인 성전이 아니다.


성전을 강조하는 것은 건물과 조직에 권위를 부여함으로서 자신들의 이익을 누리기 위한 것이다.


교회의 중심은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의 모임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외적인 조직으로서의 규모를 추구하게되면 이곳에서는 세상의 온갖 악들은 다 나타나게되어있다.


서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고, 자신의 사업을 위해서, 이익을 위해서, 욕심을 위해서, 세상 복을 위해서…...


교회는 외적인 건물이 아니라 신자들 가운데 임한 성령이 내주하시는 공동체가 되어야 그나마 이러한 일들을 줄여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결국  인간이 구원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존재임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오직 은혜만 있을 뿐이다.



(실로- 하나님의 생명 나무가 심겨졌으나 인간은 누릴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보여준다)


실로는 쫓겨난 아담에게 생명나무의 길이 차단될 수 밖에 없었음을 보여주는 곳이다.


실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도, 하나님께 순종 할 수 없는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었던 곳이다.


실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외적인 자부심으로, 내적인 빈곤을 경험하였던 곳이다.


실로에서의 패망은,  인간의 욕심을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부적과 같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인간의 욕심으로 대체한 결과가 어떠한 지를 보여주는 곳이다.


실로는 자신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다고, 혹은 쓰임을 받았다고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보여주는 곳이다.


실로는 자신이 쓰임 받고 언제나 버림받을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겸손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곳이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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