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7. 12. 29. 15:56

에베소서 3장 1-13절 말씀 묵상

1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렸듯이, 바울도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 안에 갇힌 자가 된 것은, 타인을 위한 희생이라는 점에서, 나름대로 비슷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바울이 이방인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자신의 삶을 드리셨기 때문에 가능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삶의 본을 보여주신 것은 이 세상 어떠한 종교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의 신비는 하나님의 드려지심과 더불어 사람이 함께 드려지는 삶을 살아감으로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공동체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위해서 헌신되어지는 삶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헌신이 없이는 공동체의 확장이 없다는 것이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특징이다.

공동체의 구성원은 다른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인한 은혜를 경험함으로서만 확장되어진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은혜의 경륜을 따라서, 성도들도 다른 이들을 위한 은혜의 경륜에 참여함으로서, 하나님의 공동체적 형상을 회복시켜 나가는 것이다.

헌신은 경제 원리를 포기하는것을 전제로 한다.

신앙의 영역은 경제 원리가 적용이 되는 순간부터 더 이상 신앙의 영역이 될 수가 없다.

교회 공동체는 개인의 완성을 위한 공동체가 아니다.

삼위 하나님의 공동체는 사랑과 순종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다.

하나님의 공동체적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도,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희생이 요구되어진다.

하지만 아담의 타락과 더불어 나타난 첫 번째 상황은,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핑계를 댐으로서 상대방의 희생을 통해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 자기 중심적인 삶을 영위함으로서, 인간에 새겨진 삼위 하나님의 공동체성이 손상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희생이 없는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적 특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희생이 없는 교회 공동체는 확장 될 수가 없다.

희생이 없는 교회 공동체의 확장은 진정한 확장이 아니라 변질이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가 실현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모세 경륜은 공동체의 운영 원리와 공동체의 경제 원리가 어떻게 통합되었고, 어떻게 실패하였는지를 보여준다.

Mosaic Economy, 혹은 Mosaic Administration은 두 가지 다 모세 경륜으로 번역됨으로 인해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경제 원리와 통치 원리가 구분없이 하나로 통합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바울이 받은 계시는 자신의 유대 중심적 사고를 뒤집어 엎는 다메섹 도상에서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한다.

자신의 열심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근거한 허망한 것이었는가를 깨달은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진리에 참여하는 이들이 자신과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십자가의 비밀이 모든 성도들에게 제대로 알려지기기를 바랬을 것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계시로 알게 된 비밀은 감추어야 할 비밀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알아야 할 비밀이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이들에게 알려져야 하지만, 모든 이들이 알 수가 있는 비밀이 아니었다.

Secret이 아니라 Mystery다.

Secret은 공유되어서는 안되는 비밀이라면, Mistery는 풀어나아가야 할 비밀이다.

영지주의자들은 몇몇 사람들만 소유한 비밀을 통하여, 자신들을 일반인들과는 구별된 특별한 사람이라는, 우월 의식과 특권 의식에 사로잡히게 했지만, 바울이 계시를 통해서 알게된 비밀은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이들이 공유하고 알아가야만 했던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이 진리는 보편성이 결여되어있지만, 성도는 이를 개인적인 목적과 이익을 위해서 숨기는 일이 없어야 했다.

성경이 완성된 이 시대에 진리는 성경 안에 전부 담겨 있기에, 성경 외적인 정보를 통해서 성경을 수정하거나 첨가해서는 안된다.

판넨베르크나 그의 영향을 받은 이머징처치는 진리를 나무의 나이테와 같이 점진적으로 완성되는 것으로 본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미완성으로 보는 것이어서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사해 사본이나 쿰란 문서, 혹은 Q문서등을 통해서 성서에 추가하거나 해석에 수정을 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톰 라이트의 새관점은 이러한 문서들을 근거로하는 “역사적 예수 탐구”라는 활동을 통해 성경을 재해석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들 자료들을 통해서 성경을 재해석하기보다는, 성경을 통해서 이들 자료들을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4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비밀, 그리스도의 비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비밀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유대인만을 구원해주실 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유대중심적 사고 체계에서 이방인이 유대주의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생각 할 수 있어도, 여호와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하시겠다는 계획을 실현시키셨다는 것은 당시 상황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었고, 생각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바울이 이를 공개적으로 전하는 것은 유대 사회로부터의 핍박을 감수해야하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로마에서 신적 권위를 가진 황제에 대한 반역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바울이 깨달은 진리는 시대적 위협을 넘어서는것이었기에

바울은 담대하게 이러한 진리를 이방인의 교회인 에베소 성도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교회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면서 세상과 타협하는 방량으로 나아가면서, 복음의 진리의 믾은 부분을 제대로 선포하지 못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사도 바울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비밀은 택함받은 자만 알 수 있도록 제한되어있기에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제한적으로 성령으로 알려진바 되었다.

여기서 선지자는 구약의 선지자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이후에 성도들은 여러 모양으로 즉 사도로, 선지자로, 교사로, 능력행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렇다고 지금 시대에도 사도나 선지자가 있다고 해석해서는 안된다.

또한 모든 성도가 왕, 제사장, 선지자라고하는 것은 지금 시대에 왕이 있고 선지자가 있고 제사장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혼란이 생긴다.

이는 아담에게 부여되었던 직책이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완성시키심으로 인해서 그리스도와 연합괸 자가 누리는 영적인 의미에서의 직책을 말하는 것이다.


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이것은 바로 바울이 수 차례에 걸쳐서 말하는 비밀의 내용이다.

상속자, 지체, 약속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격이다.

에덴에서 아담이 시험의 검증을 통과하였다면 성취되었을 종말론적 축복과 영생이, 아담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서, 이와같은 형태로 구체화된 것이다.

아담의 타락이 없었더라면, 그리스도와의 연합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천국은 승리한 인간의 세계가 되었을 것이며, 인간은 교만하여 결국에는 천국에서 하나님과 같이 높아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볼 때,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하나님의 인격적 형상을 입은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하나님의 섭리임을 생각해 본다.


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이는 바울의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다.

바울이 큰 자였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다.

성도는 어느 누구도 은혜를 입은 자이기에 할 말이 없는 자들이다.

자신의 크기와 능력을 생각한다면, 이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취한, 하나님께서 그토록 질책하셨던, 교만한 모습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성을 아시기에 바울에게조차도 교만하지 않도록 육체의 가시를 허락하셨다.

성도들에게 가장 큰 유혹과 위험이 있다면, 신앙의 영역을 자신들의 성공의 기회로 삼는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이민 교회에서의 장로에 대한 치열한 경쟁은, 이들이 한국에서 높은 지위에 있다가 미국 이민 사회에서 낮아진 지위를 만회하는 수단으로, 장로의 직책에 대한 열망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로 성도들의 교만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는 창조된 상위 구조의 영역에 있는 이들이다.

이들도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밖에 없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종말에 이루어질 상위 구조로서의 하늘과 하위 구조로서의 땅이 연합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성도는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새롭게 생각하여야한다.

인간은 부모가 낳았기에 그냥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왜 사냐고 묻거든”이란 주제를 가지고 여러가지 답을 내놓지만, 진정한 답은 영원 전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계획하신 뜻에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에서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이다.


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13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하나님께 나아감)

아담은 범죄한 이후에 하나님의 낯을 피했다,

인간은 모두 아담의 후손이기에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피한다.

하나님을 피하는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기도 하지만, 본질 자체가 죄인이기에 죄를 짓지 않을 수 없고, 설령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죄인으로 규정된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이유로 인간은 하나님께 나아가길 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하기를 원했듯이 인간은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바울은 이방인인 에베소 교인들에게 자유하면서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 말한다.

죄인은 그 죄로 말미암아 거룩하신 하나님을 볼 수가 없지만,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허물을 담당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의지하여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나가는 말- 삶의 경영과 경제 원리)

이방인을 위해서 바울은 그리스도께 갇힌 자가 되었다.

자신의 생명과 삶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드림으로서 실제로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지만, 경제 원리로 본다면, 많은 댓가를 받아야하는 행위이지만, 바울은 경제 원리를 넘어서서 그리스도께 드려지는 삶을 살았다.

경륜은 oikonomia 즉 economy와 administration으로 번역되는데, 이는 원래 신앙의 영역에서는 삶의 경영 원리가 경제 원리와 구분없이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삶을, 택한 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 속량 제물로 드림으로서, 자신의 삶의 경제성과 경륜을 동일 선상에 둘 수 있었다.

바울도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께 갇힌 자가 됨으로서, 자신을 운영하는 경영 원리와 경제 원리를 구분이 없이 동일 선상에 둘 수 있었다.

흔히들 모세 경륜을 Mosaic Economy, 혹은 Mosaic Administration, 즉 모세의 통치 원리와 경제 원리를 분리되지 않은 영역으로 다루고 있다.

이와같이 신앙의 영역에서의 삶은 경영 원리와 경제 원리가 통합된 양식으로 이루어져야한다.

그리스도와 바울은 삶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서, 경제 원리와 경영 원리의 통합을 이루었지만, 대부분의 일반 성도들의 삶은 경영 원리와 경제 원리의 단일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자기의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다 주께 드림으로서, 모든 성도들과 재산을 공유 할 수 있었는데, 현대인들은 이와 같은 삶을 살 수가 없기에 신앙 생활의 이원화를 초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성도의 진정한 신앙 생활은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서만이 가능 할 것이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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