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017. 12. 29. 16:41

에베소서 5장 22-33절 말씀 묵상


바울은 아내와 남편과의 관계를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풀어나가고있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게 하는 것에 관하여 논하면서, 바울은 이제 결혼에 담겨있는 비밀을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통하여 풀어내고있다.

바울이 정리하는 아내와 남편과의 관계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가 담겨있지만, 구약의 이스라엘에서는 설명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가 담겨있다.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남자들은 종종 이 구절을 이용하여 아내에 대한 남자의 권위를 세우려고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복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셨던 순종의 개념과는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복종은,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남편에게 종속시키는 것인데, 이는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인해서 피차 복종하면서 긴밀한 관계성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아내가 독단적으로 남편과 관계없이 스스로 결정하여, 독립적인 행동을 하기 보다는, 남편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신을 남편과의 긴밀한 관계성에 종속시키고서, 남편을 존중하면서 일을 하여야한다는 것이다.

마치 성도가 교회의 일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뜻과는 관계없이 자기 독단적으로 일을 해서는 안되는 것과 같이, 성도가 언제나 주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의 뜻대로 살아가려는 것과 같이, 아내도 남편의 말을 듣고서 남편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복종은 주인과 종과의 관계성에서 나온 종속의 개념보다는, 서로 의견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독단적인 뜻대로 일방적으로 행하지 않는 관계를 의미한다.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싸움이었으며,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것은 곧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물리친 것이 된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대표했으며, 다윗의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예표하였다.

머리의 의미는 대표성과 출발점, 그리고 명예와 권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아내가 자신을 남편에게 복종시킬 수 있는 것은, 남편의 대표성과 권위를 인정하면서, 남편에게서 시작된 권위 구조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에 대하여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시작되었으며, 더 이상 아담의 실패로 말미암는 사단의 지배에 종속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몸의 구조로서의 교회와 가정의 형성은,아내의 남편에 대한 복종으로 인하여, 더 이상 이 세상이 사단의 세력만이 권세가 아님을 선포하는 것이다.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밑으로부터의 회복이다.

아내의 남편에 대한 불복종은 처음 하와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와는 남편과 떨어져있었기에 사단이 틈을 탈 수가 있었다.

하와는 남편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고 독단적으로 선악과를 먹었기에,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은 이러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죄 가운데 놓이게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완성된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아내는 더 이상 하와와  같은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남편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남편의 뜻을 존중하고서, 독단적인 결정을 하지 말아야한다.

서로에 대한 복종은 공동체를 묶어주는 끈이다.

삼위 하나님의 공동체는 완전한 복종으로 연결되어있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공동체의 회복이며, 이는 서로에 대한 복종의 끈으로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하고 기본되는 가정 공동체는, 아내의 남편에 대한 복종으로서, 더 이상 사단이 틈을 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말아야한다.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사랑의 원리)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창조 원리가 담겨있다.

남자의 갈비뼈와 여자와의 관계는, 하나님의 형상과 창조된 인간과의 관계와 유사성이 많이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삼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으며, 여자를 남자의 갈비뼈에서 취하여 지으셨다.

형상과 갈비뼈는 존재 자체의 근본적 속성을 결정한다.

인간에게 비록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있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라는 사랑의 원리가 더해져야 생명이 있듯이, 남편은 아내에 대한 희생적 사랑이 없이는 남편으로서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없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교회가 될 수 없는 것은, 아직 하나님의 희생적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슬림 남자들이 아내에게 요구하는 순종은, 사랑의 원리가 결핍된 율법의 저주와 맥락을 같이 하고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이 담겨있는 인간을 사랑하셨던 것과 같이, 남자의 갈비뼈를 취하여 만든 여자에 대한 사랑도, 하나님의 아가페적 사랑으로 완성되어야한다.

에로스적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가 아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기쁨인 것과 같이, 아내는 남편의 기쁨이어야한다.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교회는 물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끗함을 입은 성도들로서, 거룩하고 흠이 없어야한다.

100% 깨끗하지 못하면, 깨끗하다고 할 수 없다.

인간의 선행으로는 100%는 있을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서만 100% 깨끗하여질 수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로 대표되며,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새 사람을 입으려는 성도들로 구성되어야하며, 새롭게 시작되는 가정 공동체도 복종과 사랑의 관계로 흠없이 새롭게 시작되어야한다.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육적인 자기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존재감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로서의 자존감이 밑바탕이 되어야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재는 사랑을 받아야하며, 자신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기를 사랑하여야만 한다.

아내는 남편과 한몸이기에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

이는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서 가정 공동체가 삼위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서 존재감을 갖게되는 것이다.


29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되는 것과 성도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는 것에는, 동일한 하나님의 창조 원리가 담겨있다.

바울은 창세기에 기록된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를 인용하면서, 비밀에 대하여 말하고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한몸을 이루는 것은, 성자 예수님께서 삼위 하나님의 높으신 곳에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창세 전에 택하신 자를  구원하시고, 이들과 연합하여, 한몸을 이루신 것과 맥락을 같이 하고있다.

남녀 간의 혼인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속 사역과 맥락을 같이 함으로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남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 사역 안에 담겨진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아담이 타락 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이미 내포되어있었던 것이다.

교회와 성도의 관계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서 생각하여야 한다.

혼인의 비밀은 바로 그리스도가 이 땅의 교회를 위하여 삼위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서 떠나 교회와 한 몸이 된 것에 담겨있다.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의 맥락에서 생각하여야한다.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연합의 유비analogy라고 할수있다.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부부사이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의 모형이다.

유형적 교회가 부부의 관계보다 우선이 되어서는 안된다.

부부가 함께 하는 것보다 교회 생활에 비중을 더 두는 것은 성경적 원리가 아니다.

부부는 이 땅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창조 원리와 결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은, 그 형상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인간은 창조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창조물에다 사랑이라는 개념을 덧붙이지는 않는다.

인간은 자신의 창조물에 자신을 투영할 능력이 없고, 사랑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존재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의 형상을 피조물에 담아놓을 수 있으시며, 자신의 형상이 담겨있는 피조물을 사랑 할 수 있으신 것이다.

창세기 1-3장에는 인간의 창조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흔히들 창조물에 대한 사랑이 기록되어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창세기 2장의 “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24절)”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이, 마치 남자가 아내를 사랑하여 부모를 떠나 하나가 되는 것과 같이,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 되었음을 비밀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이 비밀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속 사역에 담겨있는 비밀을 예표하는 것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자이며, 인간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하여 사랑을 완성하여가는 과정이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

이러한 사랑은 순종을 통하여서만 가능하다.

아담과 이스라엘에게 요구되었던 순종은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요구였으며, 순종의 조건이 형성되지 않는 상태에서 사랑은 성립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남편은 마땅히 아내를 사랑하는데 자신의 몸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여야한다.

남편과 아내와의 사랑과 연합의 관계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의 가장 중요한 맥락이다.

결혼은 이러한 창조의 비밀을 담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특히 서구 사회에서 유행하고있는 동거문화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역하는 어둠 가운데서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동거 문화의 문제점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되는 것의 관계성에 비추어 볼 때 동거 문화는 많은 문제점이 있으며, 동거문화가 일반화되는 곳에서 교회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교회의 정체성을 재고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혼인을 통한 한몸이 되는 원리는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원리와 맥락을 같이 한다.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은 교회와 그리스도가 연합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동거문화는 연합의 개념이 빠져있으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구속 언약을 위한 이 세상의 목적을 상실하게 만든다.

혼인은 서로의 재산을 공유할 것을 약속한다.

성도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된다.

하지만 동거문화에서는 서로의 재산에 대한 소유를 주장 할 수가 없다.

혼인은 남편의 희생적 사랑과 아내의 복종이 요구되지만, 동거문화에서는 서로에 대한 희생은 계산에 의한 것이며, 행동방식은 자신의 독단적 결정이 우선이 된다.

서로 생각을 종속시키지는 않는다.

동거문화는 아담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아가페적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

혼인은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 즉 아가페적 사랑으로 연결되어있지만, 동거는 단지 육적인 에로스적 사랑만으로 연결되어있다.

혼인은 하나님의 창조 원리가 담겨있지만, 동거는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사단의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혼인은 타락한 세상을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의 출발이지만, 동거는 교회의 본질을 훼손하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교회의 속성 자체를 변질시켜버린다.

동거하면서 진정한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서구 사회의 동거 문화와 교회의 몰락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posted by Wonho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