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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2.29 :: 에스더 8장 1-17절 말씀 묵상
에스더 2017. 12. 29. 14:19

에스더 8장 1-17절 말씀 묵상


1  그 날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니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 왕께 아뢰었으므로 모르드개가 왕 앞에 나오니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하만의 집을 에스더에게 준것은, 정복당한 자의 영역이 정복자의 영역으로 귀속됨을 의미한다.


사단의 몰락도 마찬가지로 사단이 관리하던 영역이 그리스도의 영역으로 넘어감을 의미한다.


세상은 왕권에 의한 영역의 선포로 인하여 왕에게 귀속되지만, 현대는 왕권에 대한 개념을 배제하려고한다.


그리스도께 패배한 사단은 더 이상 이 세상의 왕이 아니다.


이 세상은 오직 두 가지 왕국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의 대상이 되는 왕국이고, 또 하나는 구속의 영역이 아니지만 단지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는 영역이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왕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성령을 이 땅에 보내주셨다.


성도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왕권을 선포하여야한다.


2  왕이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하만의 집을 관리하게 하니라


하만이 제거된 이 땅에서의 왕권을 모르드개가 주관하게된다.


왕은 자신의 이름으로 실행자에게 권한을 위임한다.


이 땅은 성부 하나님의 통치권을 성자 예수님이 회복시키심으로 인하여 성령의 사역에 의하여 관리가 된다.


물론 모르드개를 성령에 비유하면 안된다.


하지만 에스더서는 왕과 에스더 모르드개, 그리고 하만의 역할을 통하여 이 땅에서 회복될 이스라엘을 예표하고있다.



3  에스더가 다시 왕 앞에서 말씀하며 왕의 발 아래 엎드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거하기를 울며 구하니

4  왕이 에스더를 향하여 금 규를 내미는지라 에스더가 일어나 왕 앞에 서서


(그리스도의 간구와 하나님의 왕권과 주권)


사단이 하늘에서 추락을 했어도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인간들은 최후의 심판에서 최종적으로 죽임을 당하게되어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최종적 죽임을 당하기로 예정된 자들을 위한 대속적 죽으심이다.


예수의 죽으심과 음부에서의 고통은 죽은 성도를 위한 하나님께 대한 간청이었으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왕의 금규와 같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구원해주시기로 확정하셨다는 표시이다.



5  이르되 왕이 만일 즐거워하시며 내가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고 또 왕이 이 일을 좋게 여기시며 나를 좋게 보실진대 조서를 내리사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왕의 각 지방에 있는 유다인을 진멸하려고 꾀하고 쓴 조서를 철회하소서
6  내가 어찌 내 민족이 화 당함을 차마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차마 보리이까 하니
7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하만이 유다인을 살해하려 하므로 나무에 매달렸고 내가 그 집을 에스더에게 주었으니
8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지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음이니라 하니라


(왕의 조서가 어떻게 변경이 될 수 있는가?)


왕의 조서는 변경될 수 없지만, 대신에 유다인을 치기로 한 자를 멸할 수 있도록 또 다른 왕의 조서를 내렸다.


이는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 최종적으로 죽는 것이 취소되지 않는 것과 같다.


아담 안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철회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행위 언약으로서의 율법의 저주를 피해갈 수 있는 대안을 준비해주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이루신 보혈은, 율법의 저주를 피할 수 있는 문설주의 피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하나님의 행위 언약이 철회된 것이 아니다.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는 물론 톰 라이트의 새관점은 행위 언약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에, 마치 왕의 조서가 철회된 것과 같은 양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율법의 저주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에, 결국에는 만인 구원론으로 귀결될 수 밖에 앖다.


칼 바르트나 톰 라이트 본인은 부정하지만, 이들의 신학은, 행위 언약을 인정하지 않기에, 결국 만인구원론적 성향을 보일 수밖에 없다.


언약은 하나님의 생명을 담보로 맺어진 것이기에 절대로 철회될 수 없는 것이다.


왕의 양식은 철회되지 않았고 모든 이들에게 유효했다.


그리스도는 자신에게 맡겨진 이들을 위하여 마귀를 멸하지만, 마귀는 그리스도 바깥에 있는 자들은 결국 완전히 죽일 것이다.


다만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받을 이들을 피해갈 뿐이다.



9  그 때 시완월 곧 삼월 이십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고 모르드개가 시키는 대로 조서를 써서 인도로부터 구스까지의 백이십칠 지방 유다인과 대신과 지방관과 관원에게 전할새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와 유다인의 문자와 언어로 쓰되
10  아하수에로 왕의 명의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치고 그 조서를 역졸들에게 부쳐 전하게 하니 그들은 왕궁에서 길러서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는 자들이라


왕의 조서는 전달하는 자가 있어야지만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대위임령(마28:19-20)은 복음을 전파하여 선택받은 자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제자들에게 명령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복음이 전파되어야만 신자들에게 효과가 있다.


11  조서에는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그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지방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그들을 치려하는 자들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12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에서 아달월 곧 십이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하게 하였고
13  이 조서 초본을 각 지방에 전하고 각 민족에게 반포하고 유다인들에게 준비하였다가 그 날에 대적에게 원수를 갚게 한지라
14  왕의 어명이 매우 급하매 역졸이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고 빨리 나가고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라

15  모르드개가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 왕 앞에서 나오니 수산 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16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
17  왕의 어명이 이르는 각 지방, 각 읍에서 유다인들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을 명절로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


(이방 나라에서 영화롭게된 유다인)


어둠의 세상 주관자가 지배하였던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승리를 통하여 성도들이 높임을 받지만, 여전히 이 땅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임한 것은 아니다.


페르시아 제국에 있어야만 했던 유다인들과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성도는 불신자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야한다.


칼 바르트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기초로한 선교적 교회(미셔널 처치)와 톰 라이트의 새관점에서는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완성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 운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페르시아의 유다인이 페르시아를 유다백성의 국가로 만들지 못하는 것과 같이, 어둠의 세력들이 가득한 이 땅은 결코 하나님의 구속적 나라가 될 수는 없다.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의 점진적 변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완전한 변화를 거쳐야만 가능하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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