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21. 10. 17. 18:40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 묵상(2)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육신의 소욕을 쫓아가는 인생

요한이 전하는 파격적인 선언,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인간이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사실이지만, 육신적 인간에게는 별로 현실감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육신을 가진 인간에게는 육신적 소욕이 현실적이다.

돈과 명예와 권력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다.

돈 많은 부자는 모든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다.

육신적 인간에게 영적인 것은 막연하고 추상적일 뿐이다.

심지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조차도 육신적 인간에게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육신의 소욕은 쾌감을 주지만 영적인 충족이 주는 기쁨과 평안은 쾌감과는 다른 것이다.

감각적인 자극과 성취감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영적인 충족은 별로 흥미가 없는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질과 부귀 영화와 풍요는 1차적 관심사였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이어받은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부귀 영화를 위한 이차적인 존재였을 뿐이었다.

솔로몬은 성별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자신의 육신의 소욕을 충족시키고자 이방 여인들을 정략적으로 데리고 들어왔으며, 그들을 위해서 그들의 신전을 지어주기까지 했다. 

솔로몬이 자신이 데리고 온 여인들을 위해서 이방신전을 지어줄 수 있었던 것은, 솔로몬이 영적인 것보다는 육적인 것을 우선시하였고, 자신이 하나님보다는 육신의 소욕을 쫓았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솔로몬이 지은 거대하고 화려한 성전은 자연스럽게 솔로몬이 했던 것과 같이 육신의 소욕을 위한 우상 숭배의 장소가 되어갔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의 길을 걸어가게되었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쫓아갔던 이스라엘에게 바벨론 유수는 당연한 것이었다.

바벨론 유수와 예루살렘의 멸망은 육신을 쫓아가는 인간들에게 주어질 최후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어둠 가운데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자기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 방식은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담 안에서 타락한 모든 인간이 어떠한 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욕신의 소욕을 쫓아 가게 되어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의자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것인지에 대하여 알 수가 없다.

육신의 소욕을 쫓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로 말미암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육신을 쫓아가는 이들에게 영적인 것은 무의미할 뿐이다.

 

죽음의 권세를 넘어선 축복

인간은 육신의 소욕을 쫓아가지만 인간이 아무리 성공을 하였다하더라도 이는 한시적이다.

인간이 한시적 삶을 산다는 자체가 죽음의 형벌이다.

인간에게 영생이 주어진다는 것은 죽음의 권세를 넘어서는 생명으로 옮겨진 것이다.

죽음과 생명은 비교될 수 없는 전혀 다른 것이다.

아무리 건강하고 잘 생기고 물질이 많고 명예가 있다고하더라도, 죽음을 앞두고 초라해지지 않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물질과 명예는 아무 소용이 없다.

죽음을 앞둔 이에게 가장 큰 축복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을 갖는 것이다.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이들은 죽음을 앞둔 이들이다.

한시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가장 큰 축복은 한시적 삶의 시간 가운데 영원한 것을 소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이 생의 삶이 없다면 영원한 삶은 어질 수가 없다.

이 생의 삶은 저주이면서 동시에 축복이다.

한시적 삶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지고 영생이 보장된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인간은 죽음보다도 삶이 좋다.

이는 현재의 세상이 그래도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고자하는 영생의 삶은 이 세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완전한 환경에서의 삶인 것이다.

다가올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수고하고 땀을 흘리지 않아도 먹는 것으로 인해서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미움과 다툼이 없고, 가시와 엉겅퀴가 나지 않는 곳이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 보장된 곳으로서 그리스도인은 그 곳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축복을 누릴 것이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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