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18. 1. 14. 23:58

사도행전 7장 17~36절 말씀 묵상


17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약속하신 때가 가까왔을 때의 상황은 오히려 절망적으로 치닫는다.

흔히들 무슨 좋은 일이 있으면 사단이 방해한다고 사단과의 싸움에 집중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관심은 택한 자들에 대한 거룩과 성결에 있다.

베레아 아카데미나 축귀 사역을 하는 이들이나 세대주의자들은 많이들 사단의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다듬어지는 시간인 줄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은 성도를 사용하시기 전에 악을 사용하셔서라도 성도를 깨끗하게 하는 작업을 하시기에 눈 앞에 닥친 어려운 상황에서는 일차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정금과 같이 깨끗하게 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하여야한다.



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누구나 상황의 혜택을 받는 이들은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상황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셉의 이름 덕을 톡톡히 보아왔지만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기보다는 세상에 의존하는 삶을 살아왔다.

세상에 의지하는 이들은 세상이 등을 돌릴 때 시험에 들 수 있기에 항상 주를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하지만 인간은, 타락한 아담의 후손이기에,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력하신 간섭이 없이는 적극적으로 세상을 선택하게 되어있다.


19  그가 우리 족속에게 교활한 방법을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

사단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길 원하지 않아서 끊임없이 방해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단의 속성을 역이용하셔서 자신의 뜻을 이루신다.

하지만 인간으로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기 어렵기에 위기의 상황일수록 더욱 기도하면서 믿음 가운데 하나님을 의존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현재의 대한민국의 긴박한 상황은 김정은이라는 악한 자의 계략을 역이용하셔서  대한민국을 향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이루어지는 시간이기에 성도들은 더욱 깨어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여야 할 때이다.


20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때가 가까이 오면서 하나님의 본격적인 개입이 시작된다.

하지만 모세가 태어난 후에 모세는 80세가 지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다.

80년이라는 시간은 인간이 한평생을 살아야하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임에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왔기에 출애굽을 인도할 모세를 태어나게하셨다.

인간이 생각하는 가까움과 하나님께서 보시는 가까움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21  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물에 빠진 요나를 위해서 물고기를 준비하셨듯이 버려진 모세를 위해서 바로의 딸을 준비하시는 하나님….

신자는 비록 자신이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동료로부터 버림을 받고, 심지어는 사랑하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버림을 받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계획하신 택한 자의 삶을 위해서 더 좋은 환경을 예비해주신다.

신자는 어떠한 불행한 환경에서도 절망하지 말아야하며, 자신의 삶 가운데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경험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져가야한다.

역경 가운데 택하는 자살의 문제는 자신의 생명에 대한 살인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 더욱 큰 죄가 있음을 알아야한다.

자살을 생각하여야 할 정도의 역경이라면 물에 빠진 요나만큼이나 하나님을 경험 할 수 있는 놀라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모세가 바로의 궁에서 지혜를 배웠던 시간은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장  괴롭히던 악한 시간이었다.

모세는 자신의 백성들이 가장 괴로웠던 시간에 가장 편안한 시간을 보내었다.

모세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할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악한 환경 가운데에서라도 하나님의 일반 은총에 의한 긍휼을 베푸시는 것과 같이 성도는 세상 학문에 대하여 배타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않된다.

어떤 이들은 세상에서 배울 것이 없다고 일반 학문에 대하여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일반 학문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자연법이 가장 잘 나타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도는 세상이 악하다는 이분법적인 이원론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연법에 의해서 운영되는 일반 은총의 나라와 하나님의 특별 계시에 의해서 운영되는 특별 은총의 두 나라에서 살고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느 목사와 같이 사회법 위에 하나님의 영적 제사법이 있다고 사회법을 어겨도 된다는 몰상식의 행동을 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23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나이 사십이면 가장 혈기가 왕성한 때이다.

가장 자신이 있는 나이에 가장 조심하여야한다.

사람들은 종종 40대에 들어서서 인생의 하프타임을 경험하게된다.

하프타임은 인생이 좌절되는 시간이다.

인생을 하프타임을 거치고나서 진정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게도

어있다.


24  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세상에는 정의의 사도처럼 활동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이들의 행동 원리는 지극히 인간적이다.

블의를 참지 못한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다 옳은 일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는 오히려 악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은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구약에서의 사건들을 인간적인 관점에서 해석할 때 어떤 때는 하나님이 악한 분이 되실 수도 있다.

신자에게 선은 정의의 사도가 되기보다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25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모세의 생각의 미숙함이다.

젊은 이들에게서 종종 발견 할 수 있는 현상이다.

문제는 시간과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자신의 힘으로 하려고했다는 것이다.

신앙 생활하면서 주위에서 알아주지 않고 하나님께서도 함께하시지 않는다는 생각에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낙담되는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정작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힘이 빠지기를 기다리시고 계신다.

성도는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 해보려고 하면서 잘 안될 때는 하나님을 원망하지만, 낙담의 과정을 통하여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성숙된  시간이 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26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끼리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해시키려 하여 이르되 너희는 형제인데 어찌 서로 해치느냐 하니

모세의 생각은 단편적이다.

모세는 단순한 몇 가지 논리를 모든 상황에 적용시키려고한다.

나이든 사람들은 온갖 경험을 통하여 삶의 지혜가 많이 있지만 젊은 이들은 짧은 연륜으로 인하여 상황을 판단하는 논리가 단순할 수 밖에 없다.

특히 현대 사회는 젊은 이들이 자신들의 단편적인 생각으로 연륜이 있으신 분들을 쉽게 판단해버린다.

이는  아담의 후손인 죄인이 자신들의 단편적인 논리로 하나님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27  그 동무를 해치는 사람이 모세를 밀어뜨려 이르되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자신의 논리를 모든 이들에게 적용시킬 수는 없다.

하나님의 법이 상실될 사회일수록 각자 자신의 법대로 살아가게된다.

고통 가운데 불의가 팽배했던 애굽의 상황은 심판을 앞둔 마지막 시대의 상황적 특징을 보여준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특징 가운데 한 가지는, 각자 자신이 진리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절대적 진리가 상실되어가는 시대일수록 심판이 가까이 왔음을 볼 수 있다.



28  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

특히 마지막 때 일수록 다른 이들의 잘못을 노출시킨다.

온갖 언론과 SNS등은 다른 이들의 좋은 점보다는 부정적인 가십거리를 논한다.

부정적 정보들은 서로를 낙담시킨다.

마지막 때가 가까올 수록 사랑이 식어지는 이유이다.

하나님의 형상에는 삼위 하나님의 완전한 공동체적 형상이 담겨있지만 인간의 타락과 더불어 시작된 공동체의 파괴는 극단적으로 서로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난다.



29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공동체로부터의 이탈은 자신의 선택과 관계없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

공동체 내부에서 서로에 대한 공격이 있을 때 같은 공동체에서 지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교회 공동체에서의 분열은 종종 성도를 교회 바깥으로 내어 쫒는다.

고통 가운데 있던 애굽의 상황이 모세를 내어쫒았듯이, 진리가 없어질수록 사랑은 식어지고 분열은 증가된다.

이는 현시대에 가나안 성도가 증가하는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용서와 이해가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때이다.



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사십이라는 숫자는 상황의 준비를 위해서 더 이상의 숫자를 요구하지 않는 상황의 가득함을 뜻한다.

가나안 입성을 준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사십 년동안 애굽의 잔재를 털어냈어야했듯이, 모세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광야에서 사십 년동안 왕족의 잔재를 털어내야만 했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위해서 사십 일 동안 광야에서 충만하게 금식을 하셨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를 예비하시기 위해서 사십 일 동안 충만하게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을 말씀하셨다.

모세가 사십 년동안 자신의 혈기를 내어버렸을 때 보았던 가시나무 떨기는 불이 붙었지만 타지 않았다.

마치 알콜 램프의 심지가 알콜을 태우면 심지가 타지 않지만 알콜이 없으면 심지가 타듯이, 사십년 전의 모세는 자신을 태우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사십년을 준비하고서 모세는 자신을 태우지 않는 대신에 하나님을 태우는 법을 배우게 된다.

광야에서의 모세를 통해서 진정으로 사는 길은 자신이 죽는 것임을 보게된다.

신자는 육적인 자아를 죽일 때 진정으로 하나님의 심지가 될 수가 있다.



31  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

타지 않는 떨기는 놀랄 수 밖에 없는 현상이다.

모세는 이러한 놀라움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면서 사십 년 동안 경험하게 된다.

진정으로 육적인 자아가 죽은 성도는 모세와 같이 남아있는 인생을 타지 않는 떨기와 같이 자신을 태우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놀라운 삶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3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무서웠던 하나님이 가장 친근한 하나님으로 바뀌게된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친근하게 다가갈 수는 없다.

인간적인 혈기가 다 빠지고서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가오셔서 모세와 가장 가까이계신 분이 되셨다.

신자는 인간적인 힘이 다 빠질 때까지 하나님을 두려워 할 수 밖에 없지만 혈기가 다 빠질 때 하나님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33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인간이 버려지거나 떠나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영역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소외되었다거나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경험할 수 있다.

비록 상황 가운데서는 사회에서나 교회에서 아웃사이더로 있다고 하더라도 그곳이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곳임을 생각하며 좌절하지 말아야한다.



34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톰 라이트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 홍해를 건너는 출애굽을 구원으로 보았기에,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며, 이들의 가나안에서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무르는 삶이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논리라면 새관점에서 보는 보냄받은 구원자는 모세가 되어야한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창세기 1~3장에서의 첫 번째 아담이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과 같이,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로, 새 언약의 주체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 안에서, 참이스라엘을 예표하는  모형이 되어야한다.

유대적 이스라엘은 새관점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실체적 백성이 아니라 모형적 백성임을 인식하여야한다.



35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사단은 하나님의 사람을 거부하지만 하나님께서 손수 세우실 때는 아무도 이를 막을 수가 없다.

세움을 받고자 하는 이는 스스로 세움을 받으려고 하지말고 하나님께로부터 세움을 받아야한다.

특히 교회에서 세움을 받으려는 이들은, 젊었을 때의 모세와 같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세움을 받으려고해서는 안된다.


36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모세의 성공은 성공이 아니다.

인간에게 성공이라는 것은 없다.

오직 하나님의 쓰임을 받았을 뿐이며, 인간에게는 아무런 공로도 없다.

성공은 목적하는 바를 이룬다는 개념으로 지극히 인간적인 개념이다.

어떤 성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을 몇 번씩 읽으면서 이를 신앙생활에 적용하는 이들도 있다.

신자가 성공하는 삶은 살기 위해서는 모세와 같이 광야에서 자신의 인간적 혈기를 완전히 제거하여야만 할 것이다. 

posted by Wonho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