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5장 27-42절 말씀 묵상
27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28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이들은 자신들이 예수를 죽인 것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다.
예수의 피를 자기들에게로 돌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이다,.
문제의 해결은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유대 이스라엘도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여야지만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인도될 수 있었듯이, 대제사장의 무리들도 자신들이 예수를 죽인 것을 인정하여야 해결책이 있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죄를 인정하길 원치 않는 속성은 아담의 범죄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는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것으로 발전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발전은 결국 그리스도를 죽이는데까지 발전한다.
그리스도를 죽인 대제사장 무리들은 가룟 유다와 같이 스스로 양심의 가책에서 나오는 말을 하고있다.
사실 사도들은 정죄를 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하고 싶은 것만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똑같은 상황도 마음이 강퍅한 이들에게는 부정적이 될 수 밖에 없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베드로와 사도들은 사사로이 논쟁하는 것보다 원론적인 답변을 한다.
사도들의 원론적인 대답은 이 땅에 대한 사단의 지배권이 상실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성령의 새창조는 사단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이기에 더 이상 사람의 관계성에 묶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성령의 새창조는 창세 전 삼위 하나님의 구속 언약에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의 순종과 아들되심의 선언을 근거로하는 활동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사람에 대한 사단의 지배권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선언하는 것이며, 동시에 더 이상 사단에 종속되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선포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말하는 순종을 그리스도의 성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열매이다.
하나님 나라는 순종을 요구한다.
창세 전 삼위 하나님의 구속 언약을 근거로하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하여, 이 땅에서의 성부 하나님의 왕권이 선언되는 것이다.
사도들이 말하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사도들의 직분을 분명하게 인식하는데는 나온 말이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림받기를 원하는 성도는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서 이 땅에서 살아갈 때 진정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목회자나 성도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은 삼위 하나님의 영원 가운데 약속하신 구속 언약이라는 말씀을 근거로 육신이 되신 것이며,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택한 자를 대신하시는 순종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순종을 근거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성도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오직 말씀을 근거로하는 순종이 동반되는 삶을 살아야만 할 것이다.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사도들이 “너희가”라고 지적했듯이 유대인들이 바로 예수를 죽인 자들임을 지적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한 순종은, 성부 하나님께서 창세 전 구속 언약을 통하여 약속하신 성자 예수님의 아들되심이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아들의 순종에 대한 아버지의 응답이었다.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한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었기에, 아담의 범죄는 단순한 불순종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었다.
자기 의를 세우려는 유대인의 순종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아니라 자신을 완성하기 위한 하나님께 대한 대적 행위였다.
전적인 은혜에 의존하지 않고, 공로적 행위 구원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의로 포장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이다.
톰 라이트는 예수의 죽음이 로마와의 충돌 방식에 대한 한 가지라고 주장하지만, 예수를 나무에 달게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은 특정 세력으로서의 로마가 아니라, 아담의 후손으로서의 유대인들이었으며, 유대인들의 대적은 보편적 인간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사도들의 활동은 창세 전 삼위 하나님의 구속 언약을 근거로하는 것이며, 사도들이 전하는 하나님 나라는 창세 전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약속하신 순종을 통하여 이 땅에 임한 것이며,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성부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세워지는 것이다.
사도 시대에나 지금 시대에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이들은 한결 같으며, 이들은 하나같이 공로적 자기 의를 추구하는 이들이다.
새관점주의자들과 같이, 이 시대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왜곡시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전가 교리를 부정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으려는 이들이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부 하나님의 성자 하나님의 아들되심에 대한 선언이며,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택한 자의 죄를 전가받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순종에 대한 성부 하나님의 응답이시며, 택한 자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선언이다.
전가교리가 없는 새관점이 말하는 부활은, 인간 행위 방식의 정당성만을 제시해주는 자기 의를 위한 것일 뿐이다.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제사장의 무리들은 회개와 죄사함이라는 선물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예수를 죽였음을 인정해야한다.
이들은 회칠한 무덤과 같이 포장된 자신들의 껍질이 벗겨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톰 라이트의 새관점도 예수를 죽이지 읺았다는 이들의 주장을 옹호한다.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증인이었어도 성령이 간섭하심이 없었다면 목숨을 걸고서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못할 것이다.
이들이 하는 증거는 자신들이 하나님께 사로 잡힌 자들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위협적인 세상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신앙인으로서의 삶은 오직 성령의 함께 하심으로만 가능하다.
33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이들의 분노는 인간의 죄성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이는 패배한 사단의 대리적 표현이다.
사단이 예수께 대한 태도와 마찬가지의 태도를 사도들에게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한 사단은 세상에 대한 영향력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율법에 정통한 바울의 스승이었던 가말리엘의 모습은 율법이 그리스도를 대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울법은 자연법과 마찬가지로 구원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일반 은총의 영역에 속하여 있는 것이다.
율법에 충실하였던 이들도 하나님의 특별 은혜가 있어야지만 구원에 참여 될 수 있다.
하지만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고자함으로서 율법을 특별 은총의 방식으로 사용한다.
이는 일반 은총의 영역에 속하여있는 자연법을 통하여 구원을 얻고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서 지혜롭게 상황을 대처해나간다.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36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복음은 영원하지만 운동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는 유행을 따르는 것이다.
드다와 갈리리의 유다가 전하였던 것은 복음이 아니라 운동의 차원이었다.
복음과 운동은 구별되어야한다.
하나님 나라 복음과 하나님 나라 운동은 구분되어야한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구속사 중심의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라면 하나님 나라 운동은 인간의 새로운 행동방식에 관한 운동이다.
톰 라이트는 사도들이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면서 핍박을 받았다고 말한다.
톰 라이트는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하나님 나라 운동으로 바꾸어버린다.
그는 하나님 나라 운동이, 하늘과 땅이 겹쳐서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가는 하나님의 새창조로서, 유대교의 전통에 매우 충실한 것이라고 말한다.
유대교의 전통은 행함의 방식으로서 사도들이 전하는 하나님 나라 운동을 전통에 충실한 새로운 방식의 행동 방식으로 규정하고있다.
하지만 복음은 행함의 방식 이전에 생명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복음은 아담 안에서 아담의 범죄로 죽었던 인간이 마지막 아담으로서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았다는 새생명에 관한 것이다.
톰 라이트의 새관점에서는 아담 안에서 죽어있는 전적으로 부패된 인간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는 인간이 율법을 행하는 윤리적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이 아담 안에서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아담으로서의 생명을 살리는 구속 사역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핍박은 성도의 거룩함에 대한 증거다.
거룩함은 분리로 인한 깨끗함을 말하며 세상으로부터의 분리를 말한다.
현재의 한국교회가 핍박을 받지 않는 것은 교회가 거룩함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거룩함이 상실된 한국 교회는 핍박이 아니라 비난과 조롱만 받을 뿐이다.
비난과 조롱은 핍박이 아니기에 사도들과 같이 기뻐할 수 없다.
상황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아무 감각없이 지나칠 뿐이다.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오직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였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교회는 그리스도가 사라졌고, 윤리의 모델이 되는 왜곡된 그리스도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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