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018. 6. 26. 21:43

신명기 32장 34-47절 말씀 묵상



34  이것이 내게 쌓여 있고 내 곳간에 봉하여 있지 아니한가
35  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


마치 댐에 물이 고이듯이,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가운데 가득 채워지고있지만, 댐 아래에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쌓여가는 것을 알 수가 없다.

그들의 환란 날은 이스라엘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날이며,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속 사역으로 인해서, 사단은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것과 같이 떨어져 버린 것이다.



36  참으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불쌍히 여기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


하나님의 때는 하나님의 백성이 완전히 무력해진 때에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백성이 조금이라도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다면, 하나님의 때는 아직 이르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할 때 오는 것이다.

인간의 교만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신앙이다.

어떤 선교회 대표는 자신의 어머니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구원을 받았는지 걱정하면서, 불쌍하다고 고백을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신앙을 무엇인가를 하여야하는 것과 연관시키며, 행함을 구원과 연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애인이나 중환자실에 있는 사람은 구원의 기회가 없는 것인가?

혹은 열심히 신앙 활동을 하다가 치매가 들어서 이상한 행동을 하게되면 구원은 취소되는가?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께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오시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와 자신감과 교만이 하나님의 길을 막고 있을 뿐이다.

가나안의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교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막은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교만한 마음이 완전히 꺽이기까지 기다리셨다.

그리스도는 완전히 무기력해진 이스라엘 가운데 오셨으며, 열혈당과 같이 살아서 혈기를 부렸던 이들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더불어 완전히 파멸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진정한 구원은 오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고백과 더불어 두 손들고 하나님의 다가오심을 맞이하는 것이다.



37  또한 그가 말씀하시기를 그들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그들이 피하던 반석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을 거부하는 이들은 믿는 구석이 있었지만, 실상은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들이 믿었던 신은 하나님을 대적할 뿐, 아무 것도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는허상이며, 오직 창조자는 하나님 한분 뿐이시다.

믿었던 것들은 때가되면 없어진다.

현대인들은 문명과 기술에 의지하여 자신을 믿는다.

신칼빈주의는 문명과 기술의 발전을, 원시적 에덴에서 종말론적 천국에  다가가게하는, 인간이 감당해야할 창조적 사명이라고 말하지만, 문명과 기술은 인간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할 뿐이다.

현대 문명의 기술과 힘은 더 이상 믿고 의지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인간을 위한 문명 기술이 인간을 삼켜버릴 것이다.



38  그들의 제물의 기름을 먹고 그들의 전제의 제물인 포도주를 마시던 자들이 일어나 너희를 돕게 하고 너희를 위해 피난처가 되게 하라

39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40  이는 내가 하늘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내가 영원히 살리라 하였노라


아무리 패역한 민족이라도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에 구원의 길이있다.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상황이 좋지 않다고 그 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에서는 항상 문제가 문제로 드러나게 되어있다.

교회에서 많은 문제가 드러나는 것도, 교회는 인간의 문제를 드러내고, 드러난 문제를 해결받는 곳이다.

교회는 아무리 문제가 많이 드러나도 하나님이 승리하시는 곳이다.

교회가 아무리 부패하고 사회의 욕을 먹어도, 교회는 구원의 통로가 되는 곳이다.



41  내가 내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이 정의를 붙들고 내 대적들에게 복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할 것이라
42  내 화살이 피에 취하게 하고 내 칼이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 곧 피살자와 포로된 자의 피요 대적의 우두머리의 머리로다

하나님의 구원은 대적을 멸함에서 성취된다.

이스라엘 자손들을 타락시킨 것도 대적들이다.

대적들은 이스라엘 자손들 한 가운데서 이스라엘 자손을 유혹하였으며, 이는 아담을 유혹한 사단의 무리였다.

아담이 사단에 미혹되어 그와 한 부류가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대적들과 한 부류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승리는 대적들을 물리치심으로서 성취된다.


43  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노래의 말씀은 대적자들인 이방인의 구원을 선포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을 구원에 참여시키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들이시고,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우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서  구원을 성취하신다.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대적하고 대적하였던 이들도, 이스라엘 백성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아무리 거역하고 다른 길로 간다고 하더라도, 예루살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실행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선택하신 것은 자신의 유업을 이을 백성으로 선택하신 것이며, 이스라엘 자손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자격이 갖추어진다.

유업을 이을 백성이 유대 이스라엘이나 아니면 신약의 신자들이냐는 톰 라이트의 새관점으로 말미암아 논쟁이 되기 시작한다.

톰 라이트의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국가적 저주를 받음으로, 유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유업을 받는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심으로서 얻으신 적극적 순종의 의와, 아담의 범죄로 인한 인간의 죄값을 담당하신 십자가에서의 수동적 순종의 의를 이루시고서, 이 두 가지 의를 자신을 믿는 자에게 전가시키심으로서,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신자들을 부르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아담의 후손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죄에 대한 것이며, 단순히 이스라엘의 행위적 죄를 위한 것으로 제한되지는 않는다.

톰 라이트의 주장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방식을 보여준 것이라고 하면서, 사역의 대상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에 제한 시킴으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 개념을 제거하여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다.

신명기의 주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독수리의 눈동자와 같이 지키실 것이며, 만국을 벌하시면서, 찬양받으실 하나님의 구속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구속이 원수에 대한 보응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사단에 대한 징계와 더불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미워하고 대적하였던 이방 나라는 궁극적으로 아담 안에서 이루실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방해하였던 사단의 세력과 한 무리였다.

원수에 대한 보복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사단의 세력을 물리치심으로서 이루셨다.

톰 라이트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두 번째 아담으로서의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방해하기 위해서, 둘째 아담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처음 아담과 연계시키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이스라엘의 국가로 제한 시키며, 죄의 본질을 아담으로부터 이어진 죄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행위적 죄로 제한 시킴으로서, 그리스도는 구속주가 아니라 삶의 모범을 보여주신 분으로 본질을 바꿈으로서,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훼방하고 있다.


44  모세와 눈의 아들 호세아가 와서 이 노래의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여 들리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불러야할 이 노래는 원수에 대한 승리를 선포하는 노래이다.

이스라엘의 원수는 참 이스라엘되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원수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모형인 아담을 대적하는 자였다.

대적자 원수는 비록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처음 아담을 실족시켜 자신의 수중에 넣었지만, 둘재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처음 아담 안에서의 패배를 승리로 이끄셨다.



45  모세가 이 모든 말씀을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46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의 마음에 두고 너희의 자녀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47  이는 너희에게 헛된 일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생명은 삶과 동의어로서,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가나안에서의 삶의 조건이다.

성도에게 주어질 영원한 가나안에서의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여야하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서, 말씀이 존재 자체에 새겨진 삶을 살게 될 것이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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