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018. 6. 23. 22:25


신명기 31장 14- 29절 말씀 묵상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죽을 기한이 가까웠으니 여호수아를 불러서 함께 회막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에게 명령을 내리리라 모세와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회막에 서니
15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에서 장막에 나타나시고 구름 기둥은 장막 문 위에 머물러 있더라


성령은 창조의 주체자로서 아담으로 인하여 타락된 세상을 새롭게 하는 창조 사역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새롭게 시작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구름으로 표현되는 성령의 임재와 더불어 나타나신다.

성령은 모든 창조 사역의 주체가 되신다.

성령이 없이는 어떠한 창조 사역도 불가능하다.

장막 문 위에 머무른 구름과 같이,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것도,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16  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조상과 함께 누우려니와 이 백성은 그 땅으로 들어가 음란히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요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서 우상을 섬길 것을 아시고 계셨으면서도, 그리심산과 에발산에서의 축복과 저주를 선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서 우상을 섬길 것을 아시고 계셨으면서도, 출애굽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어려운 여건에서도 힘쓰시고 애쓰시며, 이스라엘 자손들을 가나안에 입성시키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결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음을 잘 아시고 계시면서도 감추어진 비밀을 나타내시고자 절망의 과정을 통과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에 의해서 세워질 수가 없다.

가나안 땅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얼마나 부패한 존재인가를 고발하는 곳이다.

세상에서는 아무리 멸균처리한 음식이라도 부패할 수 밖에 없는 속성을 가지고있다.

멸균처리된 음식과 같이 깨끗하게 처리된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결코 이 세상에서는 깨끗함이 유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것은, 아무리 외적인 환경을 바꾼다고하더라도 인간은 근본적으로 부패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줌으로서, 오직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근본적인 해결책이심을 보여주시고자하신 것이다.



17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내림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냐 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주시고자 이스라엘 자손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피상적이고 현상적이다.

피상적이고 현상적인 생각은 일차적 원인을 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근원에 자리잡고 있는 이차적 원인을 알 수 없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임한 문제를 자신들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쪽에 책임을 돌리려고한다.

현대인들은 모든 문제의 원인이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일차적으로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는, 모든 일차적인 문제가 사람에게 있으며, 이를 해결하시고자하는 하나님의  깊으신 비밀을 드러내시기 위한 것이다.

삶의 과정 가운데 만나는 모든 고난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구원을 이루시고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과정들임을 생각해본다.



18  또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들을 따르는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하나님은 무조건적으로 함께 하시지는 않으신다.

거룩하지 못한 곳은 하나님과 공유될 수 없는 곳이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심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숨으신 곳에서의 상황이 어떠한지를 경험하게 함으로서, 하나님의 귀하심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불의와 함께 하시지 않으신다.

불의한 이들에게 악행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불의한 이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신다.

현재 임하는 일반 은총 가운데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근거로하는 제한적인 것이기에, 성도는 이를 확대해석하여서는 안되며, 오직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19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노래를 통해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축복과 저주를 위한 증거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심판의 근거가 된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말씀이다.



20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아쉬워서하는 선택은 필요가 충족되면 더 이상 선택을 지속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가나안에 입성하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을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존재이다.

설령 자유롭게 선택을 하였더라도 상황이 바뀌면 마음이 변할 것이다.

육적인 축복은 필연적으로 영적인 타락을 수반하게되기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지속적으로 육적인 축복을 해 줄 수가 없으시다.

외적으로 확장된 교회치고 변질되지 않은 교회가 없다.

한국 교회는 외적으로 세계 제일의 교회가 많은 만큼이나 변질과 부패도 세계 제일에서 뒤지지 않는다.

한국 교회들은 예배당 건물을 지어놓고는 성전 봉헌이라는 거짓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교회 건물에 성전이라는 용어를 붙이면서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모르고 자기 열심에 사로잡혀있는 이들이 한국 교회 교인들의 현주소다.

그리스도가 참 성전이 되셨기에, 교회 건물에 성전이라는 이름은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21  그들이 수많은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



이스라엘이 어떠한지를 아시면서도 가나안에 들이는 것은 그들이 심판받기에 합당한 자임을 증명하면서, 또한 구원자의 필요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톰 라이트의 주장은,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에써서 외면하면서 하는 주장이다.


22  그러므로 모세가 그 날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쳤더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부패를 증명하기 위한, 일종의 마음의 찔림을 얻기 위한 노래이다.


23  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시니라


어차피 이스라엘 자손은 인도자가 없이는 안식의 땅인 가나안에서 안식을 누릴 수가 없다.

타락 이전의 아담도 스스로의 힘으로 안식에 들어갈 수가 없었으며, 타락한 아담의 자손은 여호수아의 손에 이끌려 안식의 땅에 들어와도, 하나님의 안식을 누릴 수가 없었다.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인도자 여호수아가 필요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택함받은 성도는 중보자되신 그리스도의 도움이 없이는 안식에 들어갈 수가 없다.

여호수아는 안식의 땅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안식의 주인이 되신다.



24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기록에 남기는 것은 영원하며, 증거가 된다.

단순히 말만하고 사역을 마쳤을 때는 나중에 다른 말을 할 수가 있다.

기록된 율법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대한 축복과 저주의 증거가 되었듯이,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말씀은 구원과 심판을 선언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25  모세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26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언약궤 곁에 둔 모세의 율법은 레위 사람들에 의해서 보존되고 선포되어야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속적으로 선포되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아담은 에덴에서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선포하여야했는데, 하와는 뱀의 유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인지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나안에서 성전 한구석에 처박혀있던 성경은, 레위 지파에 의하여 반포되었다는 기록이 없다.

요시아왕은 율법의 말씀을 뒤늦게 발견하고서 유월절을 지켰지만, 이미 너무나도 늦었던 것이다.

성도에게 성경은, 어두운 이 땅을 살아가는 유일한 삶의 지침이다.



27  내가 너희의 반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 내가 살아서 너희와 함께 있어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모세는 눈 앞에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증거였다.

가시적인 존재는 지속될 수가 없다.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과 더불어 성령의 강림과 내주하심은 성도에게 비가시적인 영속적인 말씀이리다.

성도는 육신의 연약함을 입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기에, 가시적인 말씀과 더불어 성령의 내주 하심에 힘입어 살아가야한다.



28  너희 지파 모든 장로와 관리들을 내 앞에 모으라 내가 이 말씀을 그들의 귀에 들려주고 그들에게 하늘과 땅을 증거로 삼으리라


장로와 관리는 일종의 책임자들이다.

책임자들이 부패할 때 사회는 희망이 사라진다.

일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현재의 삶은, 권세자들의 책임있는 행동이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될  것이다.



29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길을 떠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하게 하므로 너희가 후일에 재앙을 당하리라 하니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이들이 하나님 앞의 자리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간이 있어야할 자리는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상황은, 자신의 존재가 어떠한지를 증명해주는 상황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문제가 드러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스스로 부패한 자이기에 영원한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는 존재이며, 스스로의 부패함을 고백하여야만, 구원자에 의해서 영생에 들어갈 수 있는 존재이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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