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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2.29 :: 에스더 2장 19절- 3장 6절 말씀 묵상
  2. 2017.12.29 :: 에스더 2장 1-18절 말씀 묵상
에스더 2017. 12. 29. 14:12

에스더 2장 19절- 3장 6절 말씀 묵상


19  처녀들을 다시 모을 때에는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더라
20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명령한 대로 그 종족과 민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그가 모르드개의 명령을 양육 받을 때와 같이 따름이더라
21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에 문을 지키던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원한을 품고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22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알리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아뢴지라
23  조사하여 실증을 얻었으므로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그 일을 왕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하니라

(세세한 부분까지도 주관하시는 하나님)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종족과 민족을 말하지 않게 한 것은 선경지명이 있어서 일 수도 있겠지만, 이마저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어떠한 행동을 하면서도 본인 스스로 왜 그렇게 하는지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하여 잠언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 16:9)”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을 알 수가 없고, 앞으로의 일도 알 수가 없다.


만약에 사람이 앞으로의 일을 알 수가 있다면, 역사는 절망적일 수 밖에 없다.


앞으로의 일을 모르면 불안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의 일을 알게도

면 그 사람은 망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죄인이기에, 앞으로의 일을 모르는 것이 은혜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알아야 할 것과 몰라도 될 것을 구분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과거의 역사를 통하여 앞으로의 역사를 말하고있지만, 구체적인 것은 피하고 있다.


마지막 때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기를 원하였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인 날에 대하여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징조에 대하여만 말씀하신다.


인간은 여러가지 정보와 지식으로 상황을 주시하며 미래를 예측하려고하지만, 상황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이기에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래의 일보다도 인간이 누구에게 속하여있느냐이다.


인간은 누구를 주로 섬기느냐에 따라서 주인의 종으로서의 역할을 할 뿐이다.


하나님을 주로 섬기는 이들은 하나님의 종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을  아들로 부르시고 상속자로 삼으셨다.


인간은 누구의 종이든지 간에 이 땅에 사는 동안 앞으로의 일을 모르는 것이 은혜다.


사람의 미래의 모든 일은 사람의 계획과 더불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창세 전에 택하신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구속 사역의 관점에서 역사를 운행하신다.


인간은 비록 앞으로의 일을 알 수가 없다고 하더라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평안을 누릴 수 있다.


모르드개는 자신이 들은 말을 에스더를 통하여 왕에게 전달했을 뿐인데 이러한 일이 앞으로 유다 민족을 구하는데 어떠한 역할을 할 지 전혀 예측을 하지 못했지만, 이마저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가 된 것이다.


하나님은 막연히 계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가장 깊은 곳에서, 모든 섬세한 부분까지도 관할하고 주관하시면서, 어떠한 상황도 기억되지 않는 것이 없이, 이러한 상황들을 섬세하고 시기 적절하게 사용하시는 모든 상황의 주제이시다.


신자에게는 비록 현재의 삶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우며,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는 섬세한 부분까지 다 아시고 계시기에, 오직 주님이 주시는 평안 가운데 모든 순간 기도와 간구로 감사하며 살아야한다.



1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두니
2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3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하들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4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알렸더니 그들이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전하였더라
5  하만이 모르드개가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매우 노하더니
6  그들이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알리므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모르드개의 절개)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꿇어 절하지 않은 것은 유대인으로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약속한 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일제 신사참배에서 천왕에게 절하지 않았던 기독교인들을 연상하게 해준다.


일제 마지막 때에 기독교가 심각한 핍박을 받았던 것은 신사참배를 거절한 기독교인들과도 관련이 있다.


이는 마치 모르드개의 일로 인하여 유대인 전체를 멸하려는 하만의 계획과 맥락을 같이 한 것이다.


결국 하만은 자신의 계략으로 인하여 자신이 죽어야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기독교를 핍박했던 일제는 망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에는 핍박이 있을 수 밖에 없으며, 핍박하는 자는 순간에는 승리하는 것 같으나, 결국에는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진리이다.


어둠의 권세는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이름이 심겨진 유다인의 줄기를 끊어버리려고 안간 힘을 쓴다.


이들의 계략은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고 진행이 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에는 미치지 못한다.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사단의 계략에 말려들기 십상이지만, 하나님은 사단의 계락까지도 이용하셔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는 상황에 휩쓸려 우왕좌왕하기보다는,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상황을 넘어설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된다.


삶은 평탄하거나 위기가 오거나 간에 항상 영적인 긴장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사단은 끊임없이 틈을 보면서 성도를 넘어뜨리려고하지만, 성도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상황에 휩쓸리지 않는 지혜를 간구하며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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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nho Kim
:
에스더 2017. 12. 29. 14:11

에스더 2장 1-18절 말씀 묵상



1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의 노가 그치매 와스디와 그가 행한 일과 그에 대하여 내린 조서를 생각하거늘


(분노와 복음)


분노는 일시적이다.


어리석은 자는 일시적인 분노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분노를 잘 다스리면서 자신을 분노에 휩쓸리지 않게 한다.


분노할 때 사람은 엔돌핀이 쏫구치면서, 스스로 일시적인 흥분의 상태에 들어간다.


쉽게 분을 내거나, 부정적인 것을 쫓아다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실제로는 부정적 상황이 심각한 상태가 아닌데도, 스스로 부정적 상황을  찾아다니며 부정적인 것에 대하여 분노하면서, 부정적인 것에 중독되어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속이면서, 마치 자신이 정의의 사도인것처럼 울분을 토해내지만, 정작 심각한 부정적인 상황은 자신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들의 심각성은, 자신만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속이는데 있다.


이들은, 누군가는 문제를 해결하여야한다고 하면서, 사명감을 가지고 정죄를 하지만, 이들은 정작 구약에 머물면서 신약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다.


인간은 본질적 죄인이기에 부정적 상황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대한 해결책은 구약에서와 같은 율법의 저주가 아니라, 신약에서 제시되는 복음뿐이다.


아하수에로 왕은 지혜롭게도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면서 앞으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신하들과 의논한다.


아하수에로 왕은 구약에서의 정죄에 묶여있지 않고, 해결책을 찾으려는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복음적인 해결책을 찾는 지혜를 보여주고있다.


하나님도 아담의 범죄에 대하여 분노하셨지만, 그를 측은히 여기시고 가죽 옷을 입히셨다.


율법이 벗은 아담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라면, 복음은 하나님께서 벗은 아담에게 옷을 해 입히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와스디를 아담과 이스라엘에 적용시킬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노하시기를 즐겨하시는 분도 아니시며, 문제가 생겼을 때 상황을 외면하시거나 포기하시기 보다는 더 나은 상황을 위하여 일을 진행하신다.


2  왕의 측근 신하들이 아뢰되 왕은 왕을 위하여 아리따운 처녀들을 구하게 하시되
3  전국 각 지방에 관리를 명령하여 아리따운 처녀를 다 도성 수산으로 모아 후궁으로 들여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의 손에 맡겨 그 몸을 정결하게 하는 물품을 주게 하시고
4  왕의 눈에 아름다운 처녀를 와스디 대신 왕후로 삼으소서 하니 왕이 그 말을 좋게 여겨 그대로 행하니라



(사랑의 대상이 된 돌감람나무로서의 이방인)


와스디의 불순종을 계기로 에스더가 기회를 얻은 것은 마치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계시로 이방인들을 택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이 연상된다.


에덴에서의 아담의 불순종이나 가나안에서의 유다 백성의 불순종이나 와스디가 버림을 받은 참감람나무 가지라면, 대신 택함을 받은 에스더는 접붙임을 받은 돌감람나무 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하수에로 왕이 사랑할 대상을 찾는 것은, 참감람나무의 수액을 공급받을 가지와 같이, 자신의 영광을 함께 누리기 위함이다.


왕후가 된다는 것은, 나무에 접붙인 가지와 같이, 영광의 수액을 공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속성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받아야만 하는 구조로 지음을 받았다.


사랑은 하나님의 공동체를 묶어주는 띠로서, 공동체 모두의 기쁨과 즐거움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의 풍성함을 사랑하는 이들과 공유 할 때 기뻐하시듯이, 인간도 자신의 풍성함을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할 때 기쁠 것이다.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를 찾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의 영광을 같이 누릴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쁨은 풍요를, 사랑하는 이와 같이 누리는 가운데 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를 사람과 같이 누리길 원하셔서,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공유하기 위한 조건을 제시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홀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면서도, 사랑의 대상에 대하여 항상 관심을 가지신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 것이다.


하늘의 천사들도 사랑하실 수 있으시겠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을 창조하신 것도,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다.


아담의 범죄는 사랑해야할 대상의 상실이라는, 하나님의 커다란 슬픔이었다.


이러한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에서는, 택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의 영들과 함께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계획하시고 실행하신다.



5  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그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
6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

7  그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으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의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

(추방 이후에도 계속되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


주전 597년 잡혀간 여고냐, 즉 여호야긴이 잡혀간 시기는 에스더보다 100여년이 앞선다.


아마 모르드개의 선조가 잡혀갔으리라 생각된다.


아담이 비록 에덴에서 범죄함으로 인하여 에덴 밖으로 추방되었지만, 하나님의 구속을 위한 간섭하심은 계속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모르드개 일가의 바벨론 포수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의 추방이었지만,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통한 하나님의 간섭하심은, 하나님의 구속을 위한 섭리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순간 순간 개인의 운명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비참 할 수도 있겠지만,  타락한 상태에서의 인간은 기구한 운명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수산에서의 경험은,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서 포로생활을 하고있지만,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계속되고있음을 보여주는 경험이다.


비록 현실이 바벨론이나 바사와 같이 희망이 없어보이는 곳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도 결코 구속의 희망을 포기하시지 않으시고 간섭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만한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적으로 이해 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지만,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여서는 안된다.


8  왕의 조서와 명령이 반포되매 처녀들이 도성 수산에 많이 모여 헤개의 수하에 나아갈 때에 에스더도 왕궁으로 이끌려 가서 궁녀를 주관하는 헤개의 수하에 속하니
9  헤개가 이 처녀를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 몸을 정결하게 할 물품과 일용품을 곧 주며 또 왕궁에서 으레 주는 일곱 궁녀를 주고 에스더와 그 궁녀들을 후궁 아름다운 처소로 옮기더라


(택함 받은 자의 수동성)


택함받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모세는 자신이 스스로 무엇인가 하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40년간 광야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드셨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 전제되어야 한다.


예전에 J목사는 종종 청년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고 강조하였지만, 이는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이지, 결코 하나님의 방식은 아니다.


그 자신은 정작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에 있어서, 성적인 부도덕함에 최고가 되어있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있다.


하나님의 일은 자기의 선택과 욕심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과 장소를 기다리면서, 하나님이 부르실 때 응답하여야한다.


10  에스더가 자기의 민족과 종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이는 모르드개가 명령하여 말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11  모르드개가 날마다 후궁 뜰 앞으로 왕래하며 에스더의 안부와 어떻게 될지를 알고자 하였더라

(자신을 오픈하는 것의 위험성)


수산에서의 유다인들은, 아직 바사와 메데 사람들과 동화되지 않는 가운데,  긴장감있는 생활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비록 같은 류의 사람이 아니어서 자신을 숨길 수도 있겠지만, 성도들은 사회에서 종종 자신에 관하여 솔직하게 말을 할 때 공격을 당하기도 한다.


사람과의 관계성은 솔직하여야하지만, 솔직함과 진실이 때때로 불협화음을 야기 할 때도 있다.


자신에 대하여 오픈하는 것에는 많은 지혜가 필요하다.


오픈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숙되지 못한 공동체에서 오픈하면서 말을 할 경우에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 7:6”)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여야만 할 것이다.



12  처녀마다 차례대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기 전에 여자에 대하여 정한 규례대로 열두 달 동안을 행하되 여섯 달은 몰약 기름을 쓰고 여섯 달은 향품과 여자에게 쓰는 다른 물품을 써서 몸을 정결하게 하는 기한을 마치며
13  처녀가 왕에게 나아갈 때에는 그가 구하는 것을 다 주어 후궁에서 왕궁으로 가지고 가게 하고
14  저녁이면 갔다가 아침에는 둘째 후궁으로 돌아와서 비빈을 주관하는 내시 사아스가스의 수하에 속하고 왕이 그를 기뻐하여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면 다시 왕에게 나아가지 못하더라

(성결의 필요성)


인간인 왕에게 나아갈 때도 정결함과 오랜 시간의 준비가 필요한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아무 준비하는 것도 없이 무성의하게 나아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인간에게는 준비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이 없다.


그렇다고 외형마져도 무책임하고, 불성실해서는 않된다.


비록 그리스도의 깨끗케하심을 입어 정결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도는 자신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정결하게 가꾸고 나아갈 필요가 있다.



15  모르드개의 삼촌 아비하일의 딸 곧 모르드개가 자기의 딸 같이 양육하는 에스더가 차례대로 왕에게 나아갈 때에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가 정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더라
16  아하수에로 왕의 제칠년 시월 곧 데벳월에 에스더가 왕궁에 인도되어 들어가서 왕 앞에 나가니
17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하므로 그가 모든 처녀보다 왕 앞에 더 은총을 얻은지라 왕이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로 삼은 후에
18  왕이 크게 잔치를 베푸니 이는 에스더를 위한 잔치라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또 각 지방의 세금을 면제하고 왕의 이름으로 큰 상을 주니라


(사랑이 식어지는 시대)


사람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만큼 행복하다.


사단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불행하다.


사람이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거나, 사랑할 대상이 없는 사람은 그만큼 불행해 질 수 밖에 없다.


이 시대가 불행한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서로 사랑하기에는 환경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왕은 모든 조건을 다 가지고 있었기에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어려운 시대적 상황은 좀처럼 사랑을 실천 할 수 있는 환경을 쉽게 제공하지 않는다.


결혼 인구의 감소와 저출산율은 그만큼 사랑의 대상이 줄어든다는 외적인 증거다.


사람은 사랑할 때 가장 행복하며 사랑을 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에, 사랑하지 못할 때는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


이 시대가 마지막 때임을 알 수 있는 징조 가운데 한 가지는 사랑이 식어지는 것이다.


그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것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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