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2017. 12. 29. 14:13

에스더 3장 7-15절 말씀 묵상


7  아하수에로 왕 제십이년 첫째 달 곧 니산월에 무리가 하만 앞에서 날과 달에 대하여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열두째 달 곧 아달월을 얻은지라
8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뢰되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지방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9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그들을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맡겨 왕의 금고에 드리리이다 하니
10  왕이 반지를 손에서 빼어 유다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에게 주며
11  이르되 그 은을 네게 주고 그 백성도 그리하노니 너의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 하더라

(하만과 왕의 실수)


하만은 오랫동안 기다렸던 유다인을 살육할 계획을 제비 뽑은 후에 바로 실행에 옮긴다.


왕의 조서를 각 지방에 배포하면 바로 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하만은 거의 12개월이나 앞서서 왕의 승인을 얻어서 조서를 배포한다.


이는 하만이 자신의 계획을 철저히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유다인이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이 짧았다.


왕도 마찬가지로 하만의 말만을 듣고서 즉석에서 결정을 내리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아하수에로 왕은 모사가 없이 독단적인 결정을 내림으로서 왕으로서 지혜롭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악의 궤계는 일반적으로 이와같이 단편적이면서 많은 결점들을 보여준다.


악은 성도들에 대하여 끊임없이 도전을 해 오지만, 이들의 계략은 대부분 보편성과 객관성이 결여되어있기에 문제를 드러낼 수 밖에 없다.


이 세상은 악이 지배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법과 일반 은총으로 인하여, 잘못된 상황에 대하여 결코 쉽게 용납하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것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간섭하시는 은혜를 베푸시기도하지만, 자연법과 일반 은총으로 보편적인 간섭을 하시기도하신다.


악의 계략은 종종 이러한 자연법과 일반 은총의 원리를 무시함으로 인해서 문제를 드러날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타락한 이후로 줄곧 악을 제어하시고 계신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에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도록하신것도, 좋은 환경에서는  인간의 왕성한 악이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아 홍수도 인간의 악이 극에 달하였거나 통제 불능 상태에 이르렀기에 허락하신 징벌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고 명하신 것도 악을 제어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악을 제어하시지만, 악의 번성력은 조그마한 환경만 조성되어도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이러한 악의 속성에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방해하기 의한 계략이 숨어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계획하신 구속 사역을 차질 없이 진행하신다.


이 땅의 역사는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악이 끊임없이 세력을 확장하는 것 같아도 결국 하나님이 승리하시는 것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성도는 단편적인 악의 승리에 합류하기보다는 결국 승리하실 하나님쪽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아야만 한다.




12  첫째 달 십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어 하만의 명령을 따라 왕의 대신과 각 지방의 관리와 각 민족의 관원에게 아하수에로 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쓰되 곧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치니라
13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맡겨 왕의 각 지방에 보내니 열두째 달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14  이 명령을 각 지방에 전하기 위하여 조서의 초본을 모든 민족에게 선포하여 그 날을 위하여 준비하게 하라 하였더라
15  역졸이 왕의 명령을 받들어 급히 나가매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 왕은 하만과 함께 앉아 마시되 수산 성은 어지럽더라


열두째 달에 시행할 일을 첫째 달에 신속하게 실행에 옮긴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통제하시지만, 그래도 이 세상은 악이 끊임없이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고있다.


악은 끊임없는 통제 가운데에서도 끊임없이 시행되는 것이 이 세상이다.


그러나 악은 세상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진행될 수가 없다.


사람들은 세상의 악이 허용되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원망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흔히들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어찌 이런 일을 허락하실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볼 때 하만의 계략도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유다인의 행동 방식도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이 세상의 불행을 보는 시각은 하나님과 많은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현대인의 시각에서는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평화라는 이름으로는 하나님도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사람의 눈으로 이해할 수 없는 악의 승리를 종종 경험하게되며, 억울한 희생자들에 대하여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모든 것이 완벽하고 좋은데 왜 인간에게는 힘든일과 불행, 그리고 역경들이 허용될 수 밖에 없는가?


이는 분명 하나님의 관점과 사람의 관점에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성도가 성경을 보고 깊은 묵상을 하여야만 하는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하나님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은 모두 다 아담의 후손이기에 생각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결코 이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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