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18. 1. 9. 23:41

사도행전 4장 32-5장 11절 말씀 묵상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는 것은 이들이 다 성령에 사로잡힌바되어 자신의 뜻이 아닌 성령의 뜻대로 하나가 되었다는 증거이다


삼위 하나님의 공동체성이 하나로 나타나듯이, 성령의 역사는 성도를 그리스도와 하나로 연합 시킴으로서 처음 아담에게 심겨졌던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공동체성이 이 땅에서 다시 구현되고있는 것이다.


하나되는 공동체성은 성령의 새창조의 특성이다.


이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 다짐으로 되지 않는 초자연적인 것이다.


이들이 행하는 공동체적 삶의 형태는 종국적으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도 시대 이후에 이 땅에서 이상적인 삶의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는 것은 마치 가나안에 들어갔던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증명해 주고있는 것이다.


현재의 교회 공동체가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은  마치 이스라엘의 바벨론 유수 이전의 부패한 모습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성결의 개념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의 가나안 생활과 같이 성령의 강권적 역사로 시작된 사도시대의 교회공동체가, 인간의 죄성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부패와 마찬가지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있다.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환경적으로 많은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도 핍박받는 지역에서 성령의 큰 권능을 경험 할 수 있는 것은 환경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흔히들 복받았다고 간증하는 세상적 축복들은 오히려 타락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현시대 교회 타락은 환경적 풍요와 무관하지 않다.


기독교의 부패는 콘스탄티노플에 의한 기독교의 국교화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볼 때 핍박이 없는 교회는 부패될 수 밖에 없음을 보게된다.


교회에 대한 핍박이 없는 현재의 환경은 한국교회의 부패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타락한 아담의 후손이기에 하나님의 큰 은혜는 오직 어려운 환경에서만 가능할뿐이다.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중국이 문화대혁명 기간에 하였던 일 가운데 한 가지는 부유한 자들의 집을 압수하고서 그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분배하였던 것이다.


아마 성경을 피상적으로 적용하였던 것 같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공산주의 이론도 많은 부분 성경을 근거로 하고있다.


하지만 이들이 실패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들이 인간의 죄성을 간과하였기 때문이다.


사도시대에 재산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인간의 죄성을 압도하는 성령의 강권적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개인에게 사도 시대에서의 일들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개인은 파산될 수 밖에 없다.


가끔 이단들이 재산을 공유하지만 이들의 공유된 재산은 잘못 사용되어질 뿐이다.


M교회와 같이 대형 교회들이 교회의 재정을 잘못 사용하는 것은 그만큼 내부적으로 잘못된 이단성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문제는 인간의 죄성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성령의 공동체적 역사가 없이는 개인이 이를 실행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 시대의 문제는 사도 시대와같은 성령의 초자연적 공동체적 역사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인간의 죄성으로 말미암아 처음의 시작과 다른 이스라엘 공동체의 모습과 유사하다.


부흥은 부흥을 추구한다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부흥을 추구하면서 일어나는 부흥의 역사들은 부흥주의의 한 현상일 뿐이다.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재산을 소유할 수 없었던 레위족이 재산을 처분하여 사도들에게 가져간 것은 하나님의 법에서 떠난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의 법이 다시 살아 역사하고있다는 증거이다.


사도행전에서의 바나바의 선교사역은 죽었던 이스라엘 가운데 성령의 새창조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었으며, 바나바를 통한 성령의 새창조의 역사는 사도행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재산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서 온전하게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 헌신된 자들은 물질에 대한 욕심이든 명예에 대한 욕심이든 인간적 욕심을 내려놓아야지만 성령께서 크게 사용하실 수 있음을 본다.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반을 바쳤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을 한 것에 문제가 있었다.


거짓은 누룩과 같이 공동체 전체에 쉽게 퍼진다.


사도시대의 초기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구별된 공동체가 시작될 수 있었다.


이는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거룩이 유지되어야만 했다.


아간의 범죄가 심각하게 다루어졌던 것은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로 오염시킬 메소포타미아지역의 시날산 물건을 숨겼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와 더불어 새롭게 시작된 성결된 교회공동체에 거짓을 가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교회에 들어온 죄는 공동체 전체를 오염시킨다.


현대 교회가 공동체성을 상실한 것은 이미 심각하게 죄로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심각하게 오염된 교회공동체는 심각하게 부패했던 이스라엘과 유사하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았듯이 심각하게 오염된 교회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심판을 받을 것이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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