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23. 10. 27. 07:46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 묵상(4-거룩)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변화된 거룩의 문제)

하나님의 임재에는 거룩과 하나님의 나라가 항상 주제가 된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거룩하지 않은 어떠한 것도 거룩에 참여할 수 없다.

인간 또한 거룩한 이들이 아니기에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에서는 더 이상의 조건적 거룩을 요구하시지 않으시는 임재 방식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인간에게서는 더 이상 거룩을 기대할 수 없으시기에 하나님께서 마지막 방법을 사용하신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심은 이전에 요구되었던 거룩함이 더 이상 요구되지 않는 하나님의 새로운 임재 방식이 되었다.

이전의 임재 방식은 철저하게 거룩을 요구하셨다.

시내산에 강림하신 하나님은 회중들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회중 가운데 성막으로 임재하셨던 하나님은 회중 가운데 임재하셨지만 시내산에서와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분리되신 분이셨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지성소에서 철저하게 분리되었으며, 거룩의 문제가 있는 불결한 이들이나 죄를 지은 이들은 철저하게 성소로부터 분리되었다.

하나님께서 거니시던 에덴 또한 순종이라는 조건으로 아담의 거주가 허용되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들 가운데 거하심은 거룩의 문제를 포기하신 것이 아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심은 범죄한 아담에게 약속하신 구원(창 3:15)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행동 방식이다.


(삶의 방식의 변화)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심은 하나님의 목적을 하나님께서 직접 이루시기 위함이며, 인간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음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심은 택한 이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유기할 이들에게는 심판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행동 방식이다.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와 그리스도의 육신이 되심은 구원을 얻기 위한 인간의 행동 방식과 사고 방식에 대한 종식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구원을 얻기 위한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접근 방식은 더 이상 요구되지 않는다.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육신적 접근방식은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께 종속되어야만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은 칸트가 말한 것과 같은 하늘과 땅의 철저한 분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육신으로 오심은 육신에 종속된 우리에게 조건없는 초대장을 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육신으로 오심은 육신에 종속된 이들에게 안식을 선포하는 것이다.

초대받은 이들은 안식을 누릴 권리가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은 육신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요구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던 이전의 육신에 종속된 삶의 방식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은 더 이상 육신의 종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죽음의 문제에서 자유할 수가 있다.

성도에게 육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수단이기에 성도에게 육신은 더 이상 삶의 목적이 될 수가 없다.

육신은 죽음으로 종식되지만 그 이후에는 영원한 생명의 삶이 이어진다.

성도는 비록 육신에 묶여 범죄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이는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을 기다리는 바벨론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임시적인 삶과 같은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 이 세상이 거룩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은 변화될 수 없다.

성도는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수는 있어도 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문화변혁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신칼빈주의적 사고는 인간의 죄성을 간과한 것이다.

카이퍼와 바빙크는 세상을 변화시켜 하나님 나라를 만들고자 하였지만 그 결과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철저한 파괴였다.

변화되지 않는 세상으로 인하여 바빙크는 좌절한 가운데 우울증을 겪으면서 임종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은 최후의 심판 때 까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지만 성도는 이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하였지만 이 세상은 죄 가운데 운행되며 여전히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다.

이 세상은 비록 죄를 짓고 있지만 최후의 심판 때까지는 노아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자연법으로 운행될 것이다.

성도는 이 세상 나라에 속하여 있는 동시에 이 세상에 임한 하나님 나라에 속하여 있는 두 나라 백성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로마카톨릭은 신정체제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려 하였지만 결과는 철저한 부패와 타락이었다.

종교개혁 후에 일부 재세례파의 뮌스터 장악 사건은 이 땅에 외적인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수 없음을 보여주고있다.

가끔 이단 교주들은 자신들만의 동산을 세워 하나님 나라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속이는 거짓일 뿐이다.

인간은 육신적으로 거룩해질 수 없다.

아무리 거룩한 삶을 사는 성도라 할지라도 사망의 몸에서 자유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임재는 더 이상 육신적인 거룩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임재로 세상이 변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결과적 행동 방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성도는 이 세상을 두 가지 방식으로 살아가야한다.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임하지 않았기에 이 세상의 자연법을 존중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할 것이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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