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4장 44절- 5장 1-10절 말씀 묵상
44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포한 율법은 이러하니라
출애굽 세대에게 시내산에서 선포된 율법이 주로 출애굽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선포되었다면, 가나안 입성 직전에 모압의 땅에서 선포된 율법은 가나안에서의 삶을 염구에 두고 선포되는 하나님의 율법이다.
새관점에서는 모압 땅에서 선포된 율법으로서의 모세 언약이 아브라함 언약의 실현이라고 보고있다.
모압 땅에서 선포된 모세 율법이 아브라함 언약의 실현이라면, 아브라함 언약은 모세 언약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세가 모압 땅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포하는 율법은 가나안 땅에서 은혜의 삶을 누리라고 주었다고 보기에는, 가나안에서의 삶이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을 결정하는 선택의 장소임을 말하고있다.
모세가 선포하는 십계명은, 은혜를 입은 백성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 주어졌다기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였을 때 그들이 죄인임을 증명해주는 기준으로 제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가나안의 이스라엘이 구속받은 하나님 나라라고한다면, 성경의 중심은 가나안의 이스라엘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 언약이 모세 언약으로부터 시작되어 새언약으로 이어지면서 완성되는 과정을 생략하는 것이다.
모세가 모압 땅에서 선포하는 십계명을 비롯한 하나님의 율법은 가나안 땅이 최종적 정착지가 될 수 없음을 내포하고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서 범죄하게되면, 이방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이는 가나안 땅에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임을 말하는 것으로서, 모세 언약이 은혜 언약이 아니라 행위 언약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톰 라이트는 개신교가, 몸통이되는 유대 이스라엘을 생략하고 머리와 꼬리만을 강조한다고 주장하지만, 새관점은 몸통인 그리스도의 새언약을 꼬리로 만들어 버리고서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이다.
모압 땅에서 선포되는 모세 언약은,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이 누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은혜의 선포가 아니라, 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기 위한 조건에 부합되는 지는 보여주기 위한 기준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45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모세가 증언과 규례와 법도를 선포하였으니
모세의 역할은 율법으로 대변된다.
율법의 궁극적 목적은 죄인의 죄를 드러냄으로서 죄인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안식처인 참된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기에, 모세의 역할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까지 인도하지 않고, 그들을 가나안 앞까지만 인도한다.
모압 땅은 가나안 땅이 아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가나안 입성을 앞둔 모압 땅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인 십계명과 율법을, 자연법이라는 방식을 통하여 전달받고 있다.
모세가 선포하는 증언과 규례와 법도는 모든 이들 앞에 놓여있다.
46 요단 동쪽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서 그리하였더라 이 땅은 헤스본에 사는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속하였더니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그를 쳐서 멸하고
무장도 되어있지 않았고 군사도 정비가 되어있지 않았지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이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음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 만을 섬기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하심이다.
성도들도 삶 가운데서 이러한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하심이 있다.
신자가 하나님 앞에 서기까지는, 비록 은혜 받을 자격이 없는 자였지만, 하나님의 가즉한 은혜가 함께 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47 그 땅을 기업으로 얻었고 또 바산 왕 옥의 땅을 얻었으니 그 두 사람은 아모리 족속의 왕으로서 요단 이쪽 해 돋는 쪽에 살았으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아브라함이 죄 가운데 경험한 아모리 족속의 땅은, 성도가 약속 가운데 경험하는 현재의 삶의 환경과 유사하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 한 기간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가득하기까지 였다.
아브라함은 아모리 족속의 마무레 상수리 나무 수풀 근처에서 거하면서 그들의 죄악을 봤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들 가운데 이방인으로 거하였지만, 자신의 자손이 그들을 진멸하고 그 땅을 차지한 것이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성도가 비록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지만, 이 땅에 죄악이 가득할 때 하나님의 심판하심으로 이 땅을 새 옷과 같이 변화시켜서 성도들에게 주실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48 그 얻은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장자리의 아로엘에서부터 시온 산 곧 헤르몬 산까지요
49 요단 이쪽 곧 그 동쪽 온 아라바니 비스가 기슭 아래 아라바의 바다까지이니라
영원한 가나안을 바라보는 성도는 비록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제한된 삶의 환경 가운데 있지만, 장차 임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는 제한된 환경을 넘어서는 곳이다.
1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의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2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3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십계명은 모세 언약의 근간이 된다.
모압에서의 모세 언약은 시내산 언약을 갱신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을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 언약을 통하여 이루게될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는 과정 가운데 있다.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머물기 위한 언약이 아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아담의 범죄에서 해결받지 못한 백성이기에, 그들에게 주어지는 십계명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의 근거가 된다.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가 죄로 규정되는 비참한 경험을 할 뿐이다.
4 여호와께서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매
5 그 때에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내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6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시내산에서 불 가운데 하신 말씀은, 처음 아담에게 하신 선악과 금령의 재연이었다.
에덴에서 마땅히 지켜져야했었지만,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손상된 법을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더 반복하신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십계명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 안에 세겨졌던 법을 구체화하신 것이다.
신적 기원을 갖는데서 인간의 마음에 새겨진 자연법과 십계명은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있다.
십계명은 자연법을 실체화한 법이며, 율법은 자연법과 십계명을 구체화한 법이다.
인간의 삶 가운데 주어진 자연법과 율법은, 궁극적으로 죄를 드러냄으로서,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한 기능을 하고있다.
새관점은 율법 자체가 은혜 안에 머물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에,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그리스도가 없이도 그들은 은혜 안에 머무는 구원받은 백성이 되는 것이다.
율법을 선포한 모세가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데리고 가지 못하였듯이, 율법 자체는 죄인을 영원한 안식처인 영적인 가나안으로 인도힐 수가 없다.
7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이는 첫번째 계명으로서 가장 우선되는 명령이다.
인류의 역사는 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갔다.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 즉 시간과 공간의 모든 영역에서 신과 관계없이 살아온 민족이나 부족은 없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신을 섬길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에대하여 분명한 말씀을 하신다.
하지만 인간은 타락한 아담의 후손이라는 사실로 인하여, 이미 다른 신에게 종속되어있는 존재이기에, 자신의 의지로 이를 실행 할 능력이 없다.
8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형상을 만드는 행위는, 지배하여야할 대상으로부터 지배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미 지배를 받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를 형상화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현대인들도 마찬가지다.
현대인들은 상황이라는 무형의 형상에 종속되어있다.
현대인들은 상황을 만들어감으로서, 그 가운데 자신을 완성시키려한다.
하나님은 상황을 넘어서시는 분이시며, 진리 또한 상황을 넘어서는 것이다.
인간은 상황에 종속되어있다.
성도는 상황에 대한 종속 이전에 말씀을 묵상하며, 상황 가운데, 혹은 상황 위에서 역사하시고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인식하여야만 할것이다.
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것은 우선 아담에게 요구되었던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을 사랑하였다면, 인류는 영원한 은혜 가운데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아담은 범죄함으로서, 하나님을 미워하는 길을 열어주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영원히 저주하지 않으시고, 죄 가운데 구원하시고자, 구속주를 이 땅에 보내셨다.
하나님은 영원한 저주 가운데 있어야 할 죄인을 구원하시는 사랑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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