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1장 1-22절 말씀 묵상
1 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있었던 일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라
2 당시에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
(수산 궁에서의 통치)
아하수에로 왕의 통치를 통해서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이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생각해본다.
수산 궁은 바사와 메데 온 지역을 다스리기 위한 통치자가 있는 곳이었다.
수산 궁은 비록 페르시아의 겨울 별궁이 있었던 곳으로 비록 우상 숭배가 왕성했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가 가득한 이곳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고 계신다.
우리는 종종 우상 숭배가 가득한 곳에 발을 들여놓기도 싫을 때가 있고, 일본과 같이 우상 숭배가 가득한 나라는 가까이 가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곳에서도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진행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투영시키시고 계신다.
우리가 사는 현재의 세상을 통치하는 천상의 나라가 수산 궁을 통하여 투영되고있다.
이 세상은 아직 공중 권세잡은 자에게 휘둘리고 있지만, 천상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페르시아의 유대인들과 같은, 이 땅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실행되어나아가고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의 환경이 아마 바사 왕국에서 살아가는 유다 사람들과 같은 입장일 것이다.
3 왕위에 있은 지 제삼년에 그의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지방의 귀족과 지방관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4 왕이 여러 날 곧 백팔십 일 동안에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5 이 날이 지나매 왕이 또 도성 수산에 있는 귀천간의 백성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새
6 백색, 녹색, 청색 휘장을 자색 가는 베 줄로 대리석 기둥 은고리에 매고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을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 땅에 진설하고
7 금 잔으로 마시게 하니 잔의 모양이 각기 다르고 왕이 풍부하였으므로 어주가 한이 없으며
8 마시는 것도 법도가 있어 사람으로 억지로 하지 않게 하니 이는 왕이 모든 궁내 관리에게 명령하여 각 사람이 마음대로 하게 함이더라
3~8절은 아하수에로 왕의 광장함, 특히 전례없는 권위와 위엄과 인격을 보여주고있다.
이는 아하수에로 왕의 부정적인 면 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비록 세상적인 관점이기는 하지만, 창조주로서, 하늘의 천사들과 땅의 모든 생물을 지으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권위의 보좌로서의모형을 보여주고 있다.
9 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여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10 제칠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령하여
11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관을 정제하고 왕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의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12 그러나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 붙는 듯하더라
(와스디의 거절과 왕의 진노)
마치 아담의 타락을 연상케한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에게 에덴을 맡기신 후에 하늘의 천사들에게 아담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아담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불을 붙이면서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셨다.
13 왕이 사례를 아는 현자들에게 묻되 (왕이 규례와 법률을 아는 자에게 묻는 전례가 있는데
14 그 때에 왕에게 가까이 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 자리에 앉은 자는 바사와 메대의 일곱 지방관 곧 가르스나와 세달과 아드마다와 다시스와 메레스와 마르스나와 므무간이라)
15 왕후 와스디가 내시가 전하는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니 규례대로 하면 어떻게 처치할까
(왕의 대책)
하나님께서 첫번째 날에 창조하신 하늘과 땅, 즉 상위 구조로서의 하늘과 하위 구조로서의 땅은 긴밀한 상호 관계에 있었다.
상위 구조upper-register로서의 하늘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천사들이 있는 곳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제하는 회의가 열리는 곳이기도하다.
창세 전 택한 자에 대한 구속 언약은 삼위 하나님 간의 협약에 의한 것이며, 아담의 타락 후의 구속 사역은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함께 이 땅에서 진행되고있는 것이다.
이는 왕후 와스디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열린 회의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열린 회의를 연상케해준다.
성경에서는 아담의 타락 후에 천상에서 회의가 열렸다는 언급이 없고, 이를 연상한다면 마치 아담이 타락 한 후에 대책 회의가 열린 것처럼 인식되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지만, 시간의 개념을 넘어설 때는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16 므무간이 왕과 지방관 앞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왕후 와스디가 왕에게만 잘못했을 뿐 아니라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의 관리들과 뭇 백성에게도 잘못하였나이다
17 아하수에로 왕이 명령하여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도 오지 아니하였다 하는 왕후의 행위의 소문이 모든 여인들에게 전파되면 그들도 그들의 남편을 멸시할 것인즉
18 오늘이라도 바사와 메대의 귀부인들이 왕후의 행위를 듣고 왕의 모든 지방관들에게 그렇게 말하리니 멸시와 분노가 많이 일어나리이다
19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실진대 와스디가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에 기록하여 변개함이 없게 하고 그 왕후의 자리를 그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20 왕의 조서가 이 광대한 전국에 반포되면 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여인들이 그들의 남편을 존경하리이다 하니라
(므무간의 대답)
므무간의 조언은 현명하다고 옳은 것이다.
왕후 와스디의 문제는 그냥 지나갈 경우 더 크고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되리라는 생각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라고 할 수 있다.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면, 더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말이 이를 잘 표현해준다.
아담의 불순종도 어찌보면 조그마한 것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결과는 인류 전체의 불순종과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단이 주로 틈을 보는 이유는, 처음에는 조그마한 틈이어서 가볍게 여기고 무방비할 수 있기에 쉽게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그마한 틈은 나중에는 넓다란 통로가 될 수 있다.
아하수에로 왕과 왕후 와스디의 관계는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와 유사한 점을 찾아 볼 수 있다.
므무간의 조언은 아담의 범죄가 왜 심각한 문제인지를 간접적으로 말해주고있다.
이는 하나님의 구속사가, 인간의 보편적인 역사 가운데서도 투영됨으로서, 사람들이 일반적인 상식으로도 깨닫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부림절을 지키지만 그들은 부림절 가운데 내포되어있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깨닫지 못하는 우매함을 범하고있다.
21 왕과 지방관들이 그 말을 옳게 여긴지라 왕이 므무간의 말대로 행하여
22 각 지방 각 백성의 문자와 언어로 모든 지방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남편이 자기의 집을 주관하게 하고 자기 민족의 언어로 말하게 하라 하였더라
(왕의 조서)
왕이 므무간의 말대로 시행한 것은, 문제를 피하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은, 문제를 문제로 드러내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왕이신 하나님의 조서라고 할 수 있다.
조서의 내용은 일반 상식을 기초로하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성경에서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로 어린 아이도 알 수 있는 어렵지 않은 내용이지만,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거부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선포되지 못하는 이유도, 하나님의 말씀이 어렵거나 해석이 난해해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듣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왕의 조서는 피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다고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율법이 주어지지 않은 이방인에게는 양심이라는 자연법이 주어졌기에, 이 땅에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피할 방법이 없다.
피할 수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선포하면서 받아들이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일 것이다.
왕의 조서는 선포되어야만 하듯이,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선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나가는 말)
앞에서의 비유는 인물을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되며, 다만 제한적인 의미에서의 관련성만 생각해보아야한다.
만약에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과 아담 사단등을 아하수에로, 에스더 모르드게 와스디, 하만에게까지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에스더를 중보자로서의 예수님과 동일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 세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관계성에서, 제한된 범위에서만, 교훈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페르시아에서의 생활은, 유대인들에게는 아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어둠 깊숙한 곳에서의 생활일 것이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던 일부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제2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였지만, 바벨론 제국의 멸망과 페르시아 제국의 도래는 유대인들에게는 더욱 희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 가운데 있는 시기였다.
이미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유다 사람들과는 달리 페르시아 지역에 남아있던 유대인들은 생존을 위해서 자신들의 신분까지도 숨겨야만 했다.
에스더에서의 기록은 이러한 흑암의 한 가운데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느 한 순간도 그냥 흘려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가장 깊숙히 개입하셔서 간섭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있다.
광활한 세상에서 하나님과는 관계없어보이는 곳에서도 하나님은 간섭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계심을 생각하여야만 한다.
조선에 복음이 들어오기 이전에도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가장 깊숙하고 어두운 곳에서도 함께 하셨으며, 아프리카 오지나 남미등 가장 먼곳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셨다.
인간은 자신의 지식의 한계 내에서 생각하려고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와 계획의 극히 일부도 알지 못할 뿐이다.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도 이미 창세 전에 택하셨고, 구원을 계획하시면서, 섭리 가운데 총체적으로 이 땅의 역사와 상황들을 주관하시면서, 현재의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것이다.
성도라 할지라도 종종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고, 얼굴을 가리시고,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때 깊은 좌절에 빠지기도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인식의 한계로 인한 좌절일 뿐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서의 생각까지도 다 아시고 계시지만, 인격적으로 존중해주면서 참고 기다리실 뿐이다.
믿음은 이러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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