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18. 1. 5. 00:41

사도행전 2장 37-47절 말씀 묵상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복음은 구걸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죄에 대하여 분명한 선포를 하였다.


어떤 이들은 복음을  마치 보험을 드는 것에 비유하면서 권하는데 이는 성경적인 방식이 아니다.


복음은 죄에 대한 심각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하여야한다.


한국교회의 타락은 죄에 대한 인식을 거부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교회의 설교들은 죄에 대한 선포가 없기에 그리스도의 복음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 할 수가 없다.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죄사함의 결과로 성령을 받지만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고 회개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할 수가 없다.


회개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신자는 어느 누구도 자신을 자랑 할 수가 없다.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베드로는 먼 데 사람, 즉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을 것을 알고있었으며 이를 직접 경험하게된다. (행 8:14)


사도행전은 우리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게된 시초를 기록한 것이라는 점에서 많은 의미가 있다.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유대인들에게 패역한 세대라고 말하는 것은 자칫 목숨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말이었음에도, 이스라엘의 실질적 상태를 직언함으로서, 베드로는 담대함을 보여주었다.


이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던 상황과 확실하게 다르다.


어떤 이들은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함으로서 담대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담대함은 인간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가 행하는 표적과 기사도 베드로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베드로의 변화는 가장 놀라운 표적과 기사 가운데 하나로서 성령의 창조 사역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복음은 윤리나 도덕도 아니며,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복음은 성령의 창조 사역의 근거로서 타락한 세대에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한 날에 삼천이나 되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나도 힘든 출애굽의 과정을 겪었고 끊임없이 불평을 하였지만, 베드로의 세례를 받은 이들은 전혀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 나아가고있었다.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는 것은 이미 교회가 형성되었음을 나타낸다.


말씀이 선포되고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교회라는 실질적 공동체가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교회가 바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사도들 가운데 일어나는 기사와 표적은 성령의 창조 사역의 증거들이다.


사도시대가 끝나고 정경으로서의 성경이 갖추어진 이후에는 더 이상의 사도의 역할이 필요없으며, 사도들의 역할이 끝났기에 기사와 표적도 나타나지 않는다.


기사와 표적은 말씀이 정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도들에게 권위를 입혀주기 위함이다.


오늘날 일어나는 신사도운동은 성경말씀에 더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는다면서 성경 말씀의 권위를 훼손시키고있다.


신사도 운동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부흥이 일어나는  모든 곳에 거짓 영의 역사도 같이 일어나고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성경의 권위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영적 분별력이 요구된다.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현재도 이러한 일이 가능할까?


이러한 일도 일종의 기사와 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는 이와같은 기사와 표적을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다.


현재는 사도의 시대가 아니지만 이들의 행함을 본받아 지혜롭게 행할 필요가 있다.


이단들은 이 말씀을 근거로 모든 재산을 자신들의 공동체에 바치기를 강요하지만 이러한 강요는 분명 성격상 신사도 운동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이 시대는 아직 교회의 형태가 갖추어지지 않았기에 성전에서 모였지만 교회와 성전을 혼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성전이라는 용어를 붙이면 거룩함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다.


오늘날 교회 건물을 지으면서 성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목회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하나님을 팔아먹는 가룟 유다와 같은 삵군이다.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들은 삶으로 복음을 전하고있다.


성령의 역사는 추상적이거나 이론적인 것을 넘어서 실질적 삶의 열매로 나타난다.


이는 사회의 근심이 된 한국의 교회와 대조를 이룬다.


사랑이 식어진 한국교회의 상황은 단지 교회의 상황이기 이전에 이 세대가 얼마나 패역한 세대인가를 보여주고있는 것이다.


세균의 내성이 강하지면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여야 하듯이 이 세대가 얼마나 악한지를 인식할 때에는 교회도 더욱 영적으로 무장 하여야한다.


하지만 현재의 교회는 전혀 방어능력을 가추지 못한 무력함을 보여주면서 허무하게 무너져가고있다.


이는 일차적으로 목회자들에게 책임이 있다.

이 시대는 어느 시대보다도 더욱 영적으로 무장되고 숙련된 목회자가 필요한 시대이다.


posted by Wonho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