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장 1~11절 말씀 묵상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데오빌로 각하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자의 본을 보여준다.
어떠한 관계성에서든지 복음은 관계성을 통해서 전파된다.
삼위 하나님의 공동체적 관계성의 형상을 입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공동체의 파괴를 경험하지만 복음은 두 번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에 의하여 깨어진 공동체의 회복을 경험하게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궁극적으로 깨어진 공동체가 어떻게 회복되는가를 사도들의 행적을 통하여 보여주고있다.
문화칼빈주의에서는 문화나 사회변혁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촉구하지만 사도들이 보여준 행적은 그리스도의 지상명령, 즉 대위임령을 근거로하고있음을 보여준다.
사도들의 행적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 나라로서의 공동체의 회복이다.
공동체의 회복은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누가가 데오빌로 각하에게 전하였던 복음과 달리 과거 한국교회의 국가 조찬기도회는 한국 교회가 어떻게 권력에 아부하면서 커졌는지를 보여주고있으며, 한국 교회가 왜 진정한 공동체성의 회복과 거리가 멀 수 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고있다.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그리스도의 부활하심 이후의 사십 일동안의 행적은 이 땅에 시작된 실체로서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것이었다.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서의 가나안을 준비하는 40년의 광야 생활이 불순종으로 인한 징계의 시간이었는데 반하여 부뢀하심과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40일 간의 행적은 하나님 나라의 실체가 이 땅에서 시작되었음을 선포하시는 시간이었다.
40일은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였던 기간이었으며, 기다림의 시간이며, 더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 충족된 시간이었으며 또한 완성의 시간이었다.
그리스도의 사십 일간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시작을 알리기에 충족된 완전한 시간이었다.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사도들은 성령이 임하기까지 참복음에 대하여 깨닫지를 못했다.
성령이 임하시기 전에 사도들이 알고있었던 예수는 단지 인간적인 차원의 가르침뿐이었다.
사도들은 성령이 임하시고 나서야 참된 복음이 무엇인지 깨닫게되었다.
사복음서만을 강조하는 많은 신학자들은 예수와 바울을 대립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며, 복음을 윤리적 관점에서 해석하려고한다.
이들은 예수를 믿음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따름의 대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톰 라이트가 주장하는 새관점이다.
새관점은 유대교의 틀에다 복음을 짜맞추어 넣었기에 예수를 믿음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아직 성령 세례를 받지 않은 제자들은 예수께 이스라엘의 회복이 언제인지를 물어보았듯이 유대주의적 관점에서 성경을 보는 새관점주의자들에게 예수는 오직 유대교의 회복을 위한 존재일 뿐이다.
새관점주의자들은 기독교를 유대교에 종속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복음을 재해석하고있다.
성령이 임하시기 전에 보는 예수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새관점주의자들이 보는 복음은 비록 인간적으로 매력적이지만 그 안에 참된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다.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은 홍해라는 물의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 되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있었는데, 사도들은 성령의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육적인 세례는 어디까지나 모형과 그림자로서 실체를 예비하고있다.
성령은 창조 사역자로서 태초에 수면 위를 운행하셨고, 노아 홍수의 물을 바람으로 말리셨고, 이스라엘 백성들로하여금 홍해를 건너게하셨으며, 광야에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가나안 입성을 준비하게하셨고, 솔로몬 성전을 구름으로 덮으셨으며, 예수님의 세례에 비둘기 같이 임하셨고, 이제 사도들에게도 임하셔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공식적으로 세우신다.
첫 아담이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던 것과 같이 성령의 창조 사역은 점진적이었으며, 이러한 사역들은 실체로서의 하나님 나라를 창조하시기 위한 모형과 그림자였다.
성령 세례는 실체로서의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였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경험하고도 진정한 하나님 나라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로부터 3년간의 직접적인 훈련에도 불구하고 성령이 임하시지 않음으로해서 깨달음의 한계를 노출하였다.
목회자들도 마찬가지로 신학교에서의 훈련 과정을 이수하면서 성경에 대한 많은 지식을 쌓는다고 하더라도 성령의 내주하심이 없이는, 새관점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복음을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은 참된 이스라엘 나라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에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의 때에 대하여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대답하셔도 그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시고서 사도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지혜롭게 되면서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게되었고 더 이상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주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참된 이스라엘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사도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 참된 이스라엘로서의 민족적 이스라엘을 넘어서는 하나님 나라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제자들의 관심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제한되어있었지만 예수님께서 명하신 지상 명령은 땅끝까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었다.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갈릴리 사람들만 그리스도의 승천을 보았지만 다시 오실 때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오신다.
그리스도의 승천 당시에는 교회가 제한적이었지만 재림시에는 전 세계적인 교회의 확장으로 인해서 재림시 모든 성도가 알 수 있도록 인식의 범위가 확장될 것이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베후 3:10)”
천사들이 흰 옷을 입은 사람으로 나타났었듯이 마지막 때에는 천상의 영역upper-register과 지상의 영역lower-register이 서로 하나가되는 세상이 도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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