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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애가 2018. 3. 16. 22:12

예레미야애가 3장 1-18절 말씀 묵상



1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

선지자는 자신을 예루살렘과 동일시하고 있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을 향한 여호와의 분노와 매를 자신에게 향하게 하고있다.

선지자이신 예수님은 스스로 예루살렘이 되심으로서 예루살렘의 실체가 되셨으며, 더 나아가 범죄한 아담의 자리에 앉으심으로 처음 아담의 실체가 되셨다.


2  나를 이끌어 어둠 안에서 걸어가게 하시고 빛 안에서 걸어가지 못하게 하셨으며

하나님을 떠난 자는 빛 가운데 걸어갈 수 없다.

범죄한 예루살렘과 동일시된 선지자는 어둠 가운데로 이끌려 가야만 했다.

선지자이신 예수님은 광야로 이끌려가셔서 사단의 시험을 감당하셔야만 하셨다.


3  종일토록 손을 들어 자주자주 나를 치시는도다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선 고통이 멈추질 않는다.

고통은 일회성이 아니다.

존재 자체가 고통이 되었다.

하나님과의 분리 자체가 고통이다.

예수님은 육체적 고통 못지 않게  십자가에서 하나님과의 분리의 고통을 감당하셔야만 하셨다.


4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들을 꺾으셨고

선지가가 실제로 뼈가 꺽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고통이 크다는 것을 표현하고있다.

채찍에 매를 맞으시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면서, 하나님으로서의 권위가 꺽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5  고통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안식에 도달할 수 없었던 인간은 결과적으로 고통과 수고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인간은 사는 날 동안에는 근본적으로 고통과 수고가 에워쌈으로 안식을 누릴 수가 없다.

인간은 오직 그리스도가 주신 안식을 통해서만 둘러싸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6  나를 어둠 속에 살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로 인하여 어둠 속에 갇힌 선지자는 실상 지옥에 있는 상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성전 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아담의 죄를 담당하심으로 우리 대신 음부에 내려가셨기에 신자는 영원한 죽음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7  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

타락하여 궁지에 몰린 인간에게는 선택의 폭이 많지가 않을 뿐 더러 돌파구가 없을 수도 있고 피할 길이 없을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길을 막으시면 돌파구가 있을 수가 없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직면한 유일한 죽음의 길을 직접 걸으심으로서 신자에게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다.


8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하나님께서 길을 막으시면 피할 길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하늘을  우러러 기도할 수도 없다.

예수님께서는 막힌 담을 허시고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9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들을 막으사 내 길들을 굽게 하셨도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더 이상 생명의 길이 허락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이 가야만 하는 길로 가게하심으로서, 오직 인간에게 지옥에 도달되는 길만을 열어놓으셨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읺고는 스스로 곧은 길을 갈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다.


10  그는 내게 대하여 엎드려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곳에 있는 사자 같으사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의적으로 가고자하는 길에서 기다리셨다가 더 이상 가지못하도록 인간을 공격하신다.

창조 때에 다스리라고 허락하신 모든 창조 세계를 더 이상 허락하지 않으시고, 오직 멸망의 길로만 가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11  나의 길들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를 적막하게 하셨도다

사람은 스스로 가는 길이 실상은 자신의 의지대로 가고있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한다.

타락한 인간은 잘못된 길로 갈 수 밖에 없다.

신자가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듯이, 불신자는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은 파멸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


12  활을 당겨 나를 화살의 과녁으로 삼으심이여

인간은 허락되지 않은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의 표적이 되어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다.

인간이 스스로 강성하여지길 원해서 쌓는, 하나님을 배제하는, 도시문명들은 재앙의 구렁텅이로 빠질 수 밖에 없다.


13  화살통의 화살들로 내 허리를 맞추셨도다

인간은 스스로 강성해지길 원했지만 오히려 화살을 허리에 맞은 것과 같이 무력하여 질 수 밖에 없다.

예수님도 옆구리가 창에 찔리심으로 모든 잘못된 인간적인 힘의 근원들로 인하여 죽으심에 이를실 수 밖에 없으셨다.



14  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

조롱과 비웃음은 타락한 인간의 죄성에서나온 것이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서로를 기뻐하며 서로를 세워주지만, 타락한 인간은 서로를 조롱하며 서로를 허물 수 밖에 없다

예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의 조롱을 받으시면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셨다.



15  나를 쓴 것들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죽음에 이르는 자에게 허락된 것은 쓴 것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먹는 즐거움의 상실과 더불어 고통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쓸개 탄 신포도주의 맛을 보아야만 하셨다.



16  조약돌로 내 이들을 꺾으시고 재로 나를 덮으셨도다

치아가 상실된 인간은 죽음에 다다른다.

먹는 기능이 상실되고 죽음의 재를 뒤집어씀으로서 음부의 고통을 맛보는 것이다.


17  주께서 내 심령이 평강에서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내어버렸음이여

모든 절망을 짊어진 상태에서 평강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복음인 것은 인간이 절망 가운데 있는 존재임을 말하는 것이다.


18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하나님이 버리심으로 소망이 끊어진 인간에게 유일한 희망은 오직 은혜 가운데 임하는 그리스도의 복음뿐이다.

신자를 구원에 이르게한 복음은 소망이 끊어져 어둠 가운데 임한 복음이다.


(버림받은 중보자)

중보자되신 그리스도는 공생애 사역을 통하여 직접 중보 사역을 감당하셨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잃어버린 공동체를 회복하시는 것이며, 인간에게 남아있는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버리심으로  고통을 감당하셔야만 했다.

선지자의 고통이 자신의 육체적 고통보다도 중보자로서의 고통이었듯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고통은, 육체적 고통보다도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에 대한 고통이었기에 감당하시기 힘든 것이었다.


(공동체의 회복)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회복에 있다. 

중보자는 하나님의 공동체성의 표현한다.

순종은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순종이었다.

예루살렘은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야만 했는데,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공동체에 참여 할 수가 없었다.


(공동체가 파괴된 현실)

우리의 현실은 불순종과 이익 공동체, 그리고 개인주의와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환경적인 고통 이전에 존재론적인 고통 가운데 있다.

삶의 환경 가운데 나타나는 고통은 삼위 하나님의 공동체와의 분리로 인한 존재론적 고통의 현상일 뿐이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존재론적인 문제가 겉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파괴된 공동체에서는 다른 이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파괴된 공동체에서는 어느 누구도 선지자와 같이 남의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는다.

다른 이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 이들에게서 진정한 공동체를 기대할 수가 없다.

인간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이 일그러진 만큼이나 공동체 또한 일그러져있음을 본다.


(공동체 회복을 위한 성도의 자세)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아픔에 동참하여야한다.

공동체 안에서의 타인의 부정적 상황에 대한 비난을 멈춰야한다.

그보다 더 나아가 타인의 부정적 모습에 마음 아파해야한다.

또한 타인의 아픔에 대하여 기도하여야한다.

타인에 대한 지속적인 비난은 지옥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비난은 타락과 더불어 시작 되었다.

공동체의 일원이 행복을 용납하지 못하거나 타인을 조롱해서는 안된다.

공동체는 인간의 힘으로 될 수 없기에 매사에 기도로 참여해야한다.

일그러진 형상마져 없다면 완전한 지옥일 것이다.

이 땅에서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 직장 상사와의 관계, 정치인과의 관계, 더 나아가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인간 관계가 그나마 남아있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그림자이기에, 성도는 교회공동체 뿐만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를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모형으로 삼고서 일상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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