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 묵상(6-독생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를 보고 살 자가 없느니라"(출33:20)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요한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았음을 증거하고있다.
이미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이신 독생자를 전하고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본 자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말씀을 선포하고있는 것이다.
요한이 전하는 독생자의 영광은 이미 아담 안에서 죽었으며, 최종적인 죽음을 앞둔 어둠의 자식들에게 전하는 참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다.
어둠 가운데 매일 날마다 죽어가는 인생에게 전해지는 요한의 선포는 인생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말씀이며, 표면적이고 임시적인 생명이 아닌 근원적이고 영원한 생명을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신성을 가지신 독생자monogenes)
독생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인 아담과는 구분이 된다.
처음 아담은 비록 하나님의 아들로 지음을 받았지만 독생자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질을 가지신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독생자이시며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독생자로서의 모노게네스monogenes는 유일한을 뜻하는 mono와 형질을 뜻하는 genes의 합성어이다.
즉 형질로서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형질을 소유하신 유일하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형질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아담은 아들로서 지음을 받았지만 그 형질은 피조물인 흙에서 취함을 받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아들되심은, 처음 아담의 하나님의 아들됨의 유형적 본체이신 것이다.
독생자이시며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믿는 성도와 연합을 이루는 분이시지만, 그렇다고 성도가 그리스도와 한몸을 이루어 신성을 소유하게되는 것은 아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종종 소금이 바닷물에 녹아 바다의 일부가 되는 것과 같이 신의 일부가 된다는 주장을 하지만, 이는 넘지 말아야할 피조물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다.
(아들의 원형으로서의 둘째 아담)
아담은 오실자의 모형(롬5:14), 즉 처음 아담은 둘째 아담으로 오신 독생자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그리스도는 아들로 지음받은 처음 아담의 원형이시다.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것은 아들됨으로 지음을 받은 것으로서, 그 원형되신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 비로서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되는 것이다.
인간은 아들로서 지음을 받았지만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아들의 지위를 상실했다.
비록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아들의 지위가 상실되었어도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다시 아들로 부르신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들로서 부르신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바로에게 전하라고 하시면서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출4:22)”라고 선언하신다.
애굽에서의 이스라엘은 아들로서 부름을 받을만한 자격과 요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아들로서 부르신 것이다.
독생자 그리스도의 오심은 아들을 부르시기 위함이며, 이는 아들은 지역적으로 제한된 유대인이 아니라 지역적 제한을 넘어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선택받은 이들이다.
(은혜와 진리가 담겨있는 독생자의 영광)
요한이 본 독생자의 영광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충만한 은혜와 진리에는 구원의 진리가 담겨있다.
아들을 부르시기 위함이었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답게 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형벌을 피할 방법이 없는 존재였다.
독생자는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생긴 문제를 해결 하실 수 있으신 유일하신 분이시다.
아담의 범죄는 아들로서의 범죄였기에 아들의 본체이신 독생자 그리스도께서 처음 아담의 실패한 역할을 대신하시고 형벌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독생자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아들의 원형이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이시기에 이러한 사역이 가능한 일이었다.
아들로 부름을 받았던 애굽에서의 이스라엘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미 범죄한 이들에게 순종은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아시고 계셨지만 인간은 철저하게 경험을 해보지 않고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도 인본주의 신학에는 행위를 통해 구원받으려는 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있다.
이는 독생자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본을 보여주시는 분, 혹은 따름의 대상으로 전락시켜버린다.
그리스도는 따름의 대상 이전에 믿음의 대상이시다.
신자가 독생자의 영광에 담겨있는 은혜와 진리를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믿음 뿐이다.
(하나님께서 낳으신 독생자의 영광)
요한이 전하는 독생자의 영광은 다윗의 시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이미 선언 하시고 약속하신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낳으신 독생자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이 땅에서도 성취된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편 2:7)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행 13:33)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히1: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히 5:5)
요한이 전하는 독생자의 영광은 은혜와 진리가 가득한 하나님께서 낳으신 독생자의 영광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낳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신자를 아들로 부르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현재적 삶의 영원성)
요한은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 현재진행형으로 전하고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를 아들로 부르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고, 이를 통하여 신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어둡고 험악한 이 땅은 죽음으로 귀결되지만 독생자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는 영원 가운데 현재적으로 계시는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로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신자에게 주어진 현재적 삶은 절망과 좌절과 외로움에 종속되는 삶이 아니라, 소망 가운데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대하여 승리하신 것과 같이 이미 승리한 삶인 것이다.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 묵상(5- 영광) (0) | 2024.12.29 |
---|---|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 묵상(4- 거하심) (0) | 2024.09.02 |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 묵상(3-육신) (0) | 2023.10.25 |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 묵상(2-육신) (1) | 2023.10.23 |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 묵상(1-말씀) (0) | 2023.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