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018. 4. 30. 23:09

신명기 1장 1-18절 말씀 묵상

1  이는 모세가 요단 저쪽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

시내산에서 세우신 언약의 말씀이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우신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면, 모세를 통하여 모압 땅에서 세우신 언약의 말씀은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비록 세대가 바뀌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다.

이 언약의 말씀은 모세 앞에 서지 않은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대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되는 말씀으로서,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동안에는 변치 않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이스라엘의 근거가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가 존재하는한 영원한 것이기에 문화와 환경이 바뀌어도 변함이 없는 것이다.

세대차로 인한 대화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달하는 방법은 바뀔지라도, 해석은 동일해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문화에 순응시켜 재해석하려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현대 신학자들의 시도는 자칫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변질시킬 수 있음을 걱정해본다.


2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3  마흔째 해 열한째 달 그 달 첫째 날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알렸으나

모세는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였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포하였던 것은, 처음 아담이 에덴에서 맡았던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아담은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그리스도의 삼중직, 즉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의 역할을 감당 했어야했다.

아담은 모세와 대조적으로, 에덴에서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명하신 선악과 금령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또한 들짐승 뱀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사단에게 말하였던 것과 같이, 분명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못하였기에, 선악과를 범하는 사건의 유발 요인 가운데 한 가지가 되었던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은, 에덴을 관리해야했던 아담에게 주어진 말씀과 같이,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존속하기 위한 필수 조건들이었던 것이다.


4  그 때는 모세가 헤스본에 거주하는 아모리 왕 시혼을 쳐죽이고 에드레이에서 아스다롯에 거주하는 바산 왕 옥을 쳐죽인 후라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길을 막았던 이들이다.

이들과의 전쟁을 단순히 세상의 일반적인 전투에 적용하면 안된다.

세상적인 관점에서의 전쟁은 강자가 약자에 대한 승리를 선포하며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는 인간적인 싸움이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의 전쟁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것이다.

간혹 아모리 족속에 대하여 어린 아이까지도 진멸하라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성경에서 상처를 받고 기독교를 떠나는 이들이 있지만, 이는 전쟁을 세상적인 관점으로 해석함으로 인한 것이다.


이와같은 패러다임의 충돌은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하나가 되기 어려운 한가지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5  모세가 요단 저쪽 모압 땅에서 이 율법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

왜 모압 땅에서인가?

모압 땅에서의 선포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하기 전단계에서의 선포이다.

의사가 수술을 하는데 있어서, 수술 중에 요구되는 협조사항을  수술을 하기 전에 환자에서 말하는 것은 설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수술 중에 생기는 문제에 대하여 의사의 책임이 경감되는 반면에, 만약에 수술 후에 문제가 생긴 후에 설명을 한다면 이는 설명이라기보다는 변명이 된다.

이러한 변명은 전적으로 의사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되는 가나안에서의 협조 사항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선포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 더 나아가 언약으로 말미암아, 비협조로 인하여 가나안 땅에서 생기는 문제는 전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가 잘못을 하고서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율법이나 자연법을 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상황에서 미리 알만한 말씀을 하신다.

의사가 사전에 협조사항을 설명하였는데도 협조를 안하여 생기는 문제로 의사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 양심과  자연법등을 통하여 미리 말씀하셨기에 인간은 삶 가운데 생기는 문제에 대하여 책임을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6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산에 거주한 지 오래니

과정은 과정일 뿐이기에 머무르거나 지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던 호렙 산에서 계속해서 머무르면 안되는 것은, 마치 변화 산에서 베드로가 산에 장막을 치고 거하기를 원했던 모습과 연계시켜 생각할 수 있다.

삶의 여정도 목적이 될 수가 없는 과정일 뿐이다.

신자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곳에 계속 머물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을지라도, 이 땅은 신자가 거쳐가야할 과정일 뿐이다.


7  방향을 돌려 행진하여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가고 그 근방 곳곳으로 가고 아라바와 산지와 평지와 네겝과 해변과 가나안 족속의 땅과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 가라
8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지니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야할 약속의 땅은, 에덴에서 아담이 들어가야만 했던 영원한 안식의 땅에 대한 모형이며, 성도에게는 영원한 안식처인 하늘 나라에 대한 모형이다.

가나안에서의 실패는 인간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영원한 땅에서 안식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자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새옷을 입을 때를 기다리며, 소망 가운데 이 땅의 역경을 헤쳐나아가야 할 것이다.



9  그 때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는 홀로 너희의 짐을 질 수 없도다

하나님도 삼위 하나님의 역할 분담으로 인하여 구속 사역을 효율적으로 감당하실 수 있으셨다.

역할 분담은 권위의 위임과 함께 이루어진다.

공동체 가운데 짐을 진 권위자들의 권위는, 궁극적으로 삼위 하나님의 권위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공동체의 원형은 삼위 하나님의 공동체이며, 인간은 지음을 받을 때 삼위 하나님의 공동체적 형상을 부여받았다.

타락한 인간은 공동체적 속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동체 가운데 왜곡된 권위를 행사함으로 말미암아,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것이다.

직임을 통한 역할의 분담은 삼위 하나님의 공동체성의 표현이면서, 또한 공동체의 중요성과 원리를 드러내주는 것이기에, 신자는 공동체적 역할 분담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만 한다.



10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번성하게 하셨으므로 너희가 오늘날 하늘의 별 같이 많거니와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가 얼마나 확장 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공동체의 지체로서, 각자의 역할을 유기적으로 감당함으로서, 확장된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내는 역할 분담을 하여야한다.



11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확장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천지 만물에 가득하듯이 하나님 나라 백성은 하나님의 풍요를 경험하는 복을 누리는 것이다.

이 모든 풍요는 오직 서로가 서로에게 복종함으로서, 수직적 순종이 수평적 복종으로 실천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모세가 수령을 세우고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은 각자의 지위를 높이는 계급장의 수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각자의 공동체성을 통하여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수직적 불순종은 수평적 복종의 붕괴를 가져왔으며, 천 배가 많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소멸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한국 교회의 붕괴와 교인 수의 급속한 감소의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한 가지는, 하나님의 권위를 입은 교회의 직분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의 영광을 취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2  그런즉 나 홀로 어찌 능히 너희의 괴로운 일과 너희의 힘겨운 일과 너희의 다투는 일을 담당할 수 있으랴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일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인간이 다른 사람의 일을 담당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비록 모세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서 이를 감당하였지만, 모세가 사라질 이스라엘에게 모세의 공백은 결정적 고통이 될 것이다.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권위와 은혜를 위임받은 이가 이를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교회 공동체에서는 성령의 은사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각자의 은사대로 역할 분담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완성시켜나아가야 할 것이다.


13  너희의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 받는 자들을 택하라 내가 그들을 세워 너희 수령을 삼으리라 한즉

지혜와 지식은 동시에 겸비되어야한다.

지혜만 있고 지식이 없는 이들은 생각할 수 있는 범위가 자신의 삶의 경험으로만 제한될 수가 있고, 지식은 있는데 지혜가 없는 사람은 자칫 칼을 휘두를 수가 있다.

지혜는 삶의 연륜이 없이는 쉽지가 않지만, 그보다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얻는 지혜만이 참다운 지혜가 될 수 있다.

교회의 장로는 목회자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부분을 감당해야하는 택함받은 이들이다.

간혹 젊은 이에게 장로로 위임을 주는 경우가 있고, 어떤 경우는 나이가 많은 이들을 무조건 장로로 추대하는 교회도 있지만, 그보다도 삶의 연륜과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한 이들이 더욱 지혜롭게 일을 할 수 있음을 본다.


14  너희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당신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좋다 하기에

모세는 백성들의 동의를 얻은 것은 수령을 세우는 일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기보다는 지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에는 하나님의 명령이 없었기에, 모세도 장인 이드로의 조언에 따라 이 일을 수행하였던 것을 본다.

모사가 많으면 경영에 패함이 없다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실행하여야 할 부분도 있지만, 같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해야할 경우도 있다.

종종 하나님의 명확한 말씀이 없는 지혜에 속하는 부분에서의 독선은 종종 공동체를 파괴시키고 분열시키기도한다.



15  내가 너희 지파의 수령으로 지혜가 있고 인정 받는 자들을 취하여 너희의 수령을 삼되 곧 각 지파를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조장을 삼고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조장은 계급이 아니라 역할의 부분이 다를 뿐이다.

계급 의식은 죄성으로 말미암은 왜곡된 공동체성의 결과물일 뿐이다.


16  내가 그 때에 너희의 재판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너희의 형제 중에서 송사를 들을 때에 쌍방간에 공정히 판결할 것이며 그들 중에 있는 타국인에게도 그리 할 것이라

집권자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 직무에 충실하여야한다.

집권자의 판결은 하나님의 심판의 그림자이며 모형이기에 더욱 공정하여야한다.

이스라엘의 타락은 공정한 판결의 훼손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혜로운 솔로몬과 달리 르호보암의 굽은 결정은 이스라엘의 분열을 초래했다.

이세벨은 아합으로하여금 공정한 판결을 하지 못하게 했다.

공정한 판결의 손상은 하나님 나라로서의 기능의 상실이다.

돈이 많은 자가 이긴다는 교단 총회 재판국의 현실은, 한국 교회가  하나님 나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7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하였고

재판장의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유래되었기에, 재판장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만 한다.

소속 집단의 부패성은 공정하지 못한 재판으로 가늠된다.

교회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한 가지인 치리가 사라진 교회의 현실은, 교회가 치리를 할 수 있는 자격 자체가 안되고있음을 보여준다.

교회의 부패는 사회를 정화시킬 수 있는 기능의 상실로 이어지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재촉할 뿐이다.

이스라엘의 분열은 르호보암과 같이 지혜없는 자의 판결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스라엘은 결국 공정한 재판의 상실로 멸망을 초래하였다.



18  내가 너희의 행할 모든 일을 그 때에 너희에게 다 명령하였느니라

가나안 땅에서 이를 실행하지 않음으로써 일어나는 모든 책임은 이스라엘에게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이 행할 하나님의 명령이며, 이스라엘이 맹세함으로 맺어진 언약이기에,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행위 언약 아래에서 생활을 시작하게되는 것이다.

새관점에서는 이스라엘은 이 땅에서 실현된 하나님 나라라고 주장하지만, 행위 언약 아래에 있는 백성은 아직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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