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8장 4~13절 말씀 묵상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예루살렘 성도들은 핍박으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 사역자가 되었다.
이들이 핍박을 받지 않았다면 이들은 아마 예루살렘에 거대한 예배당을 짓고서 선교 사역은 이차적인 소명으로만 감당하였을 것이다.
인간의 속성을 잘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적극적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하지 않으리란 것을 아셨기에 필요한 환란을 허락하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마찬가지의 역사가 있었다.
100여년 전의 선교사들에 의하여 복음화된 조선은 일제의 압제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각국으로 흩어져야만 했다.
특히 연해주의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이주정책으로 인하여 중앙아시아로 옮겨가야만 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려인들의 희생이 있었지만 이들이 들고간 복음은 중앙아시아의 복음화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으며, 오늘날 선교사들의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있다.
환란 가운데 있던 이들은 본의 아니게 선교사가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일종의 선교적 교회로서의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역할은 오늘날 말하는 선교적 교회와는 다른 것이다.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는 선교에 전념하는 교회missionary church와는 구별되어야한다.
선교에 전념하는 교회missionary church는 교회 자체가 파송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이며,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는 교회 자체가 파송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말하는 선교적교회missional church의 근거는 칼 바르트가 생각해낸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근거로하고있으며 만인구원론적 성향을 지닌 우주적 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선교적 교회는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보내며, 성부 성자 하나님께서 성령과 더불어 교회를 세상에 보낸다는 개념의 보냄받은 교회이다.
선교적 교회의 최종 목적지는 세상인 셈이다.
선교에 전념하는 교회missionary church로서의 전통적 교회의 최종 정착지는 교회로서 세상 사람을 전도하여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이다.
칼 바르트의 하나님의 선교의 최종 종착지는 세상이기에 만인구원론적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선교적 교회가 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택한 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피조세계 전체의 우주적 구원을 위한 것이다.
선교적 교회는 구원론보다는 신론 중심의 신학을 지향함으로서 불신자들과의 구분이 없는 일상에서의 예배를 지향하고있다.
이는 박해받던 초대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전하였던 것과는 다르다.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사마리아에는 박해가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가고싶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고 말씀하신대로 빌립은 이를 실행하였던 것이다.
빌립은 하나님을 전한것이아니라 증인으로서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하나님을 전하는 것과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의 차이는 그리스도가 바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현대신학은 하나님 중심의 신학이며, 그리스도를 전하여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 사역과 믿음을 통한 죄사함에 대해서는 인색한 자세를 취한다.
마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는 사람은 구시대적인 사람인 것과 같이 취급한다.
하지만 초기 사도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구시대적인 사람들이었다는데서 위로를 받는다.
사마리아는 영적으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되었던 곳임을 생각해 볼 때 빌립은 그리스도의 영적인 풍요를 이들에게 전하였던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 5:3)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예루살렘에서의 대제사장 무리들이 스데반 집사를 박해하였던 것괴는 대조적으로 마음이 가난했던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 집사를 따를 수 있었다.
외적인 풍요를 누리던 대제사장 무리들과는 달리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이 오히려 영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다.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더러운 귀신과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은 사마리아성이 그만큼 영적으로 황폐해있었다는 것이다.
육적인 질병은 영적인 질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마리아 성에서 일어난 육적인 치유는 영적인 치유의 그림자이다.
현대 사회는 의학의 발달 이상으로 질병이 급증하고있다.
특히 성인병과 암의 증가는 그 특성상 영적인 질병과 많은 관계가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자연법을 떠난 생활을 하는 만큼 영적인 황폐함과 더불어 육적인 질병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현대 사회의 질병의 치료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하나님의 자연법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멀어져왔는지를 보는데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
자연법에서의 이탈이 심각한 이유는, 자연법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반 은혜가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특별 은혜로 인도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교회의 문제점은 바로 일반 은혜를 무시하고는 특별 은혜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 은총의 영역에 속하여있는 상식을 무시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특별 은혜에 이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기에 자연법은 존중되어야한다.
사회법을 어기면서 사회법 위에 영적 제사법이 있다고 우기는 목사를 보면서 참으로 한심하고 답답한 교회의 현실을 보면서, 교회가 얼마나 상식이 안통하는지를 다시 한번 더 확인해 본다.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사마리아 성에서의 기쁨은 그들의 영적인 치유에서 비롯된다.
그동안 사마리아 성의 슬픔은 이들이 영적으로 어디에도 속해있지 못함으로 인해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배척되었지만 이들에게 전하여진 복음은 말 그대로 구원의 복된 소식이었다.
이들이 누렸던 기쁨은 육적인 충적을 넘어서 영적인 풍요로 인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발달하고 모든 곳에 복음이 전파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고갈을 느끼는 것은 교회는 많지만 참된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가 별로 없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진정한 복음 전파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관련된 것이어야한다.
설교의 너무나도 많은 부분이 예화나 교훈, 도덕적인 문제로 비껴가면서 신학이 없는 설교가 주를 이루고 있다.
교회 생활이 영적인 풍요를 경험하기보다는 여러가지 중요하지 않은 외적 조직에 성도를 묶어놓음으로서, 진정으로 자유케하는 진리를 경험하는 것이 쉽지가 않은 것이 현실이다.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거짓 능력은 자기를 높인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참된 능력은 능력을 행하는 자로하여금 철저하게 겸손하게 만든다.
바울은 많은 능력을 행하고도 자신이 교만하게 될까봐 오히려 육체의 가시를 감사한다.
간증을 하는 이들은 특히 하나님을 경험하고 이를 전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암묵적으로 자랑하면서 교만해 지기도 한다.
페북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부족함과 문제를 드러내기보다는 자신의 자랑이나 자신에게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을을 주로 전함으로서 스스로 교만할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자랑은 자신을 높이는 결과를 낳기에 이는 페북스타들이 가장 조심해야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하나님의 사람이나 사단에게 속하여있는 사람이나 능력을 행하는 것은 사람들의 높임으로 연결되게 되어있다.
사도들은 전도의 과정 가운데 높임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거부를 하였다.
하지만 시몬이라하는 사람은 오히려 높임을 받기를 즐겼다.
이적은 천상의 영역에 속하여있는 것으로서 천상의 영역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단은 높아지기를 원하기에 이적을 통하여 높임을 받기를 원하는 이들은 그 이적이 사단으로부터 왔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간증을 통하여 높임을 받기를 원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있다.
성도는 이적과 간증을 통하여 시험에 들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11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마술은 기쁨이 아니라 놀라움을 준다.
하나님께 속한 이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쁨을 준다.
신사도 운동에서의 이적은 놀라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귀신들린 것과 같은 추함을 드러내주기에 하나님께 속한 기쁨과는 거리가 멀다.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세례를 통하여 확장된다.
하나님 나라에는 운동이라는 용어를 붙일 수는 없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 운동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는 관련이 없는 유대주의적 도덕 운동이다.
세례는 교회의 일원으로서의 선포이며, 자신이 하나님 나라 백성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톰 라이트가 말하는 새관점에서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의의 전가를 인정하지 않기네 그들이 말하는 세례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겠다는 단순한 마음 가짐 이상도 아니다.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시몬이 믿고 세례를 받은 것은 그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인한 구원에 참여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사마리아 성 사람들은 빌립의 표적과 능력에 놀라기보다는 한 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면서 기뻐하였지만, 시몬은 주로 능력의 크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신도 그 능력을 따라하고 싶었다.
교회도 외적으로 확장되면 욕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하며,어떤 이들은 자신이 큰 교회를 다닌다는 것을 자랑하면서 자신과 교회의 크기를 연계시키려는 이들도 있다.
이는 시몬과 같이 외적인 능력을 보고 따르는 이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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