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18. 1. 3. 21:31

사도행전 2장 14~36절 말씀 묵상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비록 베드로는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여러가지로 부족한 모습을 보였어도 이번 설교를 통하여 얼마나 베드로가 성숙되었는지를 보여주고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성격대로 사용하시지만 이번 베드로의 설교는 단지 성격에 의한 것만이 아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깊이 깨달은 사도로서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대위임령에 대한 소명으로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는 것이다.


베드로의 증언은 단지 베드로의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함께 하심으로 인한 성령의 사역이다.


비록 부족한 성격이어도 수동적인 성격보다는 능동적이 성격이 낫다고 할 수 있다.


베드로나 바울이나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의 열심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 있음을 본다.


인간은 누구나 시행착오와 실패를 경험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앞에서 세워지는 과정일 뿐이다.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오해에 대해서는 분명한 설명이 필요하다.


오해나 잘못된 이해는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특히 성경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표명이 필요하다.


신학자들의 변증도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논술 방식이다.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말세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말세에 하나님의 영이 모든 육체에 부어주신 것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모든 육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다시 하나님과의 연합이 시작된 것이다.


예언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영이 임함으로서 하나님과의 연합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사건이다.


오순절 성령의 강림은 요엘 예언의 성취를 말한다.


말세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구원이 허락된 은혜의 시대이다.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마음이 굳은 자들이기에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 인하여 마음을 돌이키지는 않겠지만 마음의 찔림은 있을 것이다.


출애굽의 과정에서 증거되었듯이 타락한 이들은 하나님을 경험한다고하여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나아가지는 않는다.


다만 이들에게 성령이 임하여야만 마음에 찔림을 받고 회개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오순절 성령의 임하심은 마음에 찔림을 받은 이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허락하시는 은혜의 역사이다.


믿음은 증거를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얻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마음이 굳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권능과 표적과 기사를 보았음에도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박았다.


이는 타락한 아담의 자손이 어떠한 상태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은 결코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리스도를 믿을 수가 없다.


오직 하나님에 은혜가 인하여야만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이 임하기 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그리스도를 배신하고 떠났다.


베드로는 예수를 죽인 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인 것을 분명히 말하고있다.


유대인을 변호하는 톰라이트는 예수를 죽인 이들이 로마이며, 예수는 로마로 대변되는 세상 권력을 향하여 어떻게 희생하여야하는지 본을 보여주신 분으로 왜곡시키고있다.


하지만 베드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로마의 손을 빌려 그리스도를 죽였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그리스도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는 것은 에덴에서 약속된 영원한 안식을 근거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처음 아담에게 에덴에서 약속되었던 영원한 생명을 상급으로 받으신 것이다.


처음 아담이 하나님과의 행위 언약 안에 있었듯이 그리스도의 순종의 행위는 행위 언약에 대한 응답이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부활은 행위 언약에 대한 공로적 축복으로 인한 것이었다.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베드로는 다윗의 시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16:8)”를 인용함으로서 다윗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하고있다.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살리신 것은 에덴에서 요구되었던 순종의 성취에 따른 종말론적 안식이라는 선물이며, 이는 역사적 이스라엘 안에서 다윗을 통하여 증거되고있다.


사도들은 단지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사실만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서 약속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증거하는 것이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성령은 그리스도의 사역, 즉 처음 에덴에서 아담에게 요구되었던 사역을 충족시키심으로 안식을 성취하셨기에 성령의 창조 사역이 이 땅에서 시작될 수 있었다.


성령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의를 근거로 하나님께서 이 땅을 축복하시는 통로이다.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베드로는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하면서 다윗이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예비하였음을 증거하고있다.


다윗은 자신의 범죄를 통하여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보았다.


인생은 성공을 통해서가 아니라 패배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께 나아가게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세상의 성공을 위한 곳이 아니라 세상에서 패배한 자들이 새로운 소망을 발견하는 곳이다.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단이 행동하는 근거와 정당성을 없애는 것으로서 사단의 패배를 선언 하는 것이다.


사단은 패배하였지만 그리스도의 발등상이 되기까지 끝까지 저항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근거로 사단을 소멸케하실 것이다.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못박은 이들이 이스라엘인 것은 아담의 죄가 단순한 불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한 죄인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죄의 속성은 하나님의 공동체를 파괴한다.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서 사단의 종은 사단의 좀비와 같은 존재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을 한다.


현대 사회는 마치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이 사는 것과 같고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는 것과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세상의 불행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사단의 종노릇 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다.


세상에서의 불행은 단지 불행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수단이 된다.


(그리스도에 대한 베드로의 증거)


예수를 증거하는 베드로와 달리 현대 신학은 기독론보다도 신론 중심으로 변화되고있다.


교회에서 그리스도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윤리와 도덕이 자리잡아 간다.


현대인이라고 광야에서 하나님을 거부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르지는 않다.


칼바르트의 신정통주의 교회론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보다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신론 중심적 교회론을 보여준다.


톰 라이트의 새관점은 그리스도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 즉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하심이라는 불트만학파의 케제만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의를 근거로한다.


이처럼 현대 신학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라지거나 변질되고있는 것은 현대인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하나님을 대적하고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건은 단지 이천년 전의 사건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 내내 있어왔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그리스도를 못박는 이들은 교회 바깥의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이다.


이스라엘에서 바리세인 서기관 율법사들이 주축이 되어 그리스도를 대적하였듯이 이 시대 교회에서는 목회자, 신학자, 직분자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대적하고있다.


겉으로 평온해보이는 이 시대에 교인수의 급격한 감소는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마지막의 마지막을 살아가는 이 시대는 어느때보다도 더욱 기도하며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기도가 필요한 시대이다.

posted by Wonh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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