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3장'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8.05.06 :: 신명기 3장 12-29절 말씀 묵상 5
신명기 2018. 5. 6. 22:16

신명기 3장 12-29절 말씀 묵상

12  그 때에 우리가 이 땅을 얻으매 아르논 골짜기 곁의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 산지 절반과 그 성읍들을 내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 주었고
13  길르앗의 남은 땅과 옥의 나라였던 아르곱 온 지방 곧 온 바산으로는 내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노라 (바산을 옛적에는 르바임의 땅이라 부르더니
14  므낫세의 아들 야일이 그술 족속과 마아갓 족속의 경계까지의 아르곱 온 지방을 점령하고 자기의 이름으로 이 바산을 오늘날까지 하봇야일이라 불러오느니라)
15  내가 마길에게 길르앗을 주었고
16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는 길르앗에서부터 아르논 골짜기까지 주었으되 그 골짜기의 중앙으로 지역을 정하였으니 곧 암몬 자손의 지역 얍복 강까지며
17  또는 아라바와 요단과 그 지역이요 긴네렛에서 아라바 바다 곧 염해와 비스가 산기슭에 이르기까지의 동쪽 지역이니라

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어진 땅은 그들만의 공로에 의한 댓가가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거주하는 것이기에,  자신이 땅을 취득해서 거주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칙이 아니다.

프랑스 대혁명을 기점으로 하나님으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한 인간이 자본주의 사상을 근거로 땅을 독점하면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사회주의 혁명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토지를 공유하면서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었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실패한 것은, 인간의 죄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지만 경제 논리에 의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토지 개념은 자칫 사회의 공동체성에 심각한 해를 가져올 수가 있다.

죄인이 살아가는 현 세상에서의 토지 제도는, 하나님의 법칙과 인간의 죄성을 적절하게 고려하는 가운데 완성시켜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 땅에서의 토지 제도는 한시적인 것이며, 죄성을 가진 인간에게는 이상적인 제도가 있을 수가 없다.

요단 강 동편에 자리를 잡으려는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에게는, 이스라엘의 공동체성에 손상을 가하지 않는 방법으로 토지가 주어진 것을 볼 때, 토지로 인해 사회의 공동체성을 파괴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사회가 얼마나 건강하지 못하느냐는, 토지의 공개념이 얼마나 손상되었는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가나안 땅에서의 토지 공개념은 장차 이 땅에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하게 실현될 것이다.


18  그 때에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셨은즉 너희의 군인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선봉이 되어 건너가되

먼저 땅을 할당받은 이들이 자신들은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이스라엘 공동체의 분열을 야기할 수 있는데, 오히려 가나안 정복 전쟁의 선봉이 되라는 지시는, 이스라엘의 공동체성의 유지를 위해서 지혜로운 방법이었다.

먼저 받은 자들의 기득권 주장은 자칫 공동체의 파괴를 가져올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먼저 받은 자가 나중 받을 자들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 확장에 앞장서야하는 것에 적용해 볼 수 있다.

하나님 나라 확장에 선봉이 되신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성도는 가장 먼저 앞장 서신 맏형인 그리스도를 따르는 형제들로서, 항상 복음에 빚을 진 자들로서, 순교자들이 있었기에 존재할 수가 있었다.

교회가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순교적 자세로 사회에서 희생이 되는 이들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기대할 수 없다.

지금의 기독교에 대한 배타적인 환경은, 복음을 먼저 받은 자들의 기득권 주장에 의한 부작용에서 나타난 것이다.

복음을 먼저 받은 자들은, 가나안 전쟁에 앞장선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와 같이, 희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선봉에 서야 할 것이다.


19  너희에게 가축이 많은 줄 내가 아노니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내가 너희에게 준 성읍에 머무르게 하라

처자와 가축은 앞장 선 군사에 합류할 수가 없다.

이들과의 동행은 효율적인 전쟁을 방해한다.

종종 가족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일에 있어서 걸림돌이 될 수가 있다.

가족을 책임져야하는 가장은 가족이라는 안식처와 삶의 현장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20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에게도 안식을 주시리니 그들도 요단 저쪽에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땅을 받아 기업을 삼기에 이르거든 너희는 각기 내가 준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고

형제가 안식을 얻기까지 함께하는 과정은, 공동체에 연대감을 더해준다.

공동체의 형성 과정은 가장 어려운 과정이며, 가장 어려운 과정에서 함께한 형제들이 진정으로 참된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 공동체의 확장은 안식을 향하여 있는 것이다.

하지만 종종 교회의 개척멤버나 교회 건물의 건축에 함께한 이들은, 후에 교회 분열의 한 가운데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이들이 자신들의 역할과 공로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가나안 전투에 앞장섰던 이들은, 가나안 전투가 끝난 후에, 그 곳에서 자신의 공로를 주장하지 않고 자신들의 거처로 돌아갔다.

교회의 개척과 건축에 앞장섰던 이들은, 가나안 전투에 앞장섰던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와 같이, 자신의 안식처로 돌아갈 때 공동체에 덕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교회 개척이나 교회 건물의 건축은 안식의 확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안식의 터 위에 집을 짓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동료들이 안식하기까지 함께 한것은,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체로서 공동체적 연대를 위한 것이다.

성도가 교회의 확장에 참여하는 것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공로의 터 위에서 세운 것이며 공동체의 연합을 위핱 것이기에, 여기서 자신의 공로를 주장해서는 안된다.


21  그 때에 내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두 왕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네 눈으로 보았거니와 네가 가는 모든 나라에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행하시리니

가나안 입성 전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행하여진 아모리 족속에 대한 진멸은 믿음직한 모세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하나님의 배려하심을 볼 수 있다.

사람의 치아도 젖을 먹는 유아의 발육에 필요한 젖니는 성인이 되면서 교체된다.

젖니의 역할은 영구치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역할을 해준다.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자상하심은 육적인 창조와 영적인 창조 원리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하나님의 섬세하고 자상하신 간섭하심은 초신자들에게나 아니면 처음 진입하는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성도는 일상에서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불필요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

오직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에 앞서시며, 성도의 길을 예비해주신다.


22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아모리 족속에 대한 진멸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미리 준비를 시켰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우시겠다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인간은 누구나 삶에 있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두려움은 인간이 타락한 아담의 후손이기에, 체질적으로 자유할 수는 없지만, 성도는 믿음 안에서 이를 극복하는 훈련을 받아야한다.

정신적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비슷한 상황이 다가올 때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갖게되지만,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는 이러한 상황을 직면하여야만 극복 할 수 있다.

상황을 피하면 해결책이 없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족속을 진멸시켜야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담대하게 상황을 직면하고 돌파해나가듯이, 성도는 주어진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는 훈련을 할 때 더욱 담대하면서도 참된 안식을 누리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24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모세는 자신의 바램을 하나님의 지혜보다는 능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있다.

인간이 경험하는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모든 것을 행하실 수 있으시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 가장 적절하게 행하시는 지혜의 하나님이심을 볼 수 있다.

인간은 능력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능력을 제한 하시는 것이다.

인간의 문제는 능력의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한 지혜의 부족에 있다.

사회에서는 많은 능력을 가진 재력가들이나 박사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에게 절대 권한이 주어진 교수들은, 주어진 많은 권한에 비하면, 이를 부적절하게 사용함으로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서 상황을 변화시키는 간구의 기도이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지혜에 의지하여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수용하고 분별하며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위해서 기도하여야한다.

성도는 많은 능력을 소유하기에 앞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주어진 능력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할 것이다.



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모세는 자신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데 한계가 있다.

모세가 바라보는 가나안 땅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모든 상황은 참 성전이신 그리스도에 의하여 실체가 드러난 후에 희미했던 그림이 명확해 질 수 있었다.

모세에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이끄는 역할까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모든 일은 삼위 하나님의 창세전 구속 언약에 근거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하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기에, 인간적 감정과 연민으로 진행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구속 언약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게, 성도는 하나님의 일을 인간적인 연민이나 감정, 혹은 의리에 근거하여 이루어가서는 안될 것이다.


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하여 감정을 통제하지 못함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실수를 하였다.

박영선 목사는 모세가 반석을 두 번 두드림으로서 참된 반석되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다시 못박는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라고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한 인간적인 분노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것이다.

성도는 종종 부정적 상황에 대하여 분노함으로서 그들과 같은 부류가 되는 실수를 하게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불의에 대하여 분노할 수는 있어도, 그들의 부정적 상황에 휘말림으로서 인간적인 범죄를 하여서는 안된다.

성도는 부정적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데 본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27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28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그를 담대하게 하며 그를 강하게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이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29  그 때에 우리가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거주하였느니라

모세는 안식으로 인도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지 않았으며, 가나안 직전까지만 인도한 인물이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정복할 가나안을 정탐하였기에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이끌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이끌고 들어가는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안식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다.


posted by Wonho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