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2017. 12. 29. 14:16

에스더 6장 1-13절 말씀 묵상


1  그 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령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2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을 지키던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눈을 가리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눈을 밝히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눈을 가리시면 아무리 간단하고 쉬운 것도 생각할 수 없고 할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사람의 마음에 주권적으로 개입하신다.


왕의 행동은 자신의 자아가 신적 섭리에 종속되어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창세 전에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일을 섭리를 통하여 주관하신다.



3  왕이 이르되 이 일에 대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하니 측근 신하들이 대답하되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4  왕이 이르되 누가 뜰에 있느냐 하매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뜰에 이른지라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 우연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우연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섭리를 대체하는 개념이다.


이와같은 우연이라는 상황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하심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물에 빠진 요나를 위하여 물고기를 준비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동물 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도 주관하신다.


세상에는 우연이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기를 거부할 뿐이다.



5  측근 신하들이 아뢰되 하만이 뜰에 섰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들어오게 하라 하니
6  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착각)


하만은 분명히 착각을 하고있지만, 착각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희망이다.


세상 사람들의 희망은 허황된 것이지만, 이러한 허황된 희망이 없이는 아무도 살아갈 수가 없다.


어찌보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나 아무 희망을 못느끼는 사람이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말씀 안에서의 소망이 제거된다면, 우울증에 걸리거나 아무런 의욕이 없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착각이 일반 은총의 한 부분일 것이다.


일반 은총은 구원이라는 특별 은총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오직 허무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7  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하시려면
8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가
9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하니라


(스스로 높아지고자하는 자)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스스로 높아지고자하는 사람과 높임을 받는 사람이다.


스스로 높아지려는 사람은 높임의 근거가 자신의 욕심이기에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가 없다.


높임을 받는 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으로서, 이러한 사람의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존중을 받아야한다.


권력의 탈취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권세가 아니라, 단지 도적질이며,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악일 뿐이다.


세상 권력에는 이 두 가지 유형이 있지만, 목회자에게도 이러한 두 가지 유형이 적용된다.


인간적인 세습이나, 정복자마냥 자기 파워로 교회를 장악하는 사람이나, 사람을 속이면서 자신을 우상화시켜 목사교를 만드는 사람이나, 복음을 윤리나 도덕으로 변질시켜서 복음의 생명력을 상실케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교인들을 희생시키기에, 교회에는 커다란 재앙이다.


스스로 높아지려는 하만같은 사람이 권력을 잡게되면, 재앙이 올 수 밖에 없다.  


10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11  하만이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니라


(역전당한 하만)


하만의 추락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메단 사단의 추락을 연상시킨다.


사단은 그리스도를 죽이고자 가룟인 유다의 마음에 들어가 예수를 팔게하고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그리스도를 높인 것이며, 모르드개를 높인 하만과 같이, 그리스도를 높이는 일을 스스로가 행한 것이다.

사단은 귀신같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주권적 지혜에는 따라올 수 없다.


성도는 감정적이고 육적인 방식으로 행동하기 보다는,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의 지혜의 도움을 받아 살아야만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다.



12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서

13  자기가 당한 모든 일을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말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 세레스가 이르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아무리 악인이라하더라도, 상식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에 의한 것이며, 이러한 원리는 자연법에 속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일반 은총과 자연법은 어떠한 암흑 세계에서도 하나님의 도를 드러낸다.


사람이 마지막 심판을 받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마음에 있기에, 한 가닥의 희망을 갖고 이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만 한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예정과 작정하심과 섭리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만, 인간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계획을 하셨을지 알 수가 없기에, 미리 단정을 하거나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나가는 말-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세상의 가장 하찮은 미세한 먼지가지도, 심지어는 불규칙한 무수한 움직임까지도 통제하시는 분이시다.


완전하게 세상을 움직이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연은 오직 사람의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다.


우연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편의상 갖다 붙이는 말이다.


섭리는 하나님의 예정이나 영원한 작정과는 구별된다.


섭리는 작정하신 일을 피조물의 시간과 공간에서 실행하시는 외적 행위다.


어떤 이들은 이 세상의 돌아가는 현상을 마치, 시계공이 만든 시계가 만들어진 후에도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과 같이, 더 이상 조물주의 간섭이 없이 움직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창조물 가운데 계속적으로 관여하심으로인해서, 이 땅에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실행되고있다.


하나님의 섭리는 성경 시대에 한정되지 않고 지금 이 시대에도 지속되며, 성도들의 삶 가운데 깊이 관여하신다.


하나님의 섭리는 로마 카톨릭이 주장하는 바와같이, 특별한 성도에게 이차적으로 위임된 것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창조 세계를 보존하고 다스리시며, 궁극적으로 창세 전에 계획하신 하나님의 구속 언약을 실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자신의 목적을 섭리를 통하여 성취하신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와 감독하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속적인 통치자이시고 보존자로서, 섭리를 통하여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와 관계없는 우연으로 일어나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상황에 대하여도 불평하지 말아야하며, 하나님의 크신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한다.


섭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만물 속에서 모든 것을 행하시는, 능력을 나타내신다.


모든 상황은 하나님이 미리 계획하신 것이며,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좌우되기에, 우리의 존재와 행동은 하나님께 의존될 수 밖에 없다.


이는 성도가 기도하여야하는 이유이다.


당장은 현재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언젠가는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죄성으로 말미암아 너무 많은 것을 알게되면 이를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기에, 오히려 부족함에 감사하여야한다.


섭리는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가장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한탄과 후회는 실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정을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이다.


섭리는 인간의 책임에 대하여 면죄부를 주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작정과 인간의 선택은 서로 모순되지는 않는다.


알미니안의 주장과 같이 인간의 의지와 동기가 하나님의 섭리와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성도들의 자원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섭리의 은혜를 근거로 한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시기에 사람의 행할 의지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어가신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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